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양 업체가 있는 동네는 세광맨션보다 더 볼썽사나웠다. 뻥뻥 뚫려 있는 문이 심심치 않게 보였고, 벽은 완전히 허물어진 것도, 제대로 서 있는 것도 아닌 채로 기우뚱했다. 재개발 때문에 방치된 집들이었다.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빈집들 사이에 수화 샘이 찾았다는 업체가 있었다.
“저기가 맞는 것 같다.”
수화 샘이 4층짜리 건물을 가리켰다.
“간판 같은 것도 없네요?”
건물에는 승강기도 없었다. 우리는 4층까지 걸어 올라갔다. 헉헉거리는 나와 달리 수화 샘은 숨 한 번 크게 내쉬지 않았다. 내가 아무 표지도 없는 회색 현관문에 손바닥을 대고 숨을 고르는 동안 수화 샘은 망설임 없이 벨을 눌렀다. 기척이 없자 두어 차례 연속으로 눌렀다. 그래도 주인이 나오지 않자 주먹을 쥐더니 현관문을 쾅쾅 두드렸다. 이래도 될까…… 남의 집 문인데……. 걱정하는 순간 인기척이 나더니 잠금장치가 풀렸다. 나는 화들짝 놀랐다. 안에 사람이 없으려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문을 연 사람은 깡마른 남자였다. 남자는 자다 깬 것처럼 부스스한 차림으로 수화 샘과 나를 훑어보았다.
“입양 문의하러 왔어요.”
수화 샘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남자는 당황한 것 같았다. 처음보다 더욱 노골적인 눈으로 우리를 한참 살핀 후에야 경계할 만한 대상이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끽 소리를 내며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암막 커튼이 창을 틀어막고 있는 실내는 대낮인데도 어두침침했다. 가구라고는 3인용 소파와 테이블뿐이었고, 한쪽에는 낡은 철제 사물함이 버려진 것처럼 방치되어 있었다. 신발은 벗을 필요가 없었다. 바닥에 깔린 나뭇결무늬 장판이 어두운색인데도 더러웠기 때문이다.
“앉아요. 기다려야 되니깐.”
남자가 거실에 놓인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 나처럼 뚱뚱한 사람이 엉덩이를 걸치는 순간 푹 꺼질 것 같은 삭은 소파였다. 내가 뜯어진 가죽 소파를 넋 놓고 쳐다보는 동안 수화 샘은 거리낌 없이 자리에 앉았다.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수화 샘이 물었다. 남자는 대답 대신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
“아직 영업시간은 아닌데 마침 상담 실장님이 안에 계십니다.”
남자는 사물함에서 파일을 하나 꺼내 와 수화 샘 앞에 내려놓더니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여길 어떻게 알고 왔냐고 물었다.
“소개받았어요.”
내가 무슨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수화 샘이 대답했다.
“어디서?”
“네?”
“누구한테 소개받았냐고.”
남자의 말투가 갑자기 바뀌어서 나는 좀 긴장됐다.
“니들 혹시 설이 친구냐? 설이랑 같이 일해?”
남자가 물었다.
“꼭 말해야 돼요?”
수화 샘이 당돌하게 되묻자 남자는 목소리를 낮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이는 괜찮냐?”
“알아서 뭐 하시게요.”
수화 샘의 대답에 남자는 담배 연기를 길게 내뱉었다. 남자가 화를 내겠구나, 짜증을 내겠어, 우릴 쫓아낼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데 남자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몸을 약간 틀어 수화 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근데, 너 되게 예쁘게 생겼다? 몇 살이야?”
수화 샘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남자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며 방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말없이 남자가 놓고 간 ‘관리 서류’라는 제목이 붙은 검은색 파일을 넘겼다. 열 개로 나뉜 칸에 날짜와 이름이 적혀 있었다. 민설이라는 이름은 6월 25일 칸에 있었다. 이름과 날짜만 적혀 있는 서류철에서 한 줄의 메모를 발견한 건 수화 샘이었다.
‘가장 행복한 곳으로 가.’
