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화 샘과 나는 여름 내내 붙어 다녔다. 호칭을 ‘언니’라고 바꾸고 서로의 고시원에 허물없이 들락거리며 잠도 같이 자고 드라마도 같이 봤다. 주말에는 수화 샘을 따라 도서관에 가기도 했다. 산만한 나와 달리 수화 샘은 몇 시간이고 한자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처음엔 재미있는 책이라며 이 책, 저 책을 서가에서 빼주었는데 내 눈에는 딱 봐도 지루한 과학 서적이라서 나는 주로 거치대에 놓인 잡지나 신간 서적을 펴놓고 딴생각을 했다. 이를테면 수화 샘과 같이 살면 어떨까 하는 생각. 고시원이 아닌 진짜 집에서 밥도 해 먹고, 책도 읽고, 보송한 이불을 덮고 나란히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면 어떨까 하는 생각. 오래전부터 그런 생활을 원했으면서도 그게 가능할 리 없다는 강한 믿음이 있었다. 갚아야 할 빚 때문이기도 했고, 사람을 쉽게 믿지 못하는 까닭도 있었다. 아기가 태어난 다음에 벌어질 낯선 상황도 두렵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화 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만약 수화 샘이 먼저 그런 얘길 꺼냈다면, 내 삶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모습을 적극적으로 보여주었다면 좀 더 진지하게 고민했을까. 가족이 반드시 혈연으로 얽히거나 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건 아니니까.
그러나 수화 샘은 끝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인류의 과거나 먼 미래, 목성에서 무선 신호를 보내는 우주선에 대해서는 한참을 떠들망정 아이가 태어난 후에 달라질 생활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예전이 좋았는데.”, “앞날은 모르겠어.”, “결혼은 꼭 해야 할까?” 같은 추상적인 말은 했지만 거기에는 핵심적인 정보가 빠져 있었다. 변화에 필요한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들 말이다. 나는 수화 샘이 더 솔직하길 바랐다.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고, 고마움을 말로 표현해 주었으면 했다. 내가 넌지시 애 아빠가 누구냐고 물었을 때 멍한 표정으로 말을 돌릴 게 아니라 어떤 남자인지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수화 샘은 내가 과거의 일을 물을 때마다 ‘인생은 이해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하다’라거나 ‘시간은 앞으로만 흘러가는 법’이라는 등 몽상가적인 대꾸로 갈음할 뿐이었다.
더운 날씨는 9월까지 계속되었다. 수화 샘은 일을 그만두었고, 나는 수화 샘의 회원을 물려받아 역대 최다 회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리는 방서동에 있는 세광맨션에서 자주 만났다. 방서동은 C시에서도 유난히 낙후된 동네였는데 수화 샘의 회원들이 그 동네에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무너질 것처럼 금이 쩍쩍 간 아파트의 외관을 보면 사람이 못 살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지만 당연히 거기에도 사람이 살았다. 심지어 정문 앞 편의점에는 늘 손님이 붐볐다. 수화 샘과 나는 종종 점포 앞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셨다.
“지국장이 돈을 좀 줬어.”
수화 샘이 불쑥 말했다. 일을 그만둔 지 두 주 만이었다.
“지국장이요? 왜요?”
“퇴직금이지. 안 줘도 그만인데 주는 거라고, 고마운 줄 알래.”
“얼마를요? 얼마를 줬는데요?”
나는 혹시라도 학부모와 마주칠까 봐 맥주 캔을 손수건으로 돌돌 감싸면서 물었다.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그게 제일 중요하지 않나? 생각했지만 수화 샘이 돈에는 관심 없다는 투로 말을 돌렸기 때문에 더는 묻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게 아쉬워. 사무실에 있던 내 의자하고 책상.”
“책상이요?”
“앞으로 뭘 하면 좋지? 보영아, 나 좀 무섭다.”
수화 샘은 말의 내용과 어울리지 않게 코를 찡긋하며 웃었다. 수화 샘의 표정을 보자 며칠 전에 다녀온 미혼모 상담 센터가 떠올랐다. 서울에 있는 상담 센터까지 가자고 한 사람은 나였다.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는데 의외로 수화 샘이 화색을 띠며 바로 버스표를 예매했다. 두 시간 남짓, 시내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서야 도착한 곳에서 나와 수화 샘은 서로 다른 이유로 충격을 받았다. 수화 샘은 (자신이 보기에) 피곤한 얼굴로 아이를 안고 있는 미혼모와 그들을 도우러 온 자원봉사자를 보고 생각지도 못한 모종의 치욕을 느꼈기 때문이고, 나는 수화 샘이 그렇게 생각했다는 것에, 자신을 그들과 분리시키며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것에 깜짝 놀란 것이다. 수화 샘 역시 피곤한 사람 외에 아무도 아닌데.
나는 눅눅해진 과자를 집어 먹었다. 한때는 수화 샘의 내밀한 두려움을 알고 싶어 전전긍긍했으면서 지금은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식어 있었다. “넌 귀한 존재야.” 그런 말을 건넬 때의 따스함조차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맥주 캔을 감싸고 있던 손수건을 풀어 이마의 땀을 닦고 그대로 얼굴을 덮었다. 수화 샘의 눈을 똑바로 마주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인간은 왜 태어났을까?”
