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빈틈
매일 같은 날처럼 살았던 하루가 달리 보였다.
아침 6시 20분 허둥지둥 일어난다. 급하게 쌀을 씻고 비상용 곰국을 끓인다. 김장 김치와 몇 가지 반찬만으로 아침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출근 준비를 마치면 8시 30분이다. 헐레벌떡 버스를 타고 회사에 도착하면 9시. 처음이 어렵지 반복되는 일상 속에 지각하는 횟수가 늘어가고 있다. 구멍 난 빈틈에 비겁한 변명을 붙이며 정당하게 포장하려는 나 자신이 부끄럽다.
빈틈은 무엇일까. 채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고, 비워야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내가 생각하는 빈틈은 부족한 걸 가리키는 말 같고,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는 말 같기도 하다. 나의 부족한 점이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가족과 사회의 보호로 가려졌던 민낯이 결혼 18년 차에 낱낱이 밝혀지고 있다. 살림을 하고 한 가정의 독립적인 주체가 되면서 감춰진 빈틈이 하나씩 드러났다. 하고 싶은 것만 하는 나, 내가 싫으면 남도 절대 못하게 하는 나. 비뚤어질 줄 모르고 바른생활만 했기에 내가 하는 억지 행동이 바르다고 믿었다.
갈등을 겪으며 내가 지닌 빈틈 사이로 남편의 아픔이 보였다. 내가 잘못 판단했다는 걸. 고집 세고 이기적인 나를 배려한 남편의 진심을 당연하게 강요했다.
나의 민낯을 매일 적고 있다. 매주, 매일 계획을 세우고 짜인 일정대로 살지 않으면 낙오자 같아 자책하는 날이 많았다. 그 일상을 깨트리고 나니 불안이 사라졌다. 매일 같은 날처럼 살았던 하루가 달리 보였다. 아침에 눈을 떠 꼭 해야 하는 두 가지 일을 떠올리고 나면 오늘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설레었다.
오늘은 일찍 일어났다. 어제 한 일을 상세히 떠올리며 적었고, 새벽에 한 일을 적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적지 않았다. 메모의 목적은 반드시 행한 일만 기록한다는 취지다. 왜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갈등은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만큼 여유라는 선물을 주는 거 같다. 남편이 본 내 모습은 부끄러울 만큼 이기적이었다. 내가 싫은 건 절대 용납하지 않았다. 결혼을 했고 부부니깐 그래야 한다고 나 혼자 생각한 고정관념을 법인 양 강요했다. 남편이 얼마나 이해하고 참았는지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을 앞두고 미안한 마음을 문자에 고이 담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