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이별
여러분은 11년 동안 하나의 물건을 소중하게 다룬 적이 있나요? 날이 갈수록 더 좋은 제품이 나오는 요즘 세상에서 하나의 물건을 5년 이상 사용하는 건 정말 어렵습니다. 그 물건이 대체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지 않는 한, 몇 년이 지난 물건은 관심 밖으로 밀려나거나 쓰레기통에 처박혀 버립니다. 11년 만에 다시 만난 <토이 스토리 3> (2010)는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장난감들의 이야기를 다시 조명해 보았습니다.
<토이 스토리 3> 시놉시스
모든 장난감들이 겪는 가장 슬픈 일은 바로 주인이 성장해 더는 자신들과 놀아주지 않는 것입니다. 우디와 버즈에게도 그 위기가 찾아옵니다. 앤디가 대학에 진학해 집을 떠나게 된 거죠. 헤어짐의 불안에 떨던 장난감들은 앤디 엄마의 실수로 집을 나오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탁아소에 기증하는 신세가 됩니다. 장난감들은 앤디가 자신들을 버렸다고 생각하게 되죠. 그런데 어린이집 애들, 장난 아니게 난폭하고 험합니다. 그리고 이 세계에는 상상도 못했던 거대한 음모까지 숨겨져 있습니다. 앤디가 여전히 자신들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토이 군단은 앤디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생애 가장 큰 모험을 결심합니다. 우디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토이들, 과연 이들의 위대한 탈출은 성공할 것인가!
11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았다
<토이 스토리 3>의 오프닝은 어린 앤디가 장난감을 갖고 놀던 모습을 멋지게 재구성했습니다. 상상력이 풍부했던 어린 시절에 했던 장난감 놀이를 근사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상상 속 영화가 끝나면 엄마가 찍어 준 홈 비디오로 넘어가고, 소년 앤디는 대학 입학을 앞둔 청년 앤디가 되어 있었습니다. 앤디의 어린 시절을 함께했던 장난감들은 벼룩시장에 팔려 가거나, 놀다가 잃어버리고, 볕이 들지 않는 상자 속에 고이 담겨 있었다. 한때는 정말 사랑했지만, 앤디가 자라면서 이들을 찾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이 영화는 11년 만에 나온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두 번째 후속작입니다. 어린 시절에 정말 사랑했던 것들이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처럼, 이 작품도 우리의 기억 속에 잊힐 즘에 다시 한 번 모습을 비추었습니다. 전편에서 쌩쌩했던 버스터가 늙어버려 되어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었듯, <토이 스토리> 1편과 2편을 보고 자란 아이들은 이제 장난감을 갖고 놀지 않는 청소년이나 어른이 되어 있었습니다. 극 초반에 11년의 세월을 고스란히 담아둔 건 이 프랜차이즈를 보고 자란 1020 관객들이 이번 영화에 더 몰입할 수 있게 한 제작진의 배려였습니다.
장난감의 꿈과 희망이 사라진다면?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관통하는 주제는 '장난감은 장난감다워야 한다.'입니다. 영화 속에서는 장난감이 자신의 의지로 주인 몰래 움직이지만, 장난감들은 주인이 없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가 사라진다는 걸 잘 알고 있습니다. 1편에서는 새 장난감의 현실 적응기를 그렸고, 2편은 장난감이 될 것인가 전시품이 될 것인가 고민했다면, 3편에서는 주인한테 버려진 장난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장난감의 존재 이유가 사라진 모습은 아래 두 장면에서 잘 나타납니다.