투명 내지 위에 누군가 볼펜으로 낙서하듯이, 그렇지만 힘을 주어 꾹꾹 눌러쓴 글귀. 문장은 여러 가능성을 지닌 채로, 글자를 읽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결코 지나칠 수 없을 선명함을 지니고서 그곳에 있었다. 글귀를 읽은 순간 여러 생각이 뒤섞였고, 이유도 모른 채 마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파일을 덮은 뒤에는 나도 모르게 수화 샘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렇게 하면 내 생각이 저절로 전해지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 기대와 달리 수화 샘은 별말이 없었고 표정도 담담했다.
남자가 방으로 들어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수화 샘이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테이블 위에 널려 있는 신문을 보았다. 별 생각 없이 신문을 넘기던 나는 5년 전 이남공원에서 있었던 임신 중지 반대 시위에 대한 기사를 읽고 갑자기 몸이 굳었다. 남의 것을 훔쳐보듯이 빠르게 활자를 훑는 동안 식었던 땀이 다시 흘렀고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신문에 날 정도로 큰 시위를 주도한 사람들이 다름 아닌 엄마가 속해 있던 종교 단체였기 때문이다.
엄마는 내가 대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본격적으로 종교 활동을 시작했다. 단체 생활을 한다며 집에 안 들어오는 날이 잦았는데, 가끔 옷가지를 챙기러 오면 내가 자신의 뼈와 살을 갉아먹고도 고마움을 모르는 데다 점점 뚱뚱해진다고 짜증을 냈다. 엄마의 히스테리는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나는 그걸 감당할 수 없었을 뿐더러 하기도 싫었다. 엄마가 기도한답시고 사람들을 데려와 이상한 절을 시키기 시작했을 때 미련 없이 집을 나왔다. 1학기를 마치자마자 휴학을 하고 일을 구했다. 다행히 와이즈 교육에서는 전공이나 증빙 서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마음가짐이 중요하지.” 지국장은 그렇게 말하며 돈까지 빌려줬다. 신입은 누구나 그 돈으로 교재와 교구, 그 밖의 비용을 해결한다고 했다. 이자가 부담스럽긴 했지만 못 갚을 정도는 아니라서 나는 미친 듯이 회원을 모았고, 1년이 지나고 약간의 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마침내 혼자 힘으로 살게 된 것이다. 그쯤 엄마가 찾아왔다. 애를 지워야 하는데 수술비가 없다고, 옆방에 다 들릴 정도로 큰 소리로 울면서 자기도 당한 거라며 가슴을 탁탁 쳤다. 나는 가진 돈을 전부 털어 주고 다음 날 고시원을 옮겼다. 그날 이후로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공간에서 엄마가 속했던 종교 집단에 대한 기사를 읽고 있자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엄마가 내게 잘못을 저질렀다는 생각.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 나는 결코 엄마의 뼈와 살을 갉아먹은 적이 없다는 생각. 엄마는 나를 키울 자격이 없었다는 생각. 억울한 기억들이 끝도 없이 이어졌다. 분노라기보다는 뭔가 알 수 없는 감정이었는데 방문이 열리고 수화 샘이 나오는 순간 신기하게도 뜨거웠던 감정이 싸늘하게 식어버렸다.
수화 샘과 나는 별다른 대화를 나누지 않고 건물 밖으로 나왔다.
“뭐래요?”
“…….”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동안에도 수화 샘은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잠자코 있다가 편의점에서 주스를 하나씩 사 먹고 나서야 정말로 궁금한 걸 물었다.
“루시를 정말 좋은 곳으로 보내줄 것 같아요? 신원 확인이 돼야 입양이 가능하다면서요. 실장이라는 사람은 좀 괜찮아 보였어요?”
수화 샘은 말없이 주스병에 붙은 라벨을 손톱으로 긁기만 했다.
“티브이에서 봤는데, 어떤 교회 앞에는 베이비 박스 같은 것도 있어요. 거기에 온 아기들은 보살핌을 받을 수 있대요.”
“…….”
“키우고 싶은 생각은 조금도 없는 거예요?”
