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시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는 삶을 꿈꾸라고 했다. 더울 때 더운 곳에서 일하고 추운 곳에서 춥게 일하지 않으려면 지금 네 나이 때는 공부만이 답이라고 했다. 비단 학업 성적을 높이는 방법뿐만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추구하는 성실하다는 가치를 획득하기 위해서는 온갖 일을 다 해야 했다. 설렁탕 집에서 서빙을 하며 틈틈이 과제도 하고 어학 성적을 얻기 위해 수업이 끝나고 학원을 다녀도 그건 직장 한 군데를 진득하게 다니는 것보다 덜 성실한 행동으로 치부되었다. 정확히 말하면, 제대로 된 돈을 벌지 않았다는 이유로 덜 생산적인 삶을 살고 있다는 눈치를 받았다. 친구들은 왜 이렇게 열심히 사냐는 궁금증을 가졌지만 엄마와 아빠를 비롯한 어른들은 얼른 제대로 된 기업에 취직하기를 바랐다.
내 경력은 이번 달 그만둔 직장까지 합쳐 정확히 2년 9개월이다. 두 군데 다닌 게 아닌가 싶겠지만, 어떤 사람은 한 군데를 2년 9개월 다닌 게 아닌가 물어보겠지만 그 두 가지 모두 답이 아니다. 여덟 군데의 직장을 다녔다. 광고 대행사, 산부인과, 미술관, 인테리어 회사, 잡지사, 스타트업을 모두 다녀봤다. 가장 오래 다닌 곳은 마음 맞는 사람들이 가득했던 스타트업에서의 8개월이었다. 그마저도 성장세가 두드러지지 않을뿐더러 다른 동료와의 마찰이 있어 그만뒀다. 한 군데의 직장을 그만둘 때마다 내게는 직장 생활이 맞지 않는 건가 싶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오랫동안 한 직장을 최소 오 년은 다닐까 싶었지만, 몸도 마음도 피폐해지는 나를 보며 직장 생활에 대한 의구심을 가졌다. 잠시 쉬기 위해 온 제주에서까지 엄마는 이런 말을 던졌다.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해."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라는 말이 슬프고 우스워서 나는 정말로 '흐흐' 웃었다. 지금 나는 토요일마다 강의를 하고 있고, 온라인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리추얼도 운영하고 있으며, 동화 합평방에 꾸준히 참여하며 동화책을 내기 위해 애쓴다. 그럼에도 엄마는 나를 영 못 미더워했다. 이번에는 한 에세이 공모전에 참여했다. 결과 발표일 이전에 개별 발표가 있다고 하니 이번에도 상은 받지 못한 것 같은데, 그 얘기를 하자 엄마에게서 "그러니 될 수 있는 일을 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될 거라는 기대를 너무 해서, 이렇게 떨어졌을 때 얼마나 슬프냐고, 그러니 마음을 비우고 기대를 아예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는데 나는 반박하고 싶은 마음이 목 끝까지 차올랐으나 하지 않았다. 이미 살이 너무 쪘다는 이야기로 한바탕 싸운 뒤여서 일지 모른다.
내가 책을 읽는 것도, 출판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 글을 쓰는 것도, 예능과 영화를 보는 것도 모두 어른들에게는 불필요한 일이다. 그럴 바에는 자기소개서 한 줄을 더 쓰고, 포트폴리오를 한 줄 더 고치고, 취업과 연계된 일이나 공모전을 뛰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어렵게 취직하면 거기서는 어떻게 상사보다 먼저 일어날 수 있냐고, 조금 더 열심히 해달라는 말을 더한다. 없는 열정을 꺼내서라도 회사에 바치라는 이야기를 한다. 나는 대리라는 직함이, 과장이라는 이름이 하나도 부럽지 않았는데 그 지위가 회사에서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은 한가득인데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대리보다 작가님이라는 호칭이, 부장보다 내 이름 석 자를 또렷하게 불러주는 사람이 더욱 좋다는 말을 하지 못하고 침만 삼킨다.
연봉이 높은 정규 일자리를 구하면 모두 해결될 줄 알았다. 지금까지의 나는 자발적이든 강제적이든 비정규직을 자처했다. '계약 종료'라는 결말 있는 이야기가 더욱 행복할 거라고 여겼다. 결말 없는 영화는 인생이라는 선으로 끊어지지 않는 이상 마무리지어지지 않으니까 너무나 고될 것이라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제는 서른에 가까운 나이고, 엄마는 내게 "네가 안정적이었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했다. 애초에 인간의 삶에 안정이라는 건 없다고 따지고 싶었지만 괜한 싸움을 일으키기 싫어서 취업 준비를 했다. 서른 군데에 지원했는데 최종 합격을 한 곳은 단 한 곳이었다. 그것도 몇백 대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간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기뻐하기보다 그 사실에 슬퍼했다. 아무도 내 감정을 공감해 주지 않았다. 합격한 사람은 너니까, 나는 너의 지인이니까, 너는 우리에게 소속되어 있으니까, 도대체, 왜, 어떤 이유로 그 사실이 당연하게 취급되었을까. 삼십 개의 서류를 쓴 게 적게 쓴 편이라는 사실로 나를 추켜올려준 친구의 말이 아프게만 들렸다.
집은 살아보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올 수 있다. 천장에 빗물이 새서, 벽간 소음이 심해서, 창 밖을 쏘다니는 자동차 소리가 너무나 크게 들려서 나올 수 있다. 예상보다 좁아서, 지방이지만 더 큰 집을 원해서 나올 수 있다. 한 달만 살고서도 언제든 나올 수 있다. 하지만 회사는 다르다. 한 달 만에 나온다고 하면, 이런저런 이유로 석 달을 다니고 회사에서 버틸 수 없다 이야기하면 그 손가락질은 회사가 아닌 나로 돌아온다. 오롯이 내가 감당해야 한다. 집에 잘못이 있을 때는 집을 탓해도 괜찮지만 회사에 잘못이 있을 때 회사를 탓하면 안 된다. 면접관은 묻는다. 왜 당신의 경력은 이리도 짧냐고, 여기도 짧게 다니다 그만둘 것이냐고, 언제까지 다닐 것이냐고, 왜 다닐 것이냐고. 나는 진땀을 흘리며 답한다. 무어라고 말하는지도 모른 채 답한다. 진심 어린 생각과 거짓 어린 말이 한데 뒤섞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