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자신을 놓을 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영생을 얻는 길은 자살뿐이다. 자고 일어나면 듣는 수많은 자살 소식, 하지만 그 많은 자살 중 진정한 자살은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자살을 가장한 사회적 타살이다. 자신을 놓으려는 행위가 아닌 타인이나 다른 이유가 나를 놓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었다. 수많은 자살은 진정한 의미의 자살이 아니다.
자연이 인간에게 선물한 온갖 선물 중에서 적절한 시기에 죽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다는 것을, 각자는 무엇보다도 자기 영혼의 약으로서 기억해 두는 것이 좋다. 더구나 그 가운데에서 가장 뛰어난 선물은 자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이라고 할지라도 결코 만능이라고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은 설사 스스로 자살하기를 바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그것이 가능하다. 스스로 죽음을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신이 인간에게 부여한 가장 최상의 선물이다.
_《박물지》, 플리니우스
가족을 잃고 아파도 말하지 못하고 슬퍼도 내색하기 힘든 사람이 있다. 가족 자살로 떠나보낸 자살 유가족들이다. 매년 자살 사망자는 1만 3000여 명. 자살 유가족은 최소 7만 ~ 14만 명으로 추정된다.
가족이 세상을 떠난 이유가 자살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들.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여러 문제가 눈앞에 닥쳤다. 죽음의 이유가 자살인지를 외부에 알릴지 말지, 사회의 시선과 관계의 문제뿐 아니라 고인이 남기고 간 채무 등 경제적 문제, 고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부딪쳐야 하는 행정처리 문제 등 이들이 처리해야 할 문제도 많다.
자살 생존자란 누구인가? 흔히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s)를 자살 시도에서 자살을 달성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사람, 즉 자살 시도자(Suicide Attempters)로 오해하지만, 자살 생존자란 가족, 친구, 동료, 유명인 등 사회적 관계 내에서 발생한 자살을 경험하고 그러한 심리적 외상을 견디며 생존해 가는 사람을 뜻한다. 자살 유가족을 포함해 가족 외의 친밀한 사람까지 확장된 더 큰 개념이다.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자살자로 인해 영향을 받는 사람, 우리는 모두 자살 생존자이다.
자살 생존자들의 우울증 위험성은 18배나 높다고 한다. 유가족의 97.5%가 일상생활의 변화로 힘들어한다. 비극이 또 다른 비극으로 이어지면 안 된다.
걱정 마, 어차피 잘 안 될 거야. 우리 자연사하자. 우리 자연사하자. 혼자 먼저 가지 마. 우리 자연사하자.
오늘 또 자살이라 불리는 소식을 들었다. 자살의 원인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우울증이라는 진단명을 다시 들었다. 우울증을 죽음의 원인이라 단정할 수 있을까? 모든 죽음을 설명하기 어려운 ‘우울증’으로 치부한다.
오늘날 만연한 자살은 ‘자아’들이 덮어쓴 양면 가면의 어두운 뒷면이며, 그 앞면은 경쟁의 전쟁터를 그야말로 홀로 ‘각개약진’하는 ‘자기 계발’ 전사의 ‘쿨하고’ 잔인한 얼굴이다. 이 야누스는 심약하고 허약하다. 각도를 조금만 틀면 가려진 그의 뒷면이 보인다. 쓰러지도록 지치고, 더 외로운. _《자살론》, 천정환
‘쓰러지도록 지치고, 더 외로운’ 그녀의 모습보다 그녀의 주검을 발견한 초등학교 2학년 아들이 떠오른다. 부디 그에게 엄마를 보낸 기억이 오래 남지 않기를. 그녀에게 김훈이 기형도에게 했던 말을 전하고 싶다. “그래, 그곳에도 누런 해가 뜨더냐.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무언가를 거절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그 무언가를 계속해서 미루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마찬가지로 우울증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계속해서 미뤘으면 한다. 오늘 죽고 싶더라도, 지금 옥상 난간 앞에 서있더라도 말이다.
한 번쯤 뒤를 돌아보며 화분에 물을 줘야 하는데, 숙제해야 하는데, 유서를 데대로 쓰지 못했네, 충분한 인사를 나누지 못했네, 먹고 죽은 놈이 때깔이 좋다고 배는 채우고 가야지. 갖은 핑계를 대며 죽음에 대한 시도와 멀어져라. 사람은 언젠가 죽는다. 굳이 오늘일 필요 없다.
부디 혼자 먼저 가지 말자. 우리 함께 오래오래 남아 자연사하자.
덧_
<우리, 자연사하자>, 미미시스터즈
사회적 관계 내에서 자살을 경험한 자살 생존자(suicide survivors)의 정신건강 추적연구, 연세대학교
《자살》, 이진홍, 살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