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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루장 Jan 24. 2022

기형도, 장정일과의 짧은 여행 기록 그리고 김훈

김훈의 《내가 읽은 책과 세상》을 읽으며 기형도를 보았다. 김훈은 '기형도는 내 친구'라 했다. 또한 그와는 "큰 인쇄업종에 근무하는 동직자"이기도 하다. 1989년 봄, 기형도가 죽었을 때 김훈은 그를 추모하는 글을 남겼다. "그래, 그곳에도 누런 해가 뜨더냐. 다시는 돌아오지 말아라."


이러한 계기로 기형도를 다시 꺼내 들었다. 그의 글에서 장정일을 보았다. 참으로 기이한 인연이다. 기형도와 장정일은 연결을 생각하지 못했다. 기형도는 장정일을 '소년 장정일'이라 말하고 있다. 지금은 절판이지만 《짧은 여행의 기록》에는 같은 제목으로 여행기가 있다. 그중 대구에서의 장정일과 만남을 이야기하고 있다.




(.....)

어디로 가야 할지도 몰랐다. 마음 같아서는 제일 먼저 광주로 해서 해남, 혹은 순천 쪽으로 가고 싶었다. 그러나 날씨는 무더웠고 남도 행은 무의식적으로 장마와 함께 떠올라 왔던 터였다. 그래서 대구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는 장정일이라는 이상한 소년이 살고 있다.

(.....)

신문을 산 것이다. 성실함이라는 것이 얼마나 통속적인 미덕인가. 스낵 코너에서 밥을 먹으며 신문을 6개나 읽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대구행 버스는 저녁 5시 25분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시간이 너무 남아 욕탕에 가서 찬물 속에 한참을 지냈다. 그리고 창가에 앉아 불편하게 왼손을 노트를 바치고 이 글을 쓴다.


나는 왜 이 노트를 샀나. 내 습관이 여전하다면 이 노트는 여행의 종료와 함께 고의적으로 분실될 것이며 나는 마찬가지로 이번 여행을 잊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여행을 떠나고 있다. 대구에 가서 무엇을 할지 나는 모른다. 아마도 장정일 소년에게 전화를 걸 것 같다. 안 걸 수도 있다.

(.....)

대구에 도착하였다. 밤 9시 20분. 버스터미널은 환하였다. 예상했던 막막함이 덮치듯 나를 마중하였다. 먼저 내일 떠날 전주행 차편을 수소문해 보았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는 내일 전주로 떠날 것이다.


장정일에게 전화를 했다. 그는 집에 있었다. 10시에 대구백화점 앞에서 그를 만났다. 푸른 체크무늬 와이셔츠를 입은 짧은 머리의 소년, 우리는 가까운 호프로 가서 한 잔하였고 내가 시끄러운 곳을 싫어하는 줄 그는 금방 눈치챘다. 연전에 연재길이, 그 후에 박인홍이, 그리고 달전에는 박기영, 박덕규가 대구에 왔었다고 했다. 나에게 왜 술을 많이 안 하느냐고 그는 물었다. 나는 그와 이것저것 이야기했다. 그는 자신은 직업으로 시를 쓰고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열음사에서 포르노 소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아니 나도 그것을, 아니 《그것은 나도 모른다》(1천 매)가 곧 나올 거라고 했다. 서울서 봤을 때는 말이 없었는데 대구라 그런지 말을 많이 하였고 발랄했다. 나는 그에게 전화할 때 중앙이다라고 했다. 그가 《문학정신》에 발표한 '중앙과 나'를 빗댄 것이었다. 그는, 중앙이요? 하다가 웃었다. 누구세요? 중앙이라고요. 나는 말했다. 그는, 기형도 형이군요, 했다. 호프집에서 윈저궁을 본뜬 지하 레스토랑에서 장정일 소년과 나는 맥주를 시켰고 <파리 텍사스>, <베티 블루> 등의 영화 이야기, 세기말 이야기를 했다. 그는 뮤지컬 드라마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에서 막달라 마리아가 부른 <I don't know how to love him> 이야기를 했다. 지금까지 해온 섹스 방법(편안한)으로는 그를 사랑할 수 없어 절망하는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는 했고 요즘 젊은 시인들 이야기를 했다. 그는 솔직히 말해 이윤택, 김영승, 윤상근의 시가 싫다고 했고, 이문재의 초기 시는 너무 아름답다고 했으며 그러나 이문재는 더 이상 시를 못 쓸 것 같다며 진심으로 슬퍼했다. 그는 내 시를 좋아한다고 했다.