대학교에 입학할 앤디는 우디를 제외한 나머지 장난감을 까만 봉지에 담았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함께했던 우디는 앤디와 함께할 수 있었지만, 버즈를 비롯한 나머지 장난감(이하 버즈 패밀리)은 다락방으로 들어갈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앤디의 엄마가 장난감이 담긴 까만 봉지를 쓰레기로 착각해 버리는 바람에 쓰레기와 같이 바깥에 내다 버렸습니다. 우디는 쓰레기차에 들어갈 뻔한 버즈 패밀리를 구하지만, 버즈 일행은 앤디에게 버림받았다는 생각에 마음에 상처를 입었습니다. 결국 이들은 몰리가 내놓은 바비와 함께 햇빛마을 탁아소로 갔고, 우디는 이들을 달래기 위해 탁아소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서로 친하고, 아껴주고, 사랑하던 사람이 어느 순간 나를 떠나 버리면 가슴이 아픕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도 이런 일을 겪으면 힘든데, 이 장난감들은 한때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던 주인한테 버림받았으니 그 상처가 얼마나 클까요. 거절의 상처를 겪지 않은 우디는 모두 다 함께 앤디 곁으로 돌아가길 원했지만, 한번 좌절을 겪은 버즈 패밀리는 그의 말이 당연히 들리지 않았습니다. 쓰레기장으로 갈 뻔한 버즈 패밀리는 더 이상 자신들이 우디를 즐겁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모두 다 함께할 수 있는 탁아소에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큰 아픔을 겪은 버즈 패밀리는 살아남기 위해 차선책을 선택했습니다.
햇빛마을 탁아소의 장난감 보스 라쏘가 악당으로 거듭나는 이유도 전 주인 데이지한테 버림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처클즈, 빅 베이비, 라쏘는 데이지의 장난감이었는데, 딸기 향이 나는 곰돌이 라쏘는 데이지가 특별히 사랑하는 장난감이었습니다. 가족과 함께 드라이브를 나간 데이지가 점심 먹고 잠이 드는 바람에 풀밭에서 갖고 놀던 장난감을 챙기지 못했고, 세 장난감은 데이지 곁으로 돌아가기 위해 머나먼 길을 걸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데이지 집에 도착했지만, 데이지는 새로운 라쏘를 안고 있었고, 크게 토라진 라쏘는 다른 두 친구를 데리고 데이지 집에서 떠났습니다.
자신이 본 것을 확대 해석하여 처클즈와 빅 베이비에게 거짓말을 한 건 나쁜 행동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자리가 다른 친구로 언제든지 대체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데이지 곁으로 돌아가더라도 또다시 버림받을 게 뻔하다고 생각하니, 데이지 곁을 떠나는 게 더 속이 편하지 않았을까요. 장난감의 목적을 잃어버린 라쏘는 버림받은 장난감들이 모인 햇빛마을 탁아소의 왕이 되었고, 자신이 겪은 아픔을 다른 장난감들도 그대로 받길 바라며 몽니를 부렸습니다. 주인과 원치 않는 이별은 장난감에게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안녕, 나의 오랜 친구
그럼 아름다운 이별은 어떤 모습일까요? 이 영화의 마지막 10분 동안 이상적이고 성숙한 이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습니다.
모든 전말을 깨달은 앤디의 장난감들은 라쏘의 방해를 뚫고 앤디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우디가 쓴 편지를 읽은 앤디는 장난감들을 들고 보니의 집에 찾아갑니다. 앤디는 보니에게 자신이 가진 장난감들을 하나하나 설명하면서 건네주었고, 자신이 들고 가려 했던 우디도 보니에게 주었습니다. 앤디와 보니는 장난감을 갖고 놀면서 오랜 친구들에게 석별의 정을 나누었다. 보니와 장난감들이 현관에 대학교로 떠난 앤디를 바라보면서 영화가 끝납니다.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앤디는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장난감 친구들에게 작별을 고했습니다. 보니에게 각 장난감의 이름과 특징을 얘기하는 모습은 장난감들에게 자신들을 향한 애정과 이별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마치 ‘나는 너희를 사랑했지만, 더 이상 사랑해 줄 수는 없으므로 새 주인한테 보내는 거야.’라고 얘기하는 것 같았습니다. 진심 어린 앤디의 러브레터는 옛 친구와 새 주인을 모두 만족시켰습니다.
이별은 언제나 슬픕니다. 아무리 납득할 만한 이유를 대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면 마음이 아플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토이 스토리 3>는 그 장면을 영화처럼 그렸습니다. 현실에선 이런 이별이 있을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영화이기 때문에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지 않았을까요.
보니가 버즈와 우디를 안고 있는 장면을 끝으로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9년 뒤, 그 누구도 예상하지 않았던 네 번째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완결된 것으로 보이는 프랜차이즈에서 펼쳐질 새로운 이야기는 어떤 모습일까요?
오늘의 환상극장은 여기까지입니다. 환상적인 한 주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