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말
행복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품던 시절이 있었다.
반감 이라니. 다른 것도 아닌 행복에? 그랬다. 어느 한 곳이 단단히 꼬인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특이한 시선이 나를 강렬하게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희미한 뉘앙스는 있을지언정 정확함이나 실체가 결여된, 오직 추상으로 존재하는 언어로 무엇을 겨냥할 수 있을까? 이른바 ‘느낌’이라는 모호한 개념일수록 그것을 설명하기 위한 구체적인 언어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살짝 비틀린 의문과 회의감으로 행복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땐 늘 주저하고 고민하면서 다른 말을 찾으려 했다. 더 정확한 표현. 더 확실한 단어.
당연한 말이지만 행복을 표현하기에 행복보다 정확하고 확실한 언어는 없다. 누군가 “행복하다”라고 하면, 우리는 손쉽게 둥글고 밝고 복된 기운을 전해 받는다. 행 복이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은근한 기쁨과 귀한 만족감, 어둠 속에 환한 빛이 드리워질 때 느끼는 마음 놓임과 다 행스러움. 이 모든 게 얼마나 좋은지 알면서도 소설 속 인물들에게 행복의 형상을 투영한 적이 별로 없다. 그들 은 늘 운이 없고, 의도치 않은 상황에서 허우적대고, 골 치 아픈 일에 휘말리느라 ‘행복’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자신의 언어로 만들 여력이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예 전의 나처럼 행복이라는 단어에 반감을 품을지도 모르 겠다. 그들은나와많은부분닮았고, 그사실은놀랍지 도 않으니까. 놀라운 것은 불운의 한가운데 내던져진 그들이 이제와서 행복한 곳에 가닿았길 바라고 있는 나의 마음이다.
그들이 행복한 곳. 그곳이 어디일까.
나로선 알 수 없다.
다만 그들이 속한 세계에 그림을 주고 싶었다.
나에게 의미가 있고, 위로가 되는 것.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아무도 모르는 이야기가 겹겹이 감추어져 있어 들여다 볼수록 더 많은 이야기가 솟아나는 그림을 옆에 놓아주고 싶었다.
-회화와 소설이 함께 있는 소설집 <가장 행복한 곳으로>에 수록된 작가 에세이 '가장 행복한 곳으로' 중에서-
표지 그림_ 규옥
Painting_Gyu Ok J.