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때, 아니 지금 때 역시 마찬가지로 동화를 공모전에 투고하기 위해서는 전자 우편이라는 편리한 서비스가 있음에도 흰 종이에 따끈따끈한 잉크로 인쇄를 하고 직접 우체국까지 걸어가서 네임펜으로 봉투에 주소를 적은 뒤 우편으로 부쳐야 한다. 그 말은 즉슨, 중간에 페이지를 누락하거나 뒤늦게 오타를 발견한다 하더라도 수정할 수 없다는 뜻. 페이지가 무사히 잘 이어졌는지 하나하나 천천히 세어보고, 응모란에 주소와 연락처는 잘 적었는지 몇 번을 확인하고서 '창작과 비평 어린이 신인 문학상 담당자 앞'이라는 이름 모를 이에게 텔레파시로 애정을 담아 봉투를 접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쉽게 써도 되나 싶지만, 당분간 긴 휴식에 접어들자 결심한 뒤 쓴 청소년 소설이었다.
소설은 심사위원의 손에 닿기 전 총 아홉 분의 작가님께 읽혔다. 지난주에 열린 아동 문학 합평 모임에 가져가 다행히 꽤 괜찮은 평을 받았다. 세 시간의 뾰족한 합평이 마무리될 무렵, 최근 커다란 동화 공모전에서 심사위원을 맡은 작가님께서 짐짓 진지한 표정으로 말씀을 하셨다. "이번에 동화 응모작이 확 줄었어요. 상을 받은 응모자가 한 명도 없어요."라고. 분주히 짐을 싸던 사람들의 행동이 순식간에 멈췄다. 눈에 띄는 동화는 몇 있지만, 소재주의에 빠졌을 뿐 진정성을 담은 동화는 한 편도 없었다고 말씀하시는 작가님은 다소 서운해 보였다.
심사를 끝낸 작가님은 잘 쓰기로 유명한 주변 작가님들을 찾아가 왜 이번 공모전에 응모하지 않았냐고 물어보았다고 했다. 대체로 비슷한 답이 나왔는데, "시기가 너무 어두워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답이 지배적이었다. 많은 동화 작가님들이 무기력에 빠져 있는 듯했다. 그 분위기에서 나 또한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다고, 글을 쓸 동력을 잃어버렸다고 말하기 굉장히 주저스러웠지만 메신저로 공표하는 것보다야 어렵게 대면한 자리에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입을 열었다. "작가님, 작가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힘도 잘 안 나고요. 그래서 당분간 오래 쉬기로 했어요." 작가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이렇게 잘 쓰는데! 딱 일 년만 쉬다 와요!"라며 손을 붙잡았다. 나는 거짓 반 진실 반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집에 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번에는 수상자를 내지 않기로 했다'로 시작하는 심사평 전문을 읽는 것이었다. 오늘 뵌 작가님이 쓰신 심사평 차례에서는 왜인지 모르게 침이 삼켜졌다. "곧 종식될 것 같았던 코로나가 다시 무섭게 번졌고, 산불과 홍수 불행한 사건 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지구는 계속 불타오르고 있고, 알 수 없는 전염병이 지구 곳곳에서 퍼져 나갔다. 강대국의 힘 겨루기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벌어졌고, 지금도 수많은 희생자가 생겨나고 있다. 그 끝을 알 수 없는 불행의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이다. 어른과 청소년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우울하고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지금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는 어떤 동화를 쓸 수 있을까? 어린이들에게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좋은 동화를 쓰기에 어려운 시기이다." 터져 나오려는 울음을 가까스로 참아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 나만 못 쓰는 게 아니었구나, 어떤 이야기를 전해야 할지 기다란 미궁에 들어가 아직도 빠져나오지 못한 작가가 나만 있는 게 아니었구나.
어떤 작가님은 "한국 어린이 서사문학이 침체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라고 이야기하셨다. 그게 어린이 문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등 한국사회 전반의 문제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는데, 그 말이 공감되어 애꿎은 키보드만 손톱으로 긁어냈다. 그러면서 안타까운 현실을 소개했는데, 학교 밖 청소년 센터의 조손 가정 아이였다.
한 아이가 청소년 센터에 너무 오래 나오지 않아 찾아가 보았더니 할머니는 구멍가게를 하느라 바빠 아이 혼자 가게 뒤의 골방에서 컴퓨터에 빠져 지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얼마나 그렇게 오래 지냈는지 아이는 한국말로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려 일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고 한다. 이런 일들이 한 사례만이어도 마음이 아픈데, 비일비재해서 사회 복지사들이 어쩔 줄 모른다는 이야기에는 가슴에 무언가가 얹힌 듯 답답했다. 노트북 앞에서 글을 쓰는 것도 사회를 고발해 더 좋은 세계로 변모하게끔 만드는 힘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사회 고발적 동화를 쓰면 출판사와 작가님은 입을 모아 너무 어둡다고 말했다. 사회가 어두운 건데, 내가 어두운 게 아닌데, 그 어두움을 빛으로 밝혀야 더 좋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을 텐데, 하는 말을 입 안으로 삼켰다. 나는 아직 등단 후 작품집을 내지 않은 신인 작가여서 이렇다 말할 힘이 없었다.
일정보다 조금 더 빠르게 창작촌을 나왔다. 커다란 책상이 나를 조여 오는 듯해서였다. 무언가를 쓰라고, 지금 당장 키보드에 손을 올리라고 재촉하는 것 같은 압박감이 들었다. 한 작가의 말을 빌려, "이제 나는 쓰지 않고 살아가는 자신을 상상할 수" 있다. 사회를 고발할 힘이 다시 차오를 때, 주변의 아이들에게 시선을 조금 더 돌리고 그 힘을 종이 건너편의 아이들에게까지 전달할 수 있을 때 다시 동화를 쓰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니, 쉬더라도 하릴없이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만 보며 침대에 누워 있지 않고 이전처럼 열렬한 독자의 입장으로 넘어가 사랑하는 작가들과 사랑하는 아이들, 그리고 사랑할 세계를 애정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절필을 선언했을 때 썼던 글이에요. 문득 이 글이 생각나 올려봅니다. 열렬한 독자로 넘어갔었고, 이제는 다시 작가로 돌아올 차례이지요. 초심을 잃지 않고 아동 문학을 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