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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Sep 07. 2021

한자어, 겹말 그리고 뉘앙스

우리말 바로 쓰기

모든 사람이 자기의 의견을 말하고 논하며 문제를 같이 ···


겹말이 되더라도 “말하고 이야기하며”처럼 쓸 수 있다. 다만 굳이 겹말로 써야 하는가는 한 번쯤은 생각해 보면 좋겠다. 한 마디로 ‘말하다’나 ‘이야기하다’만 넣으면 넉넉하지 않을는지, 괜히 괜히 두세 마디로 길게 늘이는 말투가 아닌지를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

‘우리말 지기’를 자처하는 최종규의 《사랑하는 글쓰기》의 한 토막이다. 그의 겹말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다만 한자어를 우리말(토박이말)로 전부 고쳐 쓰는 게 우리말을 지키고 사랑하는 것인지 의구심이 든다.

우리가 알게 모르게 사용한 겹말을 고쳐준다. 더불어 한자어를 토박이말로 (최종규의 표현을 빌리면) 손보거나 다듬어 보여준다. 우리말을 지키는 첫걸음이 한자어를 토박이말로 다듬는 것이라는 말이다.

• 습관과 버릇, 연장과 도구, 치아와 이 ⇒ 어떤 말을 쓰는 게 좋을까? 한자어? 우리말?

• 다른 차이점, 넓은 광장, 넓게 확장 ⇒ 겹말이다. 우리말과 한자어, 같은 말의 반복이다.  ‘역전앞’과 같은.

• 산소에 벌초하러 가다 ⇒ ‘벌초伐草’는 ‘무덤의 풀을 베어서 깨끗이 함’이다. 우리말로 다시 풀어보면 ‘무덤에 가서 무덤의 풀을 베어 깨끗이 하러 간다.’는 말이다. 풀어보면 영 이상하다.  


우리는 많은 한자어를 쓰고  있다. 한데 우리말을 썼을 때와 한자어를 사용했을 때 표현하기 어려운 차이점이 있다. 바로 앞의 문장에서 ‘썼다’와 ‘사용’이라는 것은 같지만 다른 뉘앙스가 있다. 최종규가 다듬은 ‘말하고 논論하며’를 겹말이라 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다. 말하는 것과 논論하는 것은 같지 않다. 즉 어감 차이 또는 뉘앙스가 있다.

말하다와 論하다는 차이가 있고 이런 차이를 가진 말은 많다. 현학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한자어를 남용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무작장 한자어를 우리말로 바꾸는 게 우리말을 지키는 것은 아니다. 우리말과 한자어에 대한 편견일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읽는 이가 이해하기 쉽고, 느낌의 차이를 전달하는 글쓰기가 먼저이다.


친절한 글은 있어도, 친절한 독자는 없다.



편견 偏見
한쪽으로 치우친 공정하지 못한 생각이나 견해.

뉘앙스 nuance

어떤 말의 소리, 색조, 감정, 음조 등에서 기본적인 의미 이외에 문맥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섬세한 의미 차이.


말맛

말소리나 말투가 주는 느낌.


어감 語感

말소리 또는 말투의 차이가 주는 느낌과 맛.



덧_

《사랑하는 글쓰기》, 최종규, 호미, 2010년 12월 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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