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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필립 Dec 13. 2024

아빠가 간다

한강의 소년이 온다.


조용한 저녁 식탁. 그러나 그날은 달랐다. 너는 술에 취해 돌아오며 한 마디로 시작되었다.


이번 달 대출 좀 더 받자. 가족 여행도 가고, 내가 사고 싶은 텔레비전도 하나 사야겠다.


말을 꺼낸 순간, 식탁은 얼어붙었다. 가장 먼저 어머니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지난달 대출도 아직 못 갚았잖아요. 게다가 이번 달 생활비는 어떻게 하려고요?


너는 비웃듯 술잔을 내려놓았다. 너무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내가 가장이잖아. 내가 알아서 해.


첫째 아들 석두 너를 거들고 나섰다. 맞아요. 아빠 말이 맞아요. 요즘 우리 집 너무 답답해요. 새 텔레비전도 필요하고, 여행도 좀 다녀야죠. 다들 너무 구식이에요.


어머니의 얼굴이 굳어졌다. 석두야,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지금 수입보다 지출이 훨씬 많아. 대출을 계속 늘리면 나중엔 집까지 잃을 수도 있어.


그 순간, 둘째 아들 운한이 입을 열었다.

저는… 잘 모르겠어요. 아빠 말도 맞는 것 같고, 엄마 말도 맞는 것 같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갈팡질팡했다.


셋째와 넷째, 아직 어린 나이지만 어머니 곁에 앉아 작게 중얼거렸다.

엄마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대출은 너무 무서워요. 그냥 지금처럼 아끼며 살면 안 돼요?


하지만 막내, 다섯째 홍역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저는 맛있는 거 준다니까 찬성! 치킨 먹고 싶어요!


어머니는 한숨을 내쉬며 너를 다시 바라봤다. 당신, 이렇게 아이들까지 나눠놓고 대체 뭘 하자는 거예요? 미래는 생각도 안 해요?


너는 갑자기 소리쳤다. 그만! 내가 이 집 가장이야. 내가 결정하는 거야! 당신은 그냥 따라오기나 해!


어머니가 반박하려 하자, 너는 술잔을 집어던졌다. 유리잔이 깨지며 온 식탁이 어수선해졌다. 막내는 놀라 울음을 터뜨렸고, 셋째와 넷째는 겁에 질려 어머니 뒤로 숨었다. 첫째 석두는 너의 편을 들며 말했다.

아빠가 말하는데 왜 자꾸 엄마가 반대해요? 그냥 믿어보면 안 돼요?


그러나 어머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당신은 이 가족의 미래를 망치고 있어요. 대출은 해결책이 아니에요. 우리가 갚아야 할 돈, 아이들의 미래가 걸린 문제예요.


너는 화를 참지 못하고 어머니의 팔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이제 그만하라고 했잖아! 내가 알아서 한다니까!


그 모습을 본 운한이 그제야 결심한 듯 말했다.

아빠, 그만해요! 엄마가 맞아요. 이렇게 하면 우리 진짜 망해요.


석두가 운한을 바라보며 쏘아붙였다. 배신자! 넌 언제나 애매해. 아빠 편도 못 들면서.


식탁은 난장판이 되었고, 막내 홍역은 여전히 치킨 이야기를 하며 소란을 더했다. 그날 밤, 너는 결국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대출 서류를 작성했다. 어머니는 말릴 힘조차 잃고, 아이들은 각자의 입장에서 혼란에 빠졌다.


가족은 한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너의 무책임과 권위적인 태도는 가족을 하나로 묶기는커녕, 서로를 분열시켰다.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 당장의 욕망을 좇는 사람, 그리고 갈팡질팡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 집안의 미래는 그저 어두운 그림자처럼 드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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