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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Dec 10. 2023

한 낱 먼지처럼

내 곁에 쌓이고 있는 먼지를 보지 못했다

세탁기를 바꾸기로 했다. 전날 배송 일정 조율을 위해 배송업자가 전화를 하는지 몰랐다. 지방출장 다녀온 남편과 저녁식사 후 휴대폰을 보니 부재중 9 통과 문자 4통이 와 있었다. 깜짝 놀라 시계를 보니 밤 10시였다. 물류 프로세스 상 전날 저녁 6~7시 사이 배차가 진행되어 순차적으로 전화를 하여 출고를 진행한다고. 전화를 받지 못한 내 탓이기에 배송이 미뤄졌다. 덕분에 토요일 여유 시간이 생겼다.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주말은 아침을 먹고 도서관에 간다. 도서관에서 마시는 커피는 향긋하다. 밀린 독서와 글을 쓰는 시간은 일상의 피로를 풀어주는 달콤한 보상이다.

오늘 여유시간은 밀어둔 집안일을 했다. 제일 중요한 일인 아들과 아버님의 뜯어진 바지단을 꿰맸다. 걸레질을 하는데 소파와 운동기구 아래 쌓인 먼지가 보였다. 평소 눈에 잘 보이지 않던 먼지 덩어리가 소파 밑에서 나왔다. 바쁘다는 이유로 눈에 보이는 곳도 청소하기 어려운데 안 보이는 곳은 오죽하랴. 요령이 생겨서 바닥을 닦을 때 놓인 물건을 치우지 않고 그냥 닦았다. 소파와 운동기구 틈새를 닦다 보니 무엇이 소중하고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정리가 되었다. 바쁘다는 건 핑계였다. 한 달에 한번 먼지를 닦듯 내 마음도 닦아야겠다.


손님이 오면 청소를 한다고 했던가. 세탁기를 선물해 준 시누내외에게 식사 한 끼를 대접하기 위해 청소 후 장을 보러 나섰다. 차를 가지고 마트에 가려 했는데 우리 차를 막고 있는 차 때문에 버스를 탔다. 친정어머니를 따라가 김장 때 샀던 생굴과 알배추가 생각나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큰 장바구니를 들고 버스에 타며 부끄럽지 않았다. 차가 없기에 무겁지 않게 필요한 물건만 간단히 사서 버스를 타기 위해 정류장으로 향했다. 거리에 내놓은 물건이 눈에 띄었다. 장바구니가 무겁지 않았다면 눈에 보이는 물건을 샀을지도 모른다. 꼭 필요하지 않지만 싸다는 이유로.


수입보다 지출이 커 진 요즘. 돈을 쓸 때 꼼꼼하게 계산한다. 재래시장에서 카드 대신 현금을 쓰니 돈의 가치가 바로 계산되어 꼭 필요한 것만 사게 되었다. 카드는 돈이 많은 것 같은 착각으로 필요하지 않지만 싸면 사게 만든다.


지금까지 날 가장 힘들게 한 건 무엇일까. 내 곁에 쌓이고 있는 먼지를 제대로 보지 못한 나였다. 오늘 청소는 가족을 위한 게 아닌 바로 나를 제대로 보기 위한 시간이었다. 먼지처럼 가늘고 보드라운 나의 티끌이 쌓이고 쌓이면 덩어리가 되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매달 둘째 주 주말에는 먼지를 훌훌 털어버리기로 마음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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