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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Mar 12. 2023

엘리베이터에서 인사하는 사이


이웃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머리를 싸매게 된 건 다름 아닌 집에 들어갈 자기소개서 때문이었다. 집에 들어갈 자기소개서라니, 그게 무슨 말인지 싶겠지만 한 예술인 청년주택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웃이 내게 어떤 의미를 주는 지와 앞으로 이웃을 위해 어떤 일을 기여할 수 있을지를 요목조목 적는 란이 있었다. 그 공란을 채우지 않고서는 집에 들어갈 수 없어서 나는 한동안 머리를 쥐여 잡고 그러니까 나와 가장 친했던 이웃이 누구인지, 애초에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부터 이웃이라는 단어가 내 일상에 들어와 있었나, 그런 상념에 빠지던 찰나였다. 고시원에 살았을 때 근처 고시원에 다닥다닥 붙어살던 대학 동기들이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란을 채우지 못했을지 모른다. 이웃에게는 내가 지닌 글쓰기 능력을 바탕으로 소모임을 열 수도 있겠지, 이웃에게 건넬 나의 호의는 어떤 게 있을지 곰곰 고민하다 대충 그렇게 적었던 걸로 기억이 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청년의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는 질문에는 큰 고민 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할 말이 많았다.


다행인지 9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한 청년주택에서 연락이 왔다. 오리엔테이션이 있으니 근처 강당으로 모이라는 얘기였다. 기대보다야 살짝 긴장이 되었는데, 그 이유는 다름 아닌 단체 톡방 때문이었다. 단체 톡방에는 “흡연 좀 그만하세요. 냄새가 장난 아니에요.”부터 “자정이 넘는 시간에 시끄럽게 움직이지 마세요.”까지 온갖 불평불만이 스크롤을 내려도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 가득했다. 나는 이 사람들이 실제로 모여 익명에 가려졌던 서로의 얼굴을 보게 되어도 불평을 터뜨릴 수 있을지 궁금했고 만약 그 불평이 터뜨려진다면 커다란 목소리가 드문드문 나와 서로의 얼굴을 붉히겠다는 상상을 했다. 관리자의 통솔 아래 저층과 중층, 고층으로 모인 입주민들은 밝은 얼굴로 자기소개를 했다. 홍대에 연습실을 운영하며 돈을 벌고, 자신의 앨범을 준비하는 뮤지션부터 3D 영상 작업을 그리는 디지털 아티스트, 드럼을 치는 싱어송라이터까지 다양한 직업군이 내 근처에 살고 있었다. 자연스레 내 차례가 다가오자 나는 작가라고 얼버무렸고, 사람들은 어떤 글을 쓰냐며 눈을 빛냈다. 동화요,라고 얘기하자 또다시 동화책은 냈냐는 악의 없는 질문을 했고, 나는 문예지를 떠올리며 두 권 냈다고 허세를 부렸다. 에세이도 두 권이니 거짓말은 아니겠지 싶었다.


몇몇 얘기가 끝나고 어떤 사람이 조심스럽게 손을 들었다. “단톡방 말이에요. 혹시 사시면서 불편하셨던 부분 있으실까요?” 단톡방에서는 다들 말이 많았는데 윗집과 아랫집, 옆집에 사는 얼굴을 보며 불만을 보일 수는 없었던지 다들 아무 말이 없었다. 공백을 깨고 뜬금없이 누군가가 고해성사를 했다. “사실 제가 강아지를 키우거든요. 정말 조용한 아인데, 산책도 많이 해주는데, 가끔 짖을 때가 있어요. 정말 죄송해요.” 다들 웃으며 괜찮다고 했다. 이름을 묻기도 했다. 내 옆집에 사는 뮤지션은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운다고, 아주 고요한 아이들이지만 큰 소리가 들리면 “우다다 뛰어서” 난리라고 했다. 옆집에 사는 나는 그런 소리를 들은 적이 없어서 진심으로 괜찮다고 말했다. 우리는 오리엔테이션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서로의 얼굴을 훑는다. 그러고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면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면 안녕히 가세요. 우리 집에 놀러 온 친구는 그 장면이 생경하다고 말했다. 그러게, 나도 생경해. 이웃에 대한 정의가 새롭게 구축되는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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