수화 샘은 내 물음에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그러고는 무슨 말인가 하려고 했다. 그러나 끝내 말을 하지 않았고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입양 업체의 문을 열어주었던 남자가 우리 쪽으로 걸어오는 게 보였다. 남자를 먼저 본 사람은 나였다. 나는 얼른 다른 곳으로 피하려고 수화 샘의 팔을 잡아끌었다. 이런 경우 끝이 좋은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다. 그러나 수화 샘은 남자가 다가올 때까지 요지부동으로 서 있었다. 가까이 온 남자는 수화 샘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수화 샘도 고개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똑바로 봤다. 나는 두 사람이 원래 아는 사이였나 싶었다. 원래 아는 사이인데 못 알아보았다가 뒤늦게 생각이 나서 무릎을 탁 치고 뛰어온 상황인 건가.
“내일 전화해도 되니?”
남자가 물었다.
“왜요?”
수화 샘이 되물었다.
“왜긴,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렇지.”
수화 샘은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든다고요? 제가요?”
“첫눈에 반한 것 같으니까 번호 좀 찍어봐.”
남자가 전화기를 내밀었다. 나는 아까보다 더 세게 수화 샘의 팔을 잡아끌었지만, 수화 샘은 슬며시 남자가 준 휴대전화를 받아 들더니 번호를 입력했다.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새어 나왔다. “웃기고들 있네.” 수화 샘은 내 말을 못들은 것처럼 있다가 남자가 떠난 뒤에야 변명처럼 덧붙였다.
“안 주면 계속 따라올까 봐 그랬어. 집까지 따라올까 봐……. 너까지 귀찮게 할까봐. 정말이야.”
“누가 거짓말이래요?”
마침 버스가 도착했고, 나는 몸을 휙 돌려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우리는 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았다. 수화 샘은 공허한 표정으로 창밖을 보았다. 여전히 손에 든 주스병의 라벨을 손톱으로 떼어내고 있었는데 그것도 의식하고 하는 행동은 아닌 것 같았다. 말 좀 할 것이지. 그런 생각이 드는 동시에 말을 한다고 해서 내가 뭘 어쩌겠냐는 체념이 함께 들었다. 수화 샘의 속내를 알고 싶으면서도 그걸 다 들어주기에는 부담스러운 마음. 나는 눈을 감아버렸다.
“같이 가줘서 고마워.”
헤어지기 전에 수화 샘은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침부터 걸어 다닌 탓에 내 몸에서 땀 냄새와 쉰내가 지독하게 나 속이 울렁거렸다. 수화 샘은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았고 얼굴도 깨끗했다. 아직도 여름 한가운데 있는 나와 달리 이미 여름을 통과한 사람 같았다. 나는 우울해졌다. 혼자만 엄청난 불행 속에 있다는 생각과 앞으로 더 큰 불행만 다가오리라는 재수 없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언제까지고 그럴 테지. 살도 빠지지 않고, 돈도 모이지 않고, 누군가 첫눈에 반했다며 번호를 물어올 일 따위는 당연히 없을 테지. 수화 샘이 남자와 연락을 주고받으리라는 생각 때문이었을까. 집에 도착할 때쯤 나는 수화 샘이 조심성 있는 사람이었다면 임신은 하지 않았으리라는 생각을 하고선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날 이후 수화 샘에게서는 연락이 없었다. 나도 연락을 하지 않았다. 몇 주가 지나고 전화가 한 번 오긴 했다. 수화 샘은 불안한 목소리로 뭔가 잘못된 것 같다고, 이러면 안 될 것 같다고, 아기를 키우고 싶다고 울먹였다. 모르겠다, 무섭다, 막막하다 같은 말만 반복했는데 나는 끝까지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수화 샘은 “괜찮겠지? 이게 최선이겠지? 괜찮아질 거야. 맞아. 그럴 거야.” 하며 자문자답을 했다.어쨌거나 전화는 내가 먼저 끊었다. 할 만큼 하지 않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이건 어디까지나 수화 샘 일인데 이렇게까지 나에게 기대고 연락하는 건 정말 부담스럽다. 전화를 끊고서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나는 내 생각이 틀리지 않다고 믿었다. 최선을 다했고, 그 이상을 했으며, 우정을 배신한 사람은 수화 샘이라고. 찜찜함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나는 변화를 인지했고, 그 변화를 각자 감당해야 할 미래로 받아들였다. 상자를 받기 전까지, 어물쩍 지나간 선택의 순간이 미래에 어떤 식으로 출몰하는지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