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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고 싶은 거리가 있나요?

연세대 경영혁신학회 28기 김태연

  우리는 매일 걷는다. 집을 나서 버스를 타러 가면서, 마침내 친구를 만난 가로수길에서, 막차를 타고 내린 고요한 동네에서도 우리는 끊임없이 걷고, 거리를 마주한다. 그렇다면 이런 생각을 해본 적 있는가? 어떤 장소가 나를 마음에 들게 하는지, 또 어떤 길이 나를 사로잡는지.



'휴먼 스케일'로 바라본 거리


  건축가 유현준의 저서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는 걷고 싶은 거리의 첫 번째 조건으로 '휴먼 스케일' 수준에서의 체험이 다양하게 제공되는 것을 제시한다. 가로와 차도의 폭, 거리에 있는 점포의 종류, 건물의 크기 등 보행자가 거리를 지나치며 마주치는 수많은 요소들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걷고 싶은 거리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구분하기 위한 하나의 기준은 '단위 면적당 블록 코너의 개수'이다. 유럽의 도시들은 자동차가 발명되기 오래전부터 생겨났기 때문에 도시의 도로망은 사람과 마차의 속도와 규모에 맞춰 생겨났다. 따라서 짧게 끊긴 도로망과 더 좁은 폭의 거리, 더 많은 교차로를 발견할 수 있다. 한면, 미국의 경우 자동차를 기준으로 구조화된 도시가 많은데, 이 지점에서 속도의 차이가 발생한다. 자동차는 마차보다 훨씬 더 빠르고, 따라서 유럽보다 더 먼 지점마다 교차로가 생긴다. 이런 경우 휴먼 스케일보다 훨씬 커진 거리의 구조를 갖게 된다. 건물은 높고 크며, 양쪽 가로를 구분 짓는 도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넓어진다. 새로운 교차로를 만나기 위해서는 한참을 걸어가야 한다.

  이 기준에 따르면 유럽의 거리는 미국의 거리보다 더 재미있는 거리가 될 조건을 만족한다. 보행자는 교차로와 더 자주 마주치고, 더 많은 우연성과 이벤트를 경험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작년 필자가 방문한 에딘버러와 맨해튼의 시가지. 어떤 거리가 더 휴먼 스케일에 가까워 보이는가?


  이를 토대로 저자는 재미있는 실험을 한다. 거리에서 새롭게 발생할 수 있는 이벤트의 밀도(100m 구간에 있는 상점의 입구의 수)를 기준으로 서울의 유명한 거리들의 순서를 매긴 것이다. 그 결과 명동이 1순위에, 테헤란로가 가장 후순위에 꼽혔다. 두 거리를 각각 유럽과 뉴욕의 거리에 대입해보자. 명동은 사람의 속도와 규모에 맞춰진 거리이고, 테헤란로는 자동차와 자본의 속도와 규모에 맞춰진 거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휴먼 스케일'의 접근에서 어느 장소가 더 재미있는 공간이 될 지, 찾아갈 때마다 색다른 경험을 할 가능성이 높은지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거리 가게'를 통해 바라보는 거리의 '접촉성'


  필자는 작년 신촌의 '걷고싶은거리(연세로)'와 이대 앞 '찾고싶은거리'를 필드로 비교 연구를 진행하였다. 각각 신촌의 '스마트로드샵'과 이대의 '노점상'을 통해 거리를 바라보고자 하였는데, 본 글에서는 그 중에서도 스마트로드샵을 통한 거리의 '접촉성' 측면에서 이를 소개하고자 한다.

  스마트로드샵은 본래 '노점상'이었다. 2014년 도시 재생의 일환으로 거리 정비 사업이 진행되며 기존의 좁은 인도 폭과 통행에 지장을 주는 가로 시설물 등이 개선되었고, 노점들 또한 모두 구청의 관할 하에 편입되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노점을 철거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거리가게로 재탄생하게 되었다. 


각각 신촌의 '스마트 로드샵'과 이대 앞의 일반적인 노점. 어떤 차이가 보이는가?


