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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한 정도의 솔직함

by 현요아


사람들은 늘 기피하지 않을 만한 적당한 솔직함에 박수를 보낸다고 생각해 왔다. 범불안장애와 양극성장애를 앓고 있다고 고백하면 용기 있다는 답을 받지만, 정작 그 병으로 내 일상이 무너졌고 최근 삶을 다시 포기하기 위해 조용히 도전했다는 이야기를 말하면 그 이야기는 굳이 꺼내지 않아도 되는 과한 솔직함으로 치부해 눈을 피했다. 위로에 적당한 말을 찾지 못해서인지, 아니면 대부분은 거의 숨기는 일을 자유롭게 말하는 행동이 불편한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떤 이는 내게 걱정 어린 말투로 진심을 담은 조언을 더했다. 알리지 않아도 될 만한 너무 내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그 이야기를 듣는 상대에게 아담한 칼을 쥐여주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언제든지 약점으로 쓰일 수 있는 뾰족하고 잘 다듬어진 칼을. 나는 대수롭지 않게 그 칼을 누구에게나 건네주었다. 나는 이리도 아프다고, 이리도 슬프다고, 이리도 울적하다고.


솔직한 마음을 표하는 일은 나와 비슷한 사건을 겪었거나 비슷한 감정을 느낀 이들에게 감사의 언어로 돌아왔지만, 지인의 말대로 어떤 이에게는 지나친 약점으로 해석되는 듯했다. 평균보다 불안도가 조금 더 높은 나는, 슬플 때와 기쁠 때의 빈도가 다른 이들보다 조금 더 바삐 흐르는 나는 일상생활은 물론이고 업무적으로도 문제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았다. 누군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도 스스로의 고집에 따라 그런 판단을 내렸다. 회사에 나가 일할 때는 부러 밝은 모습만을 보였다. 물론 억지로 긍정적인 얼굴만을 띄운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슬픈 감정이 들 때는 엎드려 자기보다 잠시 산책을 다녀온다고 말하고 나갔다.


작가 소개 란에 앓는 병을 여럿 밝히고 학창 시절에 폭력을 겪은 나의 과거를 책에 쓴 일이 가끔은 후회스러웠던 때도 있었다. 정작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여길 수 있는데 그 일련의 과정을 모두 나의 약점으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 산문집은 언제 나오냐는 사람들의 숱한 질문에 명확하게 답을 내리지 못했던 건 그런 이유였다. 나는 또 에세이라는 장르 앞에서 어김없이 솔직함을 내보이고 말 테니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나의 내밀한 이야기들을. 괜찮지 않은데 괜찮은 척했던 시기를. 그러면 그 시기를 함께 겪은 친구들은 왜 그때 터놓지 않았냐며 내게 서운함을 표하고, 그 서운함을 들고 나는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가만히 서 있는 얼굴이 그려진다.


때때로 솔직한 이야기를 밝히는 건 약점으로 자주 평가받지만 그럼에도 나는 자신의 감정과 마음에, 사연과 이야기에 솔직한 사람들이 좋다. 자신의 아픔을 고백하는 사람들. 용기 있는 사람들, 자신의 슬픔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고 누구에게나 그런 날이 있을 수 있음을 아는 똑똑한 사람들. 나는 그런 사람들을 감히 편애한다. 그런 일은 내게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단언하는 사람들은 상대의 아픔을 듣고도 그렇구나, 하고 쉬이 넘기지 않는다. 정말로, 그래서, 왜, 그러면, 어떻게, 와 같은 단어들로 용기 있게 말한 사람의 마음을 후벼 판다. 그저 그렇구나, 그럴 수 있어, 하고 가만히 들어주는 편이 오히려 반가운데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아픔이 있고 숨기고 싶은 구석이 있다. 그러나 세상에 소리치면 어떤 편견과 평가를 받을까 두려워 말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런 오해를 하든지 말든지, 하는 태도로 용감하게 자신의 내밀한 이야기를 밝히는 경우도 있다. 나는 배낭도 없이 훌훌 그 용감한 길을 걷는다. 이왕이면 그 용감함을 사람들에게 한둘 전하고 싶다. 말해도 된다고, 우리는 모두 부족하고 미흡하다고, 터놓아도 당신을 절대로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쉽지는 않은 길이다. 그래, 어쩌면 험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길에 무거운 배낭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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