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모든 사람은 지구라는 무대에서 자신만의 공연을 펼칩니다. 어떤 사람은 그 누구보다 화려하고 찬란하게 살았고, 또 누군가는 잠깐 빛났다가 사그라들기도 했고, 슬프게도 몇몇 사람들은 미처 피어나지도 못한 채 일찍 명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이승과 저승을 넘나드는 현실 같은 판타지 애니메이션 소울은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고민을 픽사스럽게 풀었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를 살펴보시죠.
<소울> 시놉시스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이 작품은 중학교 밴드부 교사 조 가드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는 시내 최고의 재즈 클럽에서 연주할 수 있는 천금 같은 기회를 얻지만, 예기치 못한 사고로 뉴욕의 거리에서 태어나기 전 세상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이곳은 새로운 영혼들이 지상에 가기 전에 각자의 성격과 개성, 흥미를 얻는 기상천외한 세상입니다. 조는 다시 자신의 삶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인간이 되는 것에 흥미를 못 느끼는 시니컬한 영혼 22와 손을 잡습니다. 조는 22에게 필사적으로 삶의 위대함을 보여주려 노력하고, 그 과정에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됩니다.
난 살고 싶어! 난 살기 싫어!
살면서 바라 왔던 재즈 쿼텟의 건반 연주자가 된 날 맨홀에 빠져 정신을 잃은 조 가드너. 천금 같은 기회를 놓치기 싫어 머나먼 저세상으로 가는 길을 빠져나온 조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영혼들이 모여 있는 태어나기 전 세상(유 세미나, You Seminar)으로 도망쳐 왔습니다. 저세상으로 돌아가기 싫었던 조는 새로 발급된 지구 통행증을 뺏고 싶다는 욕망을 숨긴 채, 이 세상에 태어날 의미를 찾지 못했던 22의 266번째 멘토가 되었습니다.
약 1,082억 번의 일련번호를 받은 영혼이 유 세미나에서 지구로 떠날 준비를 한 걸 보면 아마 22는 수많은 망자 멘토와 함께 이 과정을 이수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어떤 멘토도 22의 불꽃을 틔우지 못했고, 알게 모르게 상처를 받았을 것입니다. 22가 자기 새 멘토가 된 조에 삶을 살기 싫다고 비아냥대는 건, 지구로 떠나지 못한 자신의 처지를 애써 숨기려 한 게 아닐까요.
근데, 넌 나랑 닮았네?
22가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 지구 통행증을 발급받지 못했듯이, 조는 '재즈'라는 꿈 뒤에 숨어 자신의 주체성을 잃어버린 삶을 살았습니다.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린 조는 재즈 연주자가 되겠다는 평생의 꿈을 앞세운 채,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건지를 그 누구에게도 얘기해 주지 않았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삶의 방향을 잃은 괴물이 될 뻔한 조는 자기 몸에 대신 들어간 22 덕분에 삶이 조금씩 바뀌었습니다. 단골 미용실의 미용사 데지는 재즈 대신 자기 얘기를 하는 조를 기뻐했고, 자신이 하는 일을 마뜩잖게 보던 어머니 리바는 자신의 꿈을 당당하게 얘기하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새로운 양복을 지어 주었습니다. 조는 22가 자기 몸을 빌려 내 삶을 제멋대로 지껄이는 게 처음엔 부담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으니 점차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대부분 사람은 자신의 직업과 지위, 꿈 등으로 '나'를 정의합니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러한 것들은 가장 좋은 스몰 토크 소재가 되기도 하고, 또 이런 게 없으면 나를 소개하는 시간이 길어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세상을 살면서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지 않으면, 소중한 사람들과 더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언젠가 진정한 나를 드러내야 할 순간이 올 텐데, 그 순간에 아무런 말을 할 수 없다면 피상적인 관계로만 지낼 수밖에 없습니다. 진정한 소통은 명함 너머에서 이루어지는 걸 깨달은 조는 모든 갈등을 매조 짓고 현생을 살러 간 줄 알았는데... 유 세미나로 돌아가 버렸네요?
기쁨, 슬픔, 화려함, 초라함, 그 모든 것이 삶
22의 지구 통행증을 받아 유 세미나에서 다시 이 세상으로 돌아온 조는 도로테아 재즈 쿼텟의 데뷔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꿈만 같던 공연이 끝나고 내일 뭐 해야 하는지 묻는 조의 질문에, 리더 도로테아는 내일도, 모레도 계속 연주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꿈꾸던 바다에 왔지만, 바다에 온 걸 느끼지 못하는 물고기처럼, 조는 꿈꾸던 무대에 섰지만, 그 꿈을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영화 내내 강조한 '삶의 목적은 불꽃이 될 수 없다.'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목표 그 자체가 불꽃이 되어 버리면 그 불꽃을 이룬 뒤의 나머지 삶은 허무해지기 때문이다. 하나의 목표는 더 큰 목적 앞에서는 수단이 되기 마련이니까요. 무언가가 되는 것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니라, 그걸 이루어 가거나 찾아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호작용이 삶의 원동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조의 불꽃은 재즈 연주자 그 자체가 아니라, 재즈로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따뜻한 마음씨였습니다.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자신이 받은 그 따스함을 다른 이들에게 나눠주고 싶어서, 수많은 거절에도 낙심하지 않고 꿋꿋이 버텨낼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길 바라는 영화의 주제를 드러내기 위해서 기쁜 순간보다 초라한 순간이 많았던 조의 인생을 보여주었습니다.
삶을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더라도, 나다운 삶을 살 수 없더라도, 지나간 순간에 미련이 남아 괴물이 되어도 시계추는 계속 돌아갑니다. 아픔과 슬픔, 부끄러움이 많은 인생을 살았어도, 이를 인정하고 최선을 다한다면 누가 뭐래도 괜찮은 삶을 산 것이죠. 저와 여러분도 명함에 숨겨놓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전할 수 있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