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집은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늘 일을 하셨지만,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었다. 겨울에는 보일러를 자주 켜지 않으셔서 새벽에는 책을 읽는 손이 시렸고, 절약을 중요시하신 친할머니는 전기세를 아끼려 모든 방에 불을 꺼놓고 다니셨다. 부모님은 동생과 나, 그리고 할머니를 부양하며 평생을 일하셨지만, 크게 부유하지는 않으셨다. 지금까지도 쉬지 않으려는 엄마에게 "제발 쉬세요"라고 말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프다. 그런 엄마 밑에서 자란 나는 대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고,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절약의 중요성을 배웠다.
남편은 사업하시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IMF를 겪으며 어려운 시기도 있었지만, 나보다는 비교적 여유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대학 시절부터 부모님의 지원 없이 여러 아르바이트와 장학금을 통해 자립하며 성장한 그는 독립심과 자립심이 강한 사람이다. 남편은 늘 아버지처럼 부자가 되고 싶고,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어린 시절 아버지의 바쁜 삶을 보며 "자신은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아버지는 멘땅에 헤딩하듯 사업을 시작하셨고, 주말 없이 밤낮으로 일하시느라 학창 시절에는 아버지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가족끼리 여행을 간 적도 없고, 입학식과 졸업식에도 오지 못하셨다. 유일하게 고등학교 졸업식에는 대학 합격을 축하해 주러 처음으로 오셨다고 한다. 지금의 아버님은 여유로운 생활을 하시지만 여전히 일을 놓지 않으시며, 손주들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는 것이 행복이라 말씀하신다. 그런 아버님을 생각할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음이 아프다. 우리 엄마와 아버님이 이제는 진정으로 쉬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부자가 되는 길은 쉽지 않다
살면서 깨달은 점은, 평생을 일해도 평범한 사람이 부자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이다. 특히 근로소득만으로는 말이다. 직장인이 월급만으로 경제 공부를 하지 않고, 남들처럼 모든 것을 누리며 부자가 될 수 있을까? 로또를 맞거나 상속을 받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우리 아이들과 노후를 위해 더 열심히 살고 싶다. 성공하고 싶고, 부자가 되고 싶다면 조금은 다른 방법을 찾아서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운도 따라야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을 정확히 설정하지 않으면 현재의 삶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월 천만 원, 그게 목표였다
나는 언제부턴가 막연하게 '딱 월 천만 원만 벌고 싶다'라고 생각했었다. 월 천만 원만 벌면 가족의 삶이 달라질 것 같았다. 아이들이 배우고 싶다고 하는 학원에 보내고, 먹고 싶은 것도 맘껏 사주고, 여행도 자주 가고 싶었다. 당시 남편은 대기업 대리로 일하며 세금을 제외한 실수령 월 천만 원이 정말 꿈의 숫자였다. 그 당시 우리는 셋째를 낳고도 차가 없었다. 나는 아이들이 심하게 아플 때마다 유모차에 태워서 대학병원까지 걸어갔다. 남편이 공장을 운영을 할 때에도, 여전히 살림은 크게 변화가 없었다. 남편은 책임감으로 밤낮없이 일하며, 직원들을 돌보느라 우리가 가져오는 돈은 약 월 4백만 원에서 5백만 원 정도였다.
우리는 근로소득을 받으면서도 열심히 모았다. 그리고 투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내 집 마련은 평생 꿈에 그칠 것 같았다. 아이들이 셋이었기에 더 열심히 살았고, 아끼고 모았다. 욜로(You Only Live Once의 약자)가 유행할 때 주변에서는 해외여행을 자주 가고, 명품을 사며 즐기기도 했지만, 우리는 양가 어른 환갑 기념 해외여행을 제외하고는 해외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않았다. 나는 단벌 신사처럼 살았고, 아이들의 겨울옷은 '당근'을 통해 해결했다. 그런 소비를 못하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우리의 우선순위는 소비가 아닌 미래를 위한 저축이었다.
