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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산프로 Feb 03. 2019

퇴근하고 쓰는 글_설날

 승진도 했고, 성과급도 받고, 명절 떡값도 받았다. 그래서 와이프한테 작은 선물도 했고 2019 시즌 사회인 야구 회비도 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백화점 회전 초밥집에 가서 초밥도 먹고, 처음 보는 수입 맥주도 왕창 사서 맥반석 오징어랑 먹으면서 괜찮은 시간을 보냈다. 거기다가 요즘 푹 빠져있는 미드 "슈츠"까지 보면서 말이다. 그 행복했던 순간 전화가 울렸다. 우리 부모님이 전화를 주신 건데.. 자세히 쓰기는 어렵지만 내가 아들 노릇을 못해서 엄청 섭섭하다고 한바탕 화를 풀어내셨다.


 생각이 복잡했다. 전자의 세 가지 좋은 일이 있어도 회사를 더 열심히 다니는 원동력이 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먹고살아야 하기 때문에 푹 쉬면서 마음을 다잡고자 했는데.... 쉴 틈이 없게 느껴졌다. 부모님 댁에도 가고 자식으로.. 사위로.. 역할을 해나가려고 하다 보면... 난 도대체 언제 쉬냐..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연휴에도 어김없이 일을 해야 한다. 토/일은 무조건 쉴 생각이고 월요일부터는 원격으로 일을 해야 한다. 그래야 얼마 남지 않은 행사를 쳐낼 수 있다. 해야 할 일은 엄청 많은데.... 그냥 회사 다니는 것만으로도.. 너무너무 힘든데... 내가 가지고 있는 역할은... 왜 또 나를 힘들게 하는 건지...


 물론 그분들의 도움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잘 안다. 계실 때 잘해야 하는 것도 알고 그렇지만... 나.. 나라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라는 것인지 참 힘들게만 느껴진다.


 요즘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당연하다. 솔직히 생판 모르는 남 아닌가! 그리고 내 남편의 부모님일 뿐 막말로 남이라고 해도 전혀 틀린게 아닌 사이에서...서로에게 뭘 그렇게 많이 바라는지...그냥 내자식이랑 사는 남의 자식이라고 생각했으면 좋겠다. 난 이 생각을 처가와 사위간의 관계에도 똑같이 적용했으면 좋겠다. 내 자식이랑 사는 남의 자식일뿐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사이로...


 명절 때는 그냥 각자 집에 가서 있다가 왔으면 좋겠고...생신도 진짜 자식들이 알아서 챙겼으면 좋겠다. 결혼할 때도 부모 도움 하나도 받지 않고 자식들끼리 알아서 집 준비도 하고(원룸에서 월세로 시작하더라도..) 그렇게 진짜 스스로 준비하면...어느정도 도리에 대한 것에서도 좀 자유롭지 않을까?


 혼자였으면 좋겠다.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다들 못한다고 나한테 뭐라고 한다. 회사-배우자-가족 모두가 다 나한테 못한다고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회사가 제일 좋다. 제일 단순하고 깔끔한 관계니까.


 누군가의 남편, 누군가의 자식 그리고 누군가의 사위라는게...이렇게 힘들어야 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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