수화 샘이 한참 만에 입을 열었다.
“와, 또 그 소리. 지겹지도 않나 봐.”
나도 모르게 손수건을 홱 치우면서 짜증을 냈다. 인간이 어쩌고 하는 이야기는 수화 샘이 틈만 나면 꺼내는, 여름 방학용 교재 <생물의 번성>에 나온 내용이었다. 나는 그 부분이 지루해서 읽지도 않았는데 수화 샘은 흥미롭다며 관련된 책까지 빌려 읽었다. 다 읽은 뒤에는 “인간은 뭣도 아니다”, “공룡들이 얼마나 아름다웠니” 같은 말을 했고, 수억 년 전 인간이 살지 않았던 지구를 상상하면 마음이 편해진다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을 떠들어댔다.
“지금 과학자들이 거대한 블랙홀을 촬영하고 있대. 그런 위대한 일을 하려고 태어난 사람도 있겠지.”
“블랙홀은 찍어서 뭐 하는데요?”
현실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허황된 이야기를 진지하게 하는 수화 샘이 한심해 보였다.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심지어 존재하는지조차 모르는 것들이 대체 왜 궁금한 걸까. 수억 년 전은 수억 년 전이고, 지금은 지금인데 그걸 구분 못 하는 사람처럼. 나는 태만하게 그런 말을 할 게 아니라 앞으로 배가 얼마나 더 부를지, 예정일은 맞출 수 있을지, 애를 낳은 다음에도 고시원에 살 수 있을지 같은 현실적인 고민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당장은 비참하더라도 지금보다 나아지려면 코앞에 있는 문제를 봐야 하니까.
“집은 알아봤어요? 고시원에서 계속 살긴 그렇잖아요. 루시도 있는데.”
결국 내가 먼저 루시 얘길 꺼냈다.
“루시?”
수화 샘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가끔 정신이 딴 곳에 가 있는 사람처럼 몽롱한 얼굴로 허공을 보곤 했는데 루시 얘기가 나오면 특히 심해졌다.
“루시는 참 사랑스러운 이름이야. 꼭 그렇게 불러주고 싶어.”
수화 샘이 중얼거렸고, 나는 그냥 맥주를 마셨다.
‘루시’는 아프리카 하다드 사막에서 발굴된 화석이었다. 여성으로 추측되는 이 화석에 관해서는 어린이 세계사 부록에 짧게 소개되었다. 수업과 무관한 내용이라서 나는 그 부분을 다루지도 않았는데 수화 샘은 교재에 있는 내용보다 더 자세하게 파고들더니 화석의 이름이 루시라는 것과 그 이름이 조사대 캠프에서 흐르던 비틀스의 노래 제목에서 따왔다는 것을 알아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수화 샘은 내 맥주를 가져다가 한 모금 마셨다. 나는 캔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다가 그냥 두었다.
“보영아, 너는 내가 아기를 꼭 키워야 한다고 생각해?”
“…….”
“상황이 이런데도?”
“노력은 해야겠죠.”
“노력? 어떻게?”
수화 샘이 되물었다.
“보영아, 어떻게 노력하면 되는데? 내가 어떻게 노력하면 달라질까?”
어떻게 노력하면 될까, 수화 샘이 할 수 있는 게 뭘까. 그래, 어쩌면 이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중요한 문제일지 모른다. 어쩌면 이거야말로 수화 샘이 풀어야 할 숙제일지 모른다. 내가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을까? 아기를 낳은 뒤에는 수화 샘의 인생이 어떻게 바뀔까? 감당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수화 샘이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나는 대번에 기분이 나빠져서 말했다.
“이럴 거였으면 병원에 가지 그랬어요.”
“병원?”
“애를 떼지 그랬냐고요.”
“아……. 그 말이구나. 너도 그 말을 하네. 말은 참 쉬워. 그치? 의사를 만나긴 했어……. 둘이나. 두 번째 의사는 나한테…….”
뒷말을 흐리던 수화 샘은 한순간 정신을 차린 듯이 딱 부러지게 말했다.
“보영아, 지금은 현실적인 방법이 필요한 때야.”
“무슨 방법이요?”
“아이를 좋은 곳으로 보내준대.”
“어디서요?”
“내가 찾은 입양 업체.”
“입양 업체요?”
“나랑 같이 가줄 수 있어?”
그 순간 나는 수화 샘의 눈에서 간절함을 보았다. 어쩌면 수화 샘에게 일어난 일이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그게 꼭 임신은 아니더라도 감당할 수 없는 일 때문에 고립될 수 있다는 것을 수화 샘의 상황을 배웠는지도 모른다. 누군가의 관계에서 그런 눈빛을 보내본 적은 많았지만 똑바로 응시해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죠, 뭐.”술 때문인지 귀가 멍하고 어지러웠다. 어째서 선택은 늘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이루어질까. 중요한 선택은 보다 강력한 힘을 지니고서 희미한 정신을 흔들어 깨우듯이 강력하게 일어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러나 선택의 순간은 늘 어물쩍 지나가고, 지난할 정도로 오래 기억될 후회의 순간만 삶 속에 각인되듯 남아 그림자 같은 형체를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