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학교 경영혁신학회 29기 임수연
슈퍼마켓(supermarket)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하이퍼마켓(hypermarket). 파리의 첫 매장이 다섯 개의 길이 교차하는 곳에 위치해 ‘교차로’란 이름이 붙은 까르푸는 창고소매업, 할인판매점, 그리고 슈퍼마켓의 장점을 전부 보유한 하이퍼마켓의 시초이다. 식료품, 잡화 등 다양한 상품을 한데 모아 저렴한 가격으로 판매하며, 고객들의 자율적 구매가 가능한 셀프 서비스를 도입했다.
1996년, 경기도 부천에 까르푸 중동점이 국내 최초로 문을 열었다. 1999년 기준 한국 까르푸의 투자액은 당시 한국에 진출한 해외 기업 중 최고의 규모인 9억 2500만 달러였을 만큼 야심 찬 행보였다. 그러나 창대했던 시작과는 달리 까르푸는 2006년, 한국에서 쓸쓸히 철수했고, 현재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홈플러스’라는 이름으로 남아 있다.
1. 미숙한 현지화
까르푸는 현지화에 실패한 대표적인 기업 중 하나이다. 가장 먼저 국내 소비자들의 식습관을 파악하지 못했다. 육류 소비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유럽 소비자들과는 달리, 한국인의 1인당 채소 소비량은 세계 1위를 웃돈다. 이를 인지하지 못한 채 육류와 가공식품의 확대와 관련 자사 상품 개발에만 집중하다 보니, 한국인들이 가장 꾸준히 소비하는 채소류 및 곡류의 종류와 품질은 상대적으로 밀려났다. 이는 롯데마트, 이마트 등 국내 대형마트와의 경쟁에서 치명적인 약점으로 작용했다.
매장 배치 및 상품 진열 역시 한국 소비자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구조였다. 까르푸는 서양인들보다 상대적으로 체격이 작은 한국인들의 신체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상품 진열대의 높이를 글로벌스탠더드 기준인 2.2m로 제작했다. 따라서 소비자들은 상품을 구경할 때 계속 고개를 들고 상품을 꺼낼 때 까치발을 드는 등 불편함을 겪을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발걸음을 멀리 하게 되었다. 더불어 유럽에서는 야채나 과일을 마지막에 카트에 담으면서 신선도를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식료품 코너가 계산대 근처에 배치된다. 이는 모든 식료품이 매장 정중앙에 위치한 한국 슈퍼마켓과 매우 다른 구조였는데, 비교적 신선하고 좋은 식품을 선점하기 위해 가장 먼저 식료품 코너로 향하는 한국 소비자들의 동선을 고려하지 못했다. 이외에도 그동안 한국 소비자들이 접해왔던 정돈된 인테리어 대신 투박한 분위기의 창고형 매장을 도입했다는 점도 소비자들의 '낯섦'에 한 몫을 하고 말았다. 까르푸는 한국과 시장 특성이 비슷한 일본에서도 동일한 문제를 마주했고, 결국 일본 시장 점유율 0.1%로 막을 내렸다.
2. 협력 업체 및 직원들과의 충돌
까르푸는 협력 업체와 직원 대상 '갑질' 논란으로도 수 차례 곤혹을 겪었다. 최저가를 최고의 장점으로 내세운 만큼, 까르푸는 그 말에 책임을 져야 했다.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소비자들에게 내놓기 위해 까르푸는 납품 업체에 과도한 단가 인하를 강요했다. 이들은 ‘갑’의 입장에서 납품 업체들에게 매우 고압적인 태도를 보였다.특히 중소 업체들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까르푸로 인해 납품업체들이 부담한 비용은 1999년에는 571억 원, 2000년에는 978억 원에 육박했다. 이로 인해 중소 업체들 뿐 아니라 대기업들마저 까르푸 납품에 발을 뺐다. CJ제일제당의 경우 까르푸에게 납품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후, 당시 매출액이 약 200억 원인 식품과 생활용품 100여 종을 모조리 철수시켰다. 결국 악명이 높아진 까르푸는 신선식품 소비량이 큰 한국에서 적절한 납품 업체를 찾지 못해 경쟁력을 상실했다.
까르푸는 인건비 역시 줄이기 위해 계산원들을 파견직으로 돌려 파견근무형태로 고용했고, 이 과정에서 부당 해고, 임금 체불 등 국내 노동법을 다수 위반했다. 정규직 직원을 일방적으로 파견직으로 전환하거나 비정규직 근로자에게 무임금 오버타임 근무를 강요했고 노조의 근무개선 요구에 귀 기울이지 않고 사소한 이유로 직원을 부당해고 하면서 경영진과 직원과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따라서 캐셔를 포함한 비정규직 직원들은 노조를 결성해 강력히 투쟁했고, 까르푸의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2005년 8월, 전주점이 개설될 때 까르푸는 전 직원을 주민들을 우선적으로 채용하겠다고 했으나, 이후 채용인원의 90%가 용역업 소속임이 밝혀져 국내적으로 큰 질타를 받았다.
비록 한국에서는 실패한 전적이 있지만, 매장 자체만 놓고 본다면 까르푸는 상당히 매력적인 곳이다. 저렴한 가격으로 많은 상품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 하나만으로도 소비자들이 제일 선호하는 특성을 갖춘 것이니 말이다. 현재는 이케아, 코스트코 등 서양식 마켓의 구조를 한 하이퍼마켓이 국내에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고, 15년이란 시간이 지나며 사람들은 이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당시에 까르푸는 사람들이 전혀 접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상을 너무 성급히 도입하려고 했고, 새로움에서 오는 낯섦은 결국 소비자들에게 불친절로 느껴졌을 것이다.
더불어 국내 경영에 대한 충분한 조사도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광고 비용을 협력 업체와 분담하는 유럽과는 달리, 한국에선 광고료를 할인점에서 분담하지만 까르푸는 이에 대해 무지했다. 또한, 협력 업체들에게 무리한 회식비와 접대비를 요구했고 회사의 결제 시스템을 제작할 때 발생하는 비용마저 납품 업체들에게 요구했다. 이렇듯 한국과 유럽의 경영 방식엔 크게 차이가 있었으나, 까르푸는 국내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본사 방식을 지속적으로 강요했다.
만약 까르푸가 그 당시 유망했던 한국 경영진들을 대거 고용했다면 어땠을까. 한국에 대해 무지했던 외국 임원진 대신 국내 노동법과 경영에 대해 제대로 아는, 당시 IMF 위기로 인한 사회적 분위기와 소비상을 아는, 한국 소비자의 입장을 대변하고 매장을 알맞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었다면 달라졌을까? 충분한 조사와 연구를 통해 소비자들의 욕구를 맞출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소 안일하고 급하게 행동했던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뒤늦게 자신들의 실수를 눈치 채고 상황을 수습하고자 했으나 소비자들은 기다려주지 않았다. 한국 뿐만 아니라 문화, 생활상 등이 비슷했던 일본에서조차 실패를 경험했다면 까르푸의 실패는 비단 내부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세계화로 사람들의 인식과 생활습관이 변화하고 유사 기업들이 한국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고 있는 만큼, 재정비를 한 까르푸가 돌아온다면 현재 중국에서 그렇듯 충분히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될 것이라 전망한다.
연세대 아시아학과 임수연
sysl031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