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은 동화책을 내고 싶었다. 아이들의 세계에 초대 받고 싶기도, 내 안의 어린 아이에게도 말을 걸고 싶었다. 에세이집도 좋지만, 에세이는 날 것 그대로의 모습으로 어디에도 숨지 못하는 공간인 것 같아서 문학이라는 허구 아래 그 이야기는 내 이야기가 아니라고 거짓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쭉 에세이를 쓰면서 성숙한 문체가 손에 달라붙어 버렸고, 수필집을 냈다는 사실을 후회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왕 이렇게 된 거 성숙한 사고를 하는 청소년이 등장하는 소설이나 어른이 주인공인 소설을 써보자고 결심했다. 저학년과 고학년 동화가 지배적인 동화 합평 모임에 청소년 소설을 가지고 갔다. 주인공의 언니가 사차원의 세계로 사라지는 기묘한 이야기부터 학교 폭력 가해자를 동생으로 둔 누나의 이야기도 써 봤다. 어느 곳에도 응모하지 않았지만 썼다는 행위만으로 해소되는 지점이 있었다. 외려 발표되지 않을 소설이라고 생각하니 더욱 자유로워졌다. 나는 구속받지 않고 휘갈겼다. 어린 시절의 결핍과 지금도 해결되지 않은 엄마의 빚이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해 썼다.
발표를 염두에 두고 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왕 쓴 60매, 100매짜리 소설이 아깝고 아쉬워서 이곳저곳에 응모해 봤지만 의견 없이 대차게 거절을 당했다. 그렇게 아이디어도 손가락도 투고할 용기도 묵혀두던 어느 날, 무슨 힘이 났는지 동화를 발표했던 계간지에 한 번만 더 응모해 보자고 결심했다. 이번에는 청소년 소설이지만, 등단 직후 어떤 동화책도 내지 못했지만. 심지어 이 소설은 절필을 발표하던 날 인생의 마지막 소설이라 다짐하고 쓴 이야기였다. 아무런 글도 가져가지 않고 절필을 하겠다고 선언하면 너무 무성의한 것 같아서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어른의 시선이 듬뿍 담긴 것 같다는 의견도 염두하지 않고 그저 손 가는 대로 썼던 소설이었다.
그렇게 지난 가을에 쓴 소설이 다가올 봄에 발표된다. '인디펍'이라는 페이지에서 '어린이와 문학'을 검색하면, 3월 1일에 '2023년 봄호'가 나올 것이다. 그 작고 소중한 계간지에 나의 청소년 소설이 실린다. 어둡다는 의견도 있을 테고, 주인공이 불쌍하다는 말도 나올 게 뻔한데 나는 그 의견이 두려우면서도 궁금해 매일 아침을 설레게 맞이한다.
이제껏 운이 나를 빗겨나간다고 확신했다. 지금도 제주에 있는 엄마에게서 전화가 올 때면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마음을 졸이며 받는다. 빚은 여전히 불어나고,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돈이 없어 그만두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내게는 운의 파도가 밀려오고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는 이번에 발표할 청소년 소설을 기점으로 줄줄이 아이디어가 밀려올 거고, 다양한 출판사와 기관이 내게 글 의뢰를 하리라고. 배달의 민족에서 발행하는 뉴스 레터의 작은 지면에 글을 싣고 싶다고 연락한 것도 그래서였다. 누가 나를 찾지 않는다면, 내가 가서 두드리는 수밖에. 올해의 목표는 토익이나 자격증을 따는 게 아니라 누가 나를 찾지 않아도 내가 가서 거리낌 없이 두드리는 용기를 장착하는 힘을 얻는 거다. 나중에는 청소년 소설집을 낼 수 있도록 쓰는 사람으로 남아 있고 싶다. 이번 소설이 많은 이들에게 읽혔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혼자 아파하는 아이, 혼자 슬퍼하는 아이, 혼자인 것 같다고 느끼는 아이에게 더욱이.
3월 1일, 다가올 봄. 어린이와 문학 2023년 봄호에 실릴 청소년 소설을 기대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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