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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요아 Sep 23. 2023

부족함을 견디는 연습

할 수 있는 자세까지만 요가를 하는 일


6.



  누군가 어린 내게 마시멜로를 건네며 "조금만 기다려라 아이야, 기다리면 너에게 마시멜로를 하나 더 줄 테니."라는 제안을 한다고 치면, 나는 '조금만'이라는 말까지만 듣고 정말 '조금' 먹어치울지 모른다는 상상을 한다. 이런 상상을 대수롭지 않게 할 만큼 까마득하게 어렸을 때부터 내 인내심은 바닥으로 유명했다. 다음에 올 버스가 삼십 분 뒤에 도착한다면 굽이굽이 골목길을 따라 집까지 내리 한 시간을 미련하게 걷는 아이가, 대학 입시 결과가 예정한 시각에 나오지 않는다고 머리카락을 몇 가닥 뜯고 마는 아이가, 반찬이 나오지 않으면 우선 밥부터 꾸역꾸역 입 속으로 집어넣는 아이가 나였다. 부족한 인내심은 어른이 되자 더욱 띄었다. 사고 싶은 물건이 생겼다면 이제는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되니 덜컥 샀다. 최대한 빠르게 포장할 수 있는 음식을 사서 좁은 보폭으로 집까지 성실하게 걸었다. 혼자의 힘으로는 채우지 못할 욕망이 있다면 누군가를 닦달했다. 주로 어찌할 수 없는 시간과 관련한 일이 많았다. 담당자님, 죄송하지만 결과 발표는 언제 나올까요? 사장님, 죄송하지만 음식은 언제쯤 나올까요?


  스쳐 지나간 애인들은 인연의 말미에 와서야 내가 빚은 그 장면들이 때로는 지긋지긋했다고 귀띔했다. 아마 그들은 이런 나를 부끄러워했던 게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한다. 인기 많은 식당에 방문한다고 치면 직접 가서 기다리는 사람이 몇 있는지 확인하면 될 걸, 식당을 코 앞에 두고 굳이 전화를 걸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는 내가 그들의 눈에는 내가 침착하게 보이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가만 하다가 이유가 어떻든 나를 떠난 이들의 입장을 애써 헤아리지는 말자는 생각으로 결론을 맺는다. 차분한 성격이 있는가 하면 당연히 그렇지 않은 반대의 성격도 있기 마련이라는 마음으로 지냈는데 유독 요즘에는 나의 이런 성격이 밉다. 사고 싶은 물건은 몽땅 사버리는 마당에 통장 잔고 역시 인내심처럼 바닥이고, 약속 시간이 정해지면 두 시간은 일찍 나와 카페를 서성이는 모습에 종종 상대방에게서 부담을 읽을 때가 있다. 매번 시간을 확인하는 탓에 스마트폰 배터리는 일찍 닳고, 음식을 먹으면서도 다음에 갈 카페를 고민하느라 눈앞에 놓인 음식의 맛을 느끼지 못할 때가 많다.


  주변으로부터 인내심을 조금 길러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건 나의 어쩔 수 없는 기질이라며 가볍게 넘겼지만, 고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건 이런 나를 내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알아챈 뒤였다. 일어난 채로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는 지금의 모습보다 가만히 앉아 골똘히 고민하는 모습이 더 멋졌고, 글을 쓰겠다며 카페와 독서실을 전전하며 시간을 흘리는 지금의 나보다 집에서 엉덩이를 붙이고 두어 시간을 쓰는 게 더 원하는 모습이었다. 분명 내게 연락을 주겠다고 약속한 사람에게서 소식이 오지 않으면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 손톱을 없애는 것보다 차분하게 기다리며 그를 재촉하지 않도록 만들고 싶었다. 다음에 갈 장소를 머릿속으로 물색하느라 정신없는 것보다 지금 앞에 놓인 요리의 맛을 온전히 경험하고 싶었고, 빨리빨리 해야 인정받는 나라에서 옆 사람과 보폭을 맞춰 빠르게 달리다가 다치는 것보다야 느릿한 속도로 주변을 돌아보며 걸어가기를 바랐다. 지금의 나는 운동을 시작하고 일주일이 되면 왜 근육이 늘지 않는지 좌절했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계정에 사진을 올리면 왜 친구들이 이걸 봐주지 않는지 새로고침을 눌렀다. 근육량이 늘어야만, 하트가 솟아나야만 비로소 안도하는 게 지금의 나라는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다.


부족함을
견디는 연습


  친한 언니를 만나 나의 부족한 인내심에 대해 털어놓았더니 언니는 그야말로 빙그레 웃으며 답했다. "요가를 배워볼래?" 언니는 일 년 전부터 요가에 푹 빠져 온갖 요가 도서를 섭렵한 건 물론, 요가 자세를 취한 몸을 찍어 요가 일지를 쓰는 사람이었다. 평소라면 나의 뻣뻣한 유연성을 언급하며 한사코 거절할 텐데 오늘은 왠지 다르게 대답하고 싶었다. 몇 가지의 조언을 듣고 집에 돌아와 가장 먼저 한 것은 온라인 요가를 등록하는 일이었다. 요가 선생님이 찍은 오 분 남짓의 영상을 보고 한 주 동안 그 자세를 따라 했다. 신기한 건 같은 동작이어도 어느 날은 잘 되는 반면, 어느 날은 등 뒤로 손깍지를 쥘 수 없을 만큼 경직됐다. 하루하루 달라지는 몸의 기분을 고요하게 관찰하면서 실제로 사람들과 호흡을 나누며 요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오는 순간, 선생님께서 메시지가 왔다. 이참에 만나 함께 요가를 하는 건 어때요? 반갑게 응하고 다다른 요가원은 숲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기분이 좋아질 무렵에 나는 그곳에서 첫 번째 절망을 느꼈다. 요가원으로부터 받아 든 레깅스를 입었는데 다리 굴곡이 환히 보여서였다. 통통한 허벅지와 튼튼한 종아리를 숨길 수 없었다. 함께 요가를 하기로 한 사람들은 어찌나 몸매가 완벽한지 이대로 나가고 싶은 마음을 누르느라 혼났다.


