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현요아 Aug 18. 2024

행복을 찾아서


이것만 먹으면, 저기만 가면, 이런 일만 생긴다면 금방 행복해질 거라는 믿음을 자주 가진다. 그러다 보니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실망을 넘어 화가 난다. 행복을 좇을수록 더욱 멀어지는 행복, 그러나 나 빼고 남들은 다 누리고 있는 듯한 행복을 종일 생각한다. 남들은 일상 속에서 조그만 행복을 잘도 알아차리는 것 같은데 나는 알다가도 자꾸만 잊어버려서 처음으로 돌아오는 기분이다.


행복을 향한 집념과 기대는 열흘 동안의 휴가에도 당연히 적용됐다. 잘 쉬면 입사날처럼 일하고 싶은 마음이 들끓을 거라고 확신했다. 라섹을 잘 마치면 렌즈 없이 세상을 환하게 볼 수 있으니 얼마나 기쁠까 상상했다. 감사함은 잠시뿐, 샴푸와 린스를 헷갈리지 않고 찾을 수 있다는 기쁨도 이내 사그라들었다. 휴가의 끝이 다가오자 이번에는 추석 연휴를 노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등이 배길 만큼 침대에 누워있으면 행복할 거라 장담하다가도 정작 등이 배기면 부지런하게 움직이지 않는 스스로가 한심해서 한숨을 쉬었다.


책을 세 권 내면 행복한 작가가 될 거라고, 뜻깊은 강연 문의가 들어오면 행복한 강연자가 될 거라고, 직장에서 인정받으면 행복한 직장인이 될 거라고, 친구나 애인과 다투지 않고 관계를 끈끈하게 지속하면 행복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했지만 하나를 이루면 바라는 건 또 다른 데 있었다. 지금 얻은 건 어차피 얻을 만한 당연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그러다 보니 도통 만족이나 감사를 할 수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당연히 얻을 만한 것이었고, 가지고 있지 않은 것만 추구하니 감사 일기에 쓸 만한 재료가 턱없이 부족했다.


감사 일기를 쓰려고 머리를 굴리면 떠오르는 건 이런 것만 생각났다. 네 시간을 기다려 맞닥뜨린 타코가 굉장히 실망스러워서 다음부터는 가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해. 불면이 심해서 잠을 두 시간밖에 못 잤으니 오히려 각성하며 생각의 늪에 빠질 수 있어서 감사해. 고마움을 비꼬기 시작하니 스스로를 싫어하는 마음이 강해졌다. 급기야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결론까지 다다랐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긴 거냐는 물음 같은 것.


행복해지고 싶다는 집착이 강해지자 질문은 돌아 돌아 본질로 갔다. 나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답은 간단했다.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것. 누군가 나를 존경하는 것. 내가 행복을 바라보는 시선은 모두 밖에 있었다. 불현듯 존경하는 직장 상사와의 대화가 생각났다. 그는 내게 일을 하며 어떨 때 기분이 좋냐고 물었고, 타인의 칭찬을 받을 때 기뻐진다고 답하자 상사는 고개를 가만히 끄덕였다. 내가 들은 질문처럼 상사는 어떨 때 기쁘냐고 물었더니 예상치 못한 답이 돌아왔다. "내가 만족스럽게 일을 했을 때 기뻐요."


타인의 시선, 타인의 말, 타인의 칭찬을 기준으로 일하는 나와 달리 스스로의 기준과 가치, 노력을 반영해 뿌듯해하는 상사를 상상하자 왜 그가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즐겁게 일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비결을 알 수 있었다. 나는 타인의 칭찬을 받지 못하면 자주 주눅이 들어 쉬고 싶다는 마음이 생기는 반면, 그는 기준을 스스로에게 두니 타인의 시선을 나처럼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행복의 기준이 내게 있다면 멀리 가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을 찾을 수 있겠다는 힌트를 얻던 날이었다.


주변에서 힌트를 얻지만 집에 오면 언제 그런 통찰을 얻었냐는 듯 김이 샌다. 더 많은 행복, 더 많은 물건, 더 맛있는 음식, 더 건강한 몸과 마음을 추구한다. 온라인에 전시되는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시시각각 비교한다. 반대편의 행복과 나의 행복의 무게를 잰다.


이 복잡한 꼬리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하나의 목표를 정했다. 행복을 계산하지 말자고.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오늘은 버스에서 기분이 나빴으니 집만 가면 행복해질 게 분명하다는 이상한 계산을 들이밀지 말자. 여기서 불행했던 기억은 저기서 행복으로 메울 수 있다는 묘한 계산을 하지 않으면 도리어 작은 행복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 행복은 완전히 이 하나의 행복,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니까. 지금 내가 만난 행복은 어제 겪은 불행을 액땜하기 위해 생긴 행복이 아니라 그저 내가 길을 걷다 만난 그대로의 행복이니까. 이 목표를 이루고 나면 다음 목표는 행복의 기준을 내게로 돌리는 일이다. 갈 길이 멀지만 설레는 걸 보니 아무래도 괜찮은 길인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