1시쯤 우리는 그곳을 나왔고, 그는 원재길과 시인들을 재워준 곳이라며 무슨 여관으로 나를 끌고 갔고, 방앞에서 안녕히 주무시라고 이야기한 뒤 도망치듯 뛰어나갔다. 왜 대구에 왔느냐고, 휴가 때 그 좋은 도시를 다 버리고 하필이면 대구에 왔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아무 곳이든 서울만 벗어나다면, 떠나고 싶었다고 했다. 전주에 약속시간을 정하고 가느냐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절이 그곳에 있다고 했다.

장정일은 책은 지문 묻을까 봐 손을 씻은 뒤 읽으며, 초판만 읽지 재판은 읽지 않으며, 책에는 볼펜 자국을 남기지 않으며, 한 번 본 시들은 모두 외우다시피 한다고 내게 이야기했다.

대구는 크고 넓었다. 밝고 우글거렸다. 장정일은 대구는 부산의 절반도 안된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내 고통의 윤곽을 조금 말해주었다. 그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맥주만 마시니 기분이 이상하다고 중얼거렸다. 대구에서의 1박은 이렇게 지나갔다.

(....)

지금은 오후 4시 30분의 폭염, 정치부에 있을 때 취재차 잠시 들려보았을 뿐 전라全羅는 나에게 미지의 땅이다. 어제 정일 군은 그랬다. 광주에 못 갈 것 같다고, 지금 성지순례의 땅이 돼버린 광주로 가는 길이 무슨 속죄의 길이 되는 것 같은 느낌 때문이라고. 그는 단 한 번도 광주로 가지 않았다. 나 역시 전주와 광주는, 나이 삼십 세에, 초행길에 다름 아니다.

(....)

※ 이 글은 '1988년 8월 2일(화요일) 저녁 5시부터 8월 5일(금요일) 밤 11시까지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의 기록'이라는 메모가 적혀있는 노트의 전문이다. - 편집자




짧은 여행의 기록의 육필원고


이렇게 기형도는 장정일과의 만남과 헤어짐을 말하고 있다. 내 느낌으로는 기형도는 '소년 장정일'에 대해좁다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내가 좋아하는 두 명의 만남, 그것이 아련한 기억 속으로 빠져들게 한다.




시는 어쨌든 욕망이 있다. 그러나 나에게는 지금 욕망이 사라졌다. 그건 성聖도 아니다. 추악하고 덧없는 생존이다. 어쨌든 나는 오래도록 기다려 왔던 탈출 위에 있다. 나는 부닥칠 것이다. 공허와 권태뿐일 것이다. 지치고 지치서 돌아오리라.


나는 너무 좁다. 처음 대구에 내렸을 때나 전주에 내렸을 때 감당하기 힘들었던 막막감, 그토록 증오했던 서울, 내가 두고 온 시간과 공간의 편안함에 대한 운명적 그리움, 난 얼마나 작은 그릇이냐, 막상 그 작은 접시를 벗어났을 때 나는 너무 쉽게 길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서고사의 밤은 깊다. 풀벌레 소리 하나만으로 나는 이 밤을 새도록 즐길 수 있다.




기형도의 여행의 목적과 고민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 귓가에 맴도는 듯합니다. "지치고 지치서 돌아오리라"


덧_

《기형도 산문집 - 짧은 여행의 기록》, 기형도, 살림

《내가 읽은 책과 세상》,푸른숲, 2007년 10월 개정판 4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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