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김태연
바야흐로 구독의 시대다. 와이즐리 면도기로 출근을 준비하고, 밀리의서재에서 틈틈이 책을 읽으며 퇴근 후에는 넷플릭스에서 영화를 보는 일상은 변화된 소비 패턴의 단면을 잘 보여준다. 실제로 구독경제는 폭발적으로 성장 중이다. 2000년 2150억 달러(253조원)에 불과했던 글로벌 구독경제 시장은 올해 5300억 달러(623조원)를 돌파할 전망이고, 2023년에는 제품을 판매하는 기업 중 75%가 구독형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독경제의 흐름에 '집'이 포함된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전통적인 소유의 개념에 가장 충실한 '집'을 주제로 하는 구독 서비스를 소개한다.
한국보다 도시화 과정을 먼저 겪었고, 고령화와 함께 지방 도시의 쇠퇴가 극심한 일본은 이미 주거 구독 서비스가 성행 중이다. 어드레스(ADDress)는 월 4만엔(약 45만원) 정액제를 통해 다양한 거주지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운영한다. 어드레스는 지방의 빈집과 유휴별장을 구입 혹은 임대한 뒤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현재까지 전국 50여 곳 이상의 거주지를 마련하였다. 사용자는 관리비나 사용비 등 추가 금액 없이 아무 곳이나 최대 14일간 머물 수 있고, 이후 다른 지역의 집으로 옮겨가는 것 또한 가능하다. 반응은 가히 폭발적인데, 작년 서비스를 시작하며 30명의 크라우드 펀딩을 모집했을 때에는 1100여 명의 사람이 몰렸을 정도이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서비스가 생겨났다. 건축사사무소 블랭크의 주거 플랫폼 서비스 '유휴'는 소도시와 지방에서 입주 가능한 빈집 정보 큐레이션을 제공한다. '유휴'를 통해 전국 빈집의 정보를 아카이빙하고, 이를 원하는 구매자와 연결시켜 주는 방식이다. 여기에 더해, '유휴 하우스'라는 주거 구독 서비스가 월 49만원의 멤버십으로 운영된다. 현재까지 경상남도 남해군의 빈집을 활용한 첫 유휴 하우스가 문을 열었고, 구독자들은 쉐어하우스 형태의 공간에서 독립된 공간을 원하는 시간만큼 보장받는다. 앞으로 서비스 대상 지역을 확대함으로써 이용자가 지역을 바꾸며 원하는 기간만큼 거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목표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서비스의 수요층은 누구일까. 첫 번째로 '디지털 노마드족'을 꼽을 수 있다. 노트북만 들고 어디든 떠나 일하는 그들에게 있어 다양한 장소에서의 삶을 보장하는 이 서비스는 최적의 선택지가 될 것이다. 실제로 우리보다 주거 구독 서비스가 정착된 일본의 경우, 가방 하나 정도의 봇짐만 싸서 전국을 유랑하는 '아도레스 호퍼'라는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고정된 주거지에 대한 욕구가 더 이상 공통된 것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이들과 같은 라이프 스타일이 확대됨으로써 주거 구독의 수요층 또한 늘어날 것을 기대한다. 또한, 전원생활을 꿈꾸는 사람들도 주된 소비층에 포함될 것이다. 아직은 대부분의 서비스가 지방의 빈집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쉬는 날을 통해 도시를 벗어나고자 하는 이들에게 활용성이 높다. 부담 없는 가격으로 수많은 '집'을 얻을 수 있다는 점은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더하여, 지금까지의 이용자가 특정한 계층에 머물렀다면 앞으로의 수요는 일반 대중으로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 이후로 더욱 확산되는 재택근무 문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소유'에서 '경험'으로 넘어가는 소비의 트렌드를 고려할 때 주거 구독 서비스는 다양한 주거 경험에 대한 니즈를 충족하는 서비스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주거 구독 서비스의 또 다른 가치는 '빈집'을 활용하는 것에서 찾을 수 있다. 1995년 35만 호에 불과했던 전국의 빈집 수가 지난해 148만 호(10%)에 이를 정도로 빈집은 우리가 자각하는 것 이상의 심각한 사회문제이다. 이러한 현상은 지방에 국한되지 않는다. 서울의 빈집 문제 또한 7 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점은, 우리가 다가오는 변화를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때 생겨날 부작용을 가늠하게 한다. 이러한 이유로 점점 더 늘어나는 빈집을 처리하기 위해 정부와 지자체도 소유주에게 철거 지원금을 제공하고 민간 투자를 유치하는 등 다양한 접근을 시도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앞서 소개한 주거 구독 서비스는 '빈집 활용'의 측면에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며 사회 문제를 해결할 가능성을 가진다. 집의 골격을 그대로 갖춘 채 사용자에게는 다양한 주거의 경험을, 소유주에게는 새로운 수익원을 제공하며 빈집을 사람 사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기존의 철거 혹은 전면 재개발의 방식과 비교하여 드는 절차나 비용이 훨씬 더 간편하고, 또 기존에 있는 빈집의 장소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속 가능한 도시재생의 모델로 자리할 수 있을 것이다.
구독 경제, 경험의 가치, 코로나, 그리고 빈집까지.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서 주거 구독을 설명할 수 있는 키워드는 점점 많아지고 있다. 구독 시스템을 통해 풀어낸 '집'이 앞으로 어떤 성과를 낼지 주목해보자.
연세대 문화인류 김태연
naty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