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11시간 타고
한국 온 유기견
미국에서 태어난 두부가 한국에 오기까지
안녕하세요. 저는 두부라고 해요.
엄마가 짐작하는 제 나이는 일곱에서 여덟이고요. 제 진짜 나이도 뭐 비슷은 해요. 저는 미국에서도 안락사율이 높은 LA의 보호소에서 왔어요.
비행기타고 11시간이나 걸리는 그 곳에서 제가 여기까지 온 이야기 한번 들어보실래요?
아직도
첫 번째 엄마가 보고싶어요
저는 2010년 6월 29일에 다른 강아지 친구에게 공격을 당해서,
한쪽 눈을 다쳤어요. 저는 그 이후로 저를 그때까지 키워준 첫 번째 엄마를 다시 볼 수 없었어요.
저의 첫 번째 엄마에게 무슨 사정이 있었겠죠. 당연히 그랬을 거예요.
정말로 만약..만약에 다친 제 눈 때문이라면 조금은 슬플 것 같아요.
왜냐하면 저는 아직도 저의 첫 번쨰 엄마가 많이 보고 싶거든요.
어쨌든 저는 그렇게 보호소에서 안구적출 수술을 받고,
난생처음 차갑고 딱딱한 철장에서 생활하게 됐어요.
여기 얼마나 별로냐면요!
저 푹신한 거 되게 좋아하는데, 달랑 신문지 한 장 깔아주는 거 있죠?
저 간식도 엄청 좋아하는데요. 매일 맛없는 사료만 주는 거예요.
또 없어진 한쪽 눈은 얼마나 아픈지. 의사 선생님이 잘 꿰매 주셨지만,
소독할 때마다 너무 아파서 이를 꽉 깨물어야 할 지경이에요.
근데 그런 것들 다 참을 수 있었어요. 그런 것쯤은 저도 다 컸는데, 괜찮아요.
근데요. 제가 정말 많이 슬펐던 건요.
제가 제일 좋아하던 엄마가 없어졌다는 거였어요.
하루 자면 엄마가 다시 데리러 오려나? 또 하루 더 자면 엄마가 오려나?? 하고 기다렸어요.
보호소에 낯선 발자국 소리만 나도 귀를 쫑긋 세웠어요. 우리 엄마인가?
보호소에서 저를 돌봐주시는 분들이 익숙해져 갈 때쯤 생각했어요.
'아, 우리 엄마 오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고요.
그런 생각이 드니까, 막 삐뚤어지고 싶은 거예요.
아픈 치료도 더 이상 하기 싫고, 맛없는 사료도 억지로 먹기 싫고
돌봐주는 선생님들도 그냥 꽝 하고 물어버리고 싶어 졌어요.
모든 것이 다 귀찮았어요. 그냥 아무것도 행복하지 않았어요.
저한테는 엄마가 전부였는데, 저의 전부인 엄마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싫었어요.
간식 먹으러 가는 날
건너편 철장에 있던 11살 형아는요. 매일 보호소 선생님 말도 안 듣고,
시끄럽게 소리만 내더니 어느 날부터 안 보이는 거예요.
애들 말로는, 간식 먹으러 간 거래요. 여기 보호소에서는 처음이자 마지막 딱 한 번 간식을 줘요.
바로 안락사하는 날이에요. 저도 그 간식이 먹고 싶어 졌어요.
건너편 형아처럼 나쁘게 행동하면, 저도 그 간식을 먹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때 지금의 우리 엄마를 만났어요. 저한테 막 친한 척하는 거예요.
언제 봤다고?
모든 게 다 귀찮아 죽겠는데, 계속 와서 말 걸고 만지려고 하고!
한 번 으르렁 거렸더니 뒤로 물러서긴 했지만요.
그렇게 지금의 우리 엄마가 저를 보러 와줬어요.
제 기분이 좀 상하면 꽝하고 엄마 손을 물어버리고 했지만, 엄마가 계속 절 보러 와줬어요.
저는 그렇게 지금의 엄마를 만나서, 샌프란시스코에서 2년 반을 함께 살고 엄마를 따라 한국까지 오게 됐어요. 미국 태생 강아지가 한국 오는데 기분이 어땠냐고요?
뭐 좋았어요!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보고.
아! 근데 하나 걸리는 거 있었는데.
이렇게 멀리멀리 비행기 타고 제가 가버리면,
첫 번째 엄마를 정말로 다시는 못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거.. 그거 하나요..
이제 진짜 첫 번째 엄마 이야기는 그만해야겠어요.
우리 엄마가 질투할게 뻔하거든요.
저는요
지금 되게 되게 행복해요
아빠도, 엄마도 저를 제일로 사랑해주고요. 저도 엄마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다시 저의 전부가 생겼어요. 보호소에 있는 다른 친구들도, 저처럼 가족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다들 그냥 옛날 엄마가 너무 보고싶고, 그리워서 나쁜 강아지처럼 구는 거예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요.
저희는 그냥 사랑을 받고 싶고, 이 넘치는 사랑을 주고 싶은 연약한 강아지일 뿐이에요.
제 친구들을 꼭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