요즘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 간간이 청소년 소설을 쓰기도, 신기한 공모전에 짧은 글을 여럿 올리는 건 물론 신문에서 발간하는 잡지에 올릴 칼럼도 쓴다. 회사를 다니고 책을 읽는 것도 빼먹지 않는다. 나는 이렇게 부지런히 나아가고 있는데, 브런치에서 글 하나를 발견하고 기분이 조금 상했다. 제9회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들은 에세이가 주류였고, 나를 포함한 에세이들의 판매량이 저조해 올해 대상에는 에세이 분야가 상대적으로 많이 줄었다는 얘기였다. 그럴 수도 있지…… 하고 고개를 끄덕이다가 순간 화가 불쑥 났다. 내 에세이가 소위 말하는 10쇄, 20쇄까지 찍으며 대박을 쳤으면 계속해서 에세이 시장은 커졌을까 하는 의문에서 비롯된 물음이기도 했다.
그래, 내 책은 판매량으로 보건대 망했다. 브런치 공식 카카오톡으로 퍼져 출간 제의를 받은 ⟨제주 토박이는 제주가 싫습니다⟩도 그렇고, 브런치북 출판 대상을 받아 만들어진 ⟨나를 살리고 사랑하고⟩도 2,000부를 넘기지 못해 재고가 쌓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 사실에 기죽지 않는다. 물론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면 내가 전하려는 삶의 긍정이라는 메시지가 더 큰 힘으로 닿았겠지만 나는 외려 내 책을 읽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이 스스로 세상을 떠나지 않아 소중한 사람을 잃은 지인과 유가족이 더욱 늘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이어서다. 내 책을 읽은 한 사람에게만이라도 인생 책으로 꼽힌다면 그거야 말로 내가 말하는 성공의 지표를 달성한 게 아닐까 싶었는데, 판매량과 베스트셀러 추이로만 책을 평가하고 재단하는 분위기에 마음이 아팠다.
에세이를 쓰면서 동화 합평에도 꾸준히 나간 덕분인지 이번에는 운 좋게 청소년 소설을 계간지에 올리는 기회를 얻었다. 신인 작가의 등용문이기도 하니 등단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나는 그 등단에 크게 기뻐하지 않는다. 나의 성공 지표는 짧은 소설 하나를 올리는 게 아니라 장편 소설을 써서 청소년을 만나 그 책에 담긴 이야기와 주제에 관해 몇 시간이고 자유롭게 떠드는 장면을 꿈꾸고 있어서다. 이렇게 저마다의 성공 지표를 안고 있는데 왜 중쇄를 찍지 못했다고 그 책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을까. 꼭 브런치에 올라온 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나는 그 책 몇 쇄 찍었어요, 얼마나 팔렸어요, 인세는 얼마나 받았어요,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절필을 할 만큼 커다란 번아웃을 겪은 뒤로 내 목표는 다시 한번 '튼튼하게 오래 걷기'로 굳혀졌다. 지치지 않고 오래도록 걷자고 결심해 놓고서는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는데 먼저 지쳐 버려서였다. 성과가 나지 않아, 아무도 내 글을 기다리지 않을 거야, 원래는 아무도 읽지 않아도 괜찮다는 초심이 있었는데 어느샌가 잃어버리고 조회수에만 급급했다. 그래서 목표했던 총 조회수에 기뻐한 나머지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렸다가 빛의 속도로 삭제해 버린 적도 있다.
내 책은 유명하지 않다. 나도 유명하지 않다. 다음과 네이버에 이름을 치면 프로필이야 나오지만 그 프로필은 내가 직접 등록한 거고, 검색하는 사람도 거의 대부분이 나뿐일 게 틀림없다. 나는 그저 천천히 쓰는 사람이다. 땀 흘려 쓴 책이 중쇄를 찍지 않아도 다음을 바라보는 사람이다. 세 번째 책이 자꾸 고배를 마신다면 회사를 다녀서 직장 생활에 관한 글감을 얻는 사람이다. 나는 이런 사람인데, 책의 판매 부수로만 나를 평가한다면 그게 정말 맞는 평가 방식인 걸까. 애초에 책에 담긴 글을 읽었다면 평가 부수 얘기는 하지 못할 텐데 말이다. 독자보다 작가가 더 늘어났다는 이야기가 돌 만큼 작가도 책도 엄청나게 늘어난다. 자신이 진심을 다해 글을 썼다면 그 사실만으로 기뻐하기를, 판매 부수가 기대에 미치지 않아도 책에 떳떳하다면 그 떳떳함을 간직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