행동하라, 작은 것부터 시작하라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 저자 로버트 기요사키
우리가 부자로 가는 첫 번째 단계는 '청약당첨'이었다. 믿기 어렵겠지만, 집값이 계속 떨어지던 13년 전, 그 당시에는 전세가 귀하고, 집값은 하락세였던 시기였다. 그때 우리는 미분양 25평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었고, 그것이 우리의 첫 번째 집이자 부동산 투자였다. 이후 더 큰 집으로 이사하고, 꾸준히 저축과 투자, 주식 등을 통해 '시드머니'를 만들었다.
두 번째 단계는 '근로소득이 아닌 현금흐름 만들기'였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나는 돈을 벌기 위해 병원에 복귀할 수 있었지만, 남편은 몸이 약한 내가 다시 일을 하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스터디카페 사장'이라는 타이틀을 맡게 되었다. 처음에는 불안했지만, 나의 끈기로 결국 '망한 스터디카페'를 살리며, 그 후 또 다른 무인 사업으로 두 번 째 부캐인 지금의 '고시원 원장'이라는 직업으로 이어졌다. 꾸준히 노력한 결과, 재작년 월 천, 지금은 꾸준히 월 2천만 원의 순수익을 달성하게 되었다.
월 천만 원, 2천만 원을 벌면 달라지는 것
월 천만 원, 2천만 원을 벌게 되어도 내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의 삶의 태도와 씀씀이, 가치관은 여전히 같았다. 아이들에게는 "우리 집은 부자가 아니기 때문에 모든 걸 편하게 누리지 못한다"라고 말한다. 외식은 최대한 자제하고, 먹고 싶다면 식재료를 사서 요리를 해준다. 간혹 집에서 배달 음식을 시켜 먹기도 한다. 그러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작은 차에서 큰 차로 바뀌었고, 여행을 갈 때 조금 더 좋은 숙소를 선택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런 변화를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며, "엄마, 아빠가 열심히 살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라고 말해준다.
가장 중요한 변화는 '가족과의 시간'이다. 가족과의 시간은 항상 중요했지만, 남편이 늘 바빠서 함께 하는 시간들이 많지는 않았다. 지금은 우리에게 소득은 늘었지만, 시간적으로 많은 자유가 생겼고, 가족과의 시간을 아낌없이 더욱 투자하려는 마음이 커졌다. 여전히 그 시간이 가장 소중하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지금 우리는 '여기서 만족하고 지출할 것인가?' 아니면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노력하고 공부할 것인가?'라는 갈림길에 서 있다. 남편과 나는 무료 강연, 세금, 투자 강연, 성장 모임 등을 통해 배워가며 매일 성장하려고 노력 중이다.
성공이 아닌 성장, 그 길을 향해
<부자아빠 가난한 아빠>에서 로버트 기요사키는 "가난한 사람은 돈을 받으면 지출하고, 부자는 돈을 받으면 투자한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그 길을 따라, 투자하며 부를 쌓아가고 있다. 최근 국비 지원으로 유튜브 편집 과정을 배우며 맛집 유튜브를 시작했다. 유튜브는 아직 부족하지만, 남편이 즐거워하는 부캐 중 하나여서 만족도가 크다. 또 나는 '작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힐링이자 성장이다.
남편이 자주 말하는 "성공을 좇지 말고, 성장을 좇자"라는 말은 내게 큰 의미로 다가온다. 100억 부자가 되기 위한 길은 아직 멀지만, 그 과정 속에서 우리가 성장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니다. 행복한 사람이 모두 돈이 많은 것도, 돈이 없다고 행복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내가 선택한 길에서 행복하다고 믿으며 가는 것일 뿐이다. 성장은 그 과정에서 마주하는 작은 기회들 속에서 이루어진다.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성장할 것이다.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자신만의 성장의 길을 찾아 그 여정에서 끊임없는 발전과 기쁨을 느끼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그 길 위에서 언제나 축복과 행운이 항상 함께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