  탄탄한 복근을 지닌 선생님은 우리를 둘러보며 말했다. "제가 아무리 완벽한 동작을 선보여도 여러분은 몸이 닿는 데까지만 해야 해요. 마음은 저 멀리인데, 몸이 따라주지 않는다고 자책하면서 억지로 뻗어 나가면 외려 다치고 말아요." 그러고서는 몇 가지 동작을 보였는데 목과 등, 엉덩이와 다리의 힘을 필요로 하는 자세였다. '업독'이니 '차투랑가 단다 아사나'니, '빈야사'니 하는 여러 동작을 이어 소화하는데 땀으로 목과 등이 흠뻑 젖었다. 요가는 가부좌를 틀고 가만히 앉아서 생각하기만 하면 되는, 그러다가 가끔 머리를 땅에 놓고 다리를 하늘로 쭉 뻗기만 하면 되는 정적인 운동이 아닐까 싶었는데 막상 해본 요가는 굉장히 동적인 운동이었다. 옆에서 사람들이 복근의 힘으로 배를 들어 올리는데 나는 자꾸만 엎어졌다. 다들 돌 위에 사뿐히 서 있는데 나는 흙탕물에서 자꾸만 미끄러지는 사람 같았다. 한 시간으로 잡힌 요가 시간이 당최 지나지 않는 듯했다. 선생님의 동작을 엿보는 것보다 시계를 흘끗거리는 빈도가 높아질 무렵, 부들거리는 팔을 애써 모른 체하며 하늘 위로 올리는 순간에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마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일 거예요. 하지만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족함을 견디는 연습을 해야 해요."


  동작 그대로 따라 해 보라는 말이 아닌 부족함을 견디어야 한다는 이야기에 감동받은 나는 몸에 들어간 힘을 서서히 뺐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되, 도무지 할 수 없을 것 같은 자세는 선생님이 제안하는 쉬운 대체안으로 바꾸었다. 물론 그런 생각도 불쑥 들었다. 다들 처음이라면서 왜 이렇게 잘하는 거야. 나는 쉬운 자세도 간신히 해내는 중인데, 어떻게 사람들은 어렵다는 머리서기 자세까지 척척 해내는 거야. 얼른 요가를 삶으로 들여와 어려운 자세도 빠르게 체득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니 마음처럼 굴러가지 않는 몸이 미웠다. 그럴 때마다 선생님의 말을 떠올렸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부족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세요. 그 말을 계속 곱씹자 내가 지닌 작은 인내심을 드디어 바라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여태껏 인내를 완벽하게 길러야 한다고 여겼다. 손톱을 물어뜯을지언정 참고 또 참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자고 다짐했다. 그러니 매번 실패하는 건 당연했다. 내 상태를 무시하느라 바빴으니까. 그보다 지금 내 상태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가득 메우려 하기보다 견디는 쪽으로 방향을 틀면 어떨까 싶었다. 뻣뻣한 몸을 그대로 인정하는 마음처럼, 남들보다 얕은 인내심을 너무나 미워하지는 말아야겠다고. 그러나 얕은 인내심에서 안주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쉬운 자세가 편해도 결국 닿고 싶은 자세는 배를 바닥에서 띄우고 팔과 머리를 하늘로 뻗어 올리게 하는 자세니까.


  한 시간의 요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스마트폰 알림을 전부 껐다. 누군가 게시글을 올렸다는 소식을, 좋아하는 브랜드에서 할인을 한다는 소식을 실시간으로 접하는 것도 좋지만 설령 그 순간을 놓치더라도 마음에 여유가 깃들었을 때 천천히 보면 인내심이 자라날 것 같았다. 알림을 끄고 나서는 장바구니에 넣어둔 침대를 지웠다. 지금 침대의 크기도 괜찮은데, 더 큰 침대가 오면 집이 더욱 괜찮아지지 않겠냐는 욕심으로 담아둔 침대였다. 완벽한 집은 없는 것처럼 지금 집도 충분히 괜찮다고, 이 부족해 보이는 집을 견디어야 더는 집 근처의 호텔을 떠돌아다니지 않겠냐며 스스로를 달랬다. 돌이켜봐도 이것만 가지면, 이것만 먹으면, 이것만 손에 쥐면 완벽할 것 같은 것들도 막상 지니고 나면 다른 것을 탐냈으니 요가에서 완벽한 자세를 취하더라도 또 흐트러진 생각에 몰입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작은 이토록 완벽하게 소화했는데, 왜 정신은 현재에 머무르지 않고 과거와 미래를 돌아다니며 걱정과 후회를 할 수 있으므로. 아직은 몸도 마음도 따라주지 않아 요가와 어울리는 사람은 아니지만, 완벽하게 하는 자세라고는 엉덩이를 발 뒤꿈치에 대고 팔에 편안하게 힘을 뺀 채 웅크리는 '아기 자세' 뿐이지만, 부족함을 견디는 연습을 하는 중이라고 생각하면 요가와 아예 어울리지 않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니까 누가 봐도 이 요가원에서 제일 못하는 사람은 나라고 해도, 이상하게 그 사실이 밉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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