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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가족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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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글사랑 Dec 14. 2023

크리스마스 선물

나도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올 겨울은 춥지 않다. 더웠던 여름만큼 겨울도 추울 거라고 해서 여름에 세일하는 롱패딩을 샀는데 입고 나간 게 손에 꼽힐 만큼 춥지 않다. 겨울마다 학생들이 즐겨 입던 롱패딩은 부모가 입고, 학생들은 숏패딩을 입는다고. 마네킹에 걸린 숏패딩 점퍼를 보니 중학교 2학년인 조카가  생각났다. 자신의 불편하고 복잡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어 말수가 줄었고 작은 이야기에 표정이 굳는 모습이 그야말로 사춘기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조카들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챙기지 않았는데 며칠 전부터 예쁜 점퍼가 눈에 아른거린다.


산타가 되어 몰래 사서 주려고 했다. 점퍼가 유광과 무광으로 두 종류이고 색깔도 마음에 들어야 하니 취향 존중을 위해 데려가서 사주기로. 사진을 찍어 보내주니 우선 브랜드와 디자인은 흡족해했다. 기분 좋게 시험 잘 보고 만나자고 여운을 남겼다.


지난 주 김장을 했다. 작년만 해도 음식을 하면 옆에 와서 자기도 해보고 싶다고 부산을 떨며 거들던 녀석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가족에게 유난히 정을 쏟던 녀석인데 남보다 자신을 챙기기 바빴다. 사춘기라 새침하게 그러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걸 인정해주지 않고 할머니에게 잔소리를 듣는 게 애잔했다. 우리는 어렸을 때 부모가 시키는 대로 기분이 좋든 안 좋든 다 했다. 물론 좋은 점도 있지만 가끔은 당당하게 내 의사를 밝히지 못할 때 씁쓸하다. 조카의 꼭 다문 입술이 나를 보는 거 같아 속상했다. 고등학교 진학문제로 의사를 결정할 때 아이의 생각을 반영하는 건 당연하지 않을까. 자신이 선택했기에 책임감을 갖고 끝까지 가보는 경험은 반드시 필요하다. 중도에 하차를 하거나 다른 길로 가는 것 또한 경험이리라.


마네킹 앞을 지날 때마다 숏패딩을 입고 좋아할 조카 모습이 떠올랐다. 난 어떤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고 싶을까. 선물을 하는 건 생각해 봤지만 나를 위해 선물을 준비하는 건 생각해보지 않았다. 평소에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시기를 보고 사는 편이라 크게 갖고 싶은 게 없지만 나도 다음에는 나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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