  스마트로드샵으로의 전환 이후 일반적인 노점과 가장 크게 생긴 차이점은 바로 그 '접촉'의 정도이다. 해당 연구에서는 접촉성을 '거리가게와 거리의 다양한 요소들을 직간접적으로 닿게 하거나 연결시키는 성질'로 정의했는데, 실제로 스마트로드샵은 여러 지점에서 이 성질이 더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스마트로드샵의 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마트로드샵은 전면 한 면만 거리와 접촉한다. 상인이 바깥을 볼 수 있는 방법은 전면과 양쪽 벽면에 있는 작은 창문 정도이다. 뒤에도 창문은 나 있지만, 대부분 광고 스티커를 붙여 두어 밖이 보이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 스마트로드샵의 상인은 오직 전면만 바라볼 수 있다. 반면, 노점은 스마트로드샵과 달리 세 면이 개방되어 있다. 삼면이 트인 형태는 노점 안으로 손님을 끌어당길 수 있고, 바깥으로 더 확장성을 가지게 된다. 실제로 스마트로드샵을 이용하는 손님은 보통 포장하는 경우가 많지만, 노점의 경우 가게 '안에' 들어가서 먹는다. 여기에 더해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며 넓어진 보행로 속에서 스마트로드샵의 손님, 상인, 보행자 간 접촉의 한계는 더욱 심해진다. 즉, 폐쇄적인 노점의 구조는 이웃 가게 상인과의 소통을 끊고, 손님과 맺을 수 있는 관계의 가능성 또한 차단하며 고립된 존재로 만드는 것이다.

  또한, 거리에 존재하는 광장과의 관계에서도 이를 찾아볼 수 있다. 신촌과 이대 앞 두 거리는 모두 광장을 가지고 있다. 차없는거리가 시행되는 시간(금요일 오후부터 일요일 밤까지 신촌 연세로에서는 차가 다닐 수 없다.) 동안 신촌에서 축제가 열리면 스마트로드샵은 이를 등지고 있게 된다. 축제는 대부분 스마트로드샵 뒤 도로 위에서 진행되기 때문이다. ‘등지고 있음’은 차없는거리와 이에 따른 축제, 그리고 스마트로드샵이 서로 직접적인 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반면 이대의 노점상은 '썸타는계단' 광장 앞에서 해당 장소를 바라본 채로 서있다. 실제로 썸타는계단에서는 노점의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노점과 광장이 ‘마주보고 있음’이 유의미해지는 지점이다.



'휴먼 스케일'에 대한 고민이 필요할 때


         현재 스마트로드샵 체제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으로 평가하시며, 과거에 대한 향수를 보여줬다. 노점상일 땐 장사도 잘 됐고, 거리에 차도 많이 다녔고, 사람들과의 거리도 더 가까웠고, 라는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많으셨다. 연세로 개선사업 자체도 부정적으로 보시며, 축제해봤자 도움도 안되고, 장사도 더 잘 안되고, 그만두려는 사람도 많으시다고 하셨다.


  위 내용은 연구를 진행하며 한 사장님과 만나 나눈 대화를 연구 일지에 정리한 내용을 일부 발췌한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휴먼 스케일'로써의 접근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다. 결국 이 개념의 핵심은 사람을 거리 요소의 주체로 바라보는 것이다. 노점에서 스마트로드샵으로의 전환이 일어나며 더 '효율적인' 공간의 배치가 이뤄질 수 있었다. 불법으로 거리를 점유하던, 즉 조정의 대상이었던 노점을 관리 체계 하에 편입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사람'에 대한 고민은 없었다.

  자본주의가 팽배한 오늘날 경제적 논리는 공간을 설명할 때 떼어 놓을 수 없는 요소이고, 더 나아가 상업적인 측면을 위주로 공간성이 정립된다. 이 점을 떠올릴 때, 이 모습은 거리에도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으로 최대의 효율성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목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휴먼 스케일'에서의 새로운 이벤트들이 발생하고, 통행자가 살을 부대낄 수 있는 거리의 모습이 함께할 때 우리는 거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누릴 수 있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김태연

naty0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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