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은 소수가 알고, 짐작은 다수가 하도록 내버려 두자
사람들이 진심을 알아주길 바랐다. 겉모습으로 판단하는 이들에게 실망하고 인간관계는 역시 힘든 것이라고 투덜댔다.
내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니 가랑비 옷 젖듯 마음이 외로움으로 젖었다.
누가 이런 말 한 적 있다. 여자와 남자를 구분하는 것은 긴 머리도 아니고 짧은 머리도 아니며, 가는 손도 아니고 근육이 발달한 어깨도 아니라는 것이다. 짧은 쇼트커트 스포츠머리를 한 여자가 두꺼운 겨울 옷으로 몸을 꽁꽁 싸매고 앞에서 걷고 있으면, 뒤에서 보았을 때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별이 잘 안 된다. 머리 스타일로 구별이 안 되니 눈에 보이는 옷 스타일 등으로 짐작한다. 그러나 옷으로도 구분이 안 될 때가 있다.
남자와 여자를 확실히 구분 짓는 것은 사람의 열매라고도 하는 아랫도리다.
다만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 지어주는 이 은밀한 신체 부분은 남에게 함부로 보여줄 수 있는 게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오히려 늘 그곳을 속옷과 옷으로 철저하게 가리고 다닌다. 원하지 않는데 보여주면 병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아랫도리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으며, 무엇보다 감당이 안 된다.
이처럼 우리를 가장 정확하게 나타내는 것은 진심이지만 함부로 보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옷을 보고 그 사람이 여자인지 혹은 남자인지 짐작하듯, 사람들은 보이는 행동들을 관찰하며 그 속에 담긴 진심에 대하여 짐작한다. 가장 예민하고 은밀하기 때문에 진심을 꺼내는 것은 진심의 주인이 선택하는 거다.
다만 진심을 말하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주길 바라는 게 사람의 심리다. 행동으로 충분히 진심을 반영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몰라줄지라도 적어도 진심을 좋게 봐주기를 원한다.
남이 나의 진심을 당연히 알아줄 거라는 기대를 접어야 한다. 내가 말하지 않는 이상 모른다, 내 깊은 내면의 생각들을 모른다.
그러니깐 남이 나의 진심을 오해하고 더러는 진심을 몰라주는 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소수만 진심을 아는 게 당연하고, 다수는 그동안 봐왔던 행실과 평판을 보고 짐작하며 관계를 이어간다.
수십 년 같이 산 부부라도, 서로 몸을 섞은 애인 사이라도, 십 년 지기 친구라도, 나를 낳은 부모님이라도, 진심이라는 것은 내가 내보이지 않는 이상 모른다. 짐작만 하지 확실히 모른다.
사람과의 관계는 얼마나 자주, 오랫동안 만나는 것에 좌우하는 게 아니라, 그 속에 얼마나 진심이 묻어있느냐가 핵이다.
상대방과 매번 진심이 통하는 관계를 만들고 싶지만, 현실은 쉽지 않다. 상대방에게서 진심만 원하는데 내가 먼저 진심을 뻗어야 상대방에게 진심이 닿게 되고 그렇게 서로 진심이 통한다.
마음이 가까울수록 진심을 뻗는 것이 힘들지 않으며, 멀 수록 꺼려진다.
진심을 말하기 꺼려지는 관계 속에서 나를 몰라주고 내 마음을 오해했다면 슬퍼할 필요가 없다. 아무리 내가 피해 주지 않고 인간적으로 잘해줬을 지라도 결국 나부터가 여러 행동으로 짐작만 하게 내버려 뒀을 뿐 진심을 알게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해받기 싫어서 모두에게 진심을 뿌리며 다닐 필요도 없다. 이 정도의 쿨함은 가지고 있자.
진심은 소수가 알고, 짐작은 다수가 하도록 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