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판한 나이프로 물감을 떠서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과 자라나는 붉은 장미 덩굴을 그렸다. 옆에 나란히 앉아 그림에 몰두하는 친구는 하얀 파도가 잘게 치는 해변가를 그렸는데, 다 그리니 문득 내가 그린 그림을 엄마가 맞출 수 있을까 싶은 호기심이 들어 잘하지도 않는 전화를 걸었다. 엄마는 메시지로 보낸 사진 두 장을 보자마자 바로 "장미네!"라고 소리쳤다. "어떻게 알았어?" 묻자 엄마는 담담하게 답했다. "네가 그림을 얼마간 그리진 않았지만, 어릴 때부터 봤으니 화풍 정도야 알지." 엄마는 솔직하게 말하면 파도를 그린 친구의 그림이 낫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나는 조금의 시무룩해진 마음과 내 그림을 알아봤다는 조금의 감동이랄지 먹먹함이랄지를 가지고 전화를 끊으려 하는데, 끊으려는 찰나 사이로 엄마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너, 나 차단했지?"
"무슨 차단?" 하고 모르는 체로 넘기려 했는데, 엄마의 구시렁대는 소리가 수화기 건너편에서 들렸다. 아무래도 이상해, 네 브런치 말이야. 댓글도 못 단다 그러고, 응원도 못 한다 그러고, 심지어는 구독이나 라이킷도 못 누르게 하잖아. 사실을 명중하는 엄마의 속사포에 당황스러워진 나는 어떻게 상황을 모면해야 할지 궁리했다. 엄마는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그러니까 서클 렌즈를 사기 위해 엄마의 지갑에서 슬쩍 오만 원을 꺼냈을 때 다 알고 있으니 용돈에서 삭감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게 얘기했다. 나, 다 알아. 네 이름 치면 어차피 글도 영상도 다 볼 수 있으니까 좋은 말 할 때 차단 풀어. 엄마가 작가라면 빠르게 차단을 풀 수 있었을 텐데, 독자인 엄마는 검색이 되지 않아 나는 일일이 엄마의 계정에 로그인해서 주소를 복사하고 다시 내 계정으로 로그인한 후 어떻게 차단을 풀었다. 차단 풀었어, 그 말에 엄마는 기다렸다는 듯 재빠르게 내 글에 라이킷을 눌렀다.
"너, 나를 워낙 많이 까서 못 읽게 차단한 거지?" 라던 엄마의 말에 하나하나 아니라고 대답하고 싶었으나 그렇다고 차마 솔직하게 말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얼버무렸다. 엄마를 차단한 이유는 엄마를 많이 까서가 아니라, 내가 엄마의 면면과 인생을 창문 너머 투명하게 바라봐서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를 차마 할 수 없었다. 엄마가 숨기고 싶어 하는 비밀도, 딸에게는 차마 보이고 싶지 않았던 눈물도, 나의 등록금을 두고 어느 어두운 밤 아빠와 함께 아무래도 땅을 팔아야겠다고 두런두런 얘기한 것도 모두 들렸다는 말을 터놓을 수 없었다. 나는 엄마가 단 몇 초만에 화풍만으로 작가를 확신한 장미 덩굴 그림을 멍하니 바라보며 어디서부터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고민하다 이윽고 모든 말을 삼키고 통화를 끊었다.
브런치에 공개된 나의 모든 글을 읽은 사람은, 백일장을 다닐 무렵 작은 원고지에 쓰인 글을 한 톨도 놓치지 않고 빽빽하게 읽은 사람은, 강의 영상과 말하기 대회 영상을 모두 다 찾아본 사람은 모두 엄마였다. 나는 매일 그 사실을 간과하고 어른이 된 후부터 엄마에게 어떠한 글도 보여주지 않았다. 엄마는 서운해했을까, 어른이 된 나의 마음을 헤아렸을까. 무엇이 되었든 엄마는 나를 닦달하는 법이 없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 라고 물으면 나는 어디에 글을 올렸어, 어디서 상을 탔어, 어디서 강의를 하고 있어. 하고 답했다. 그러면 엄마는 잘 됐다, 하고 말간 웃음을 지었다. 역시 너는 대단해, 너는 뭐가 돼도 될 애야, 그러다가 옛날에 철학관에서 들었던 이야기처럼 너는 나도 감당할 수 없는 훌륭한 사람이 될 거야, 까지 가면 나는 시끄럽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 좀 그만 하라며 화를 내고 전화를 끊었다.
본격적으로 심리 상담에 들어가기 전에 쓰는, 엄마를 생각하면 어떤 느낌이 드냐는 질문에 이제껏 나는 밉다고 적었다. 아빠가 손찌검을 했을 때 나와 동생들을 데리고 도망가지 않았던 엄마에 대해, 그리고 많은 부분 편견을 지니며 나와 동생을 괴롭힌 이야기를 나는 좀처럼 수긍할 수 없었다. 그래서 드문드문 열리는 글쓰기 강의를 할 때도 그런 이야기를 했다. 억지 결론은 쓰지 말라고. 엄마와 아빠, 혹은 가족 중 어떤 이를 미워한다고 했을 때 에세이를 쓴답시고 결론에서 갑자기 용서를 하지는 말라고.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글은 그렇게 끝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에 그렇게 쓰다 보면 외려 독자에게 어떤 마음도 전할 수가 없다고. 그렇게 외쳤던 내가, 엄마의 마음을 조금씩 진심으로 이해하고 있다. 화나는 마음이 가라앉고 안타까운 마음이, 슬픈 마음이, 아린 마음이, 그리고 어느 날은 애정하는 마음이 서서히 든다. 분명 이 글을 읽고 있을 엄마에게 한 마디를 하자면, 이 글을 읽었다고 하더라도 모르는 체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엄마의 어떤 면을 모르는 체했던 것처럼, 그렇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