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 문장을 따라 쓰고 싶었다

by 비루장

그 문장을 따라 쓰고 싶었다


그 문장을 따라 쓰고 싶었다.

너무 좋아서,

너무 내 것 같아서.


그래서, 훔쳤다.

당신의 문장을.


처음엔 그냥 따라 썼다.

출처는 지웠고,

맥락은 바꿨고,

누가 썼는지 묻지 않았다.


좋아서.

그저, 좋았기 때문에.


그 문장을

내 마음으로 들리게 했고,

내 이름으로 불렀다.


그건 인용이 아니었다.

도용이었다.

표절이었다.


감탄으로 시작해

침묵으로 덮고,

끝내

이름을 바꿔 불렀다.


표절은

몰라서가 아니라

모른 척에서 시작한다.


출처는 거슬렸고,

이름은 불편했고,

그 밤의 이야기는

멀게 느껴졌다.


그래서 지웠고,

삼켰고,

훔쳤다.


좋은 문장을 만났을 때

멈추게 된다.

어디서 왔는지,

누구에게 빚졌는지

묻게 된다.


그렇게

기억한다.


사랑에는

출처가 있다.


저작권은 금지가 아니라

기억하고 남기는 일이다.

말의 시작이기도 하고,

말하지 않아도 되는 마음까지

건네는 예의다.


지금은,

그 문장을 빌려 쓰기보다

기억하고 싶다.


좋아서,

가져온 게 아니라

좋아서,

기억하고 있다는 걸.


그 문장은

먼저 울고 있었다.

그래서 멈췄고,

그 울음은

그대로 두었다.


지금,

누구의 문장을 쓰고 있는가.

나는 여전히,

그 물음 아래 서 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