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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새 May 03. 2024

[13화] 토이 스토리 4

내가 살아있는 한 아직 끝났다고 하지 마


대학생이 된 앤디는 자신의 대학교 근처에 사는 어린아이 보니에게 자신의 장난감을 모두 물려주고 삶의 다음 단계로 떠났다. 2010년에 개봉했던 <토이 스토리 3>의 마지막 장면이다. 모든 장난감이 보니의 집 현관에서 단체 사진을 찍는 장면으로 <토이 스토리> 프랜차이즈가 3부작으로 마무리될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픽사는 우리의 예상을 깨고 9년 만에 <토이 스토리 4> (2019)를 선보였습니다. '박수칠 때 떠나라',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이 작품은 유종의 미를 이야기한 두 격언 중 어느 쪽이 더 어울렸을까요?



<토이 스토리 4> 시놉시스

새로운 주인 보니가 새 장난감 포키를 손수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장난감의 운명을 거부한 포키는 도망을 가고, 보니를 위해 우디는 포키를 찾아 길을 떠납니다. 이 모험의 길에서 만난 오랜 친구 보 핍 덕분에 우디는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찾기 위해 버즈와 친구들은 세상 밖 위험천만한 모험을 떠나게 됩니다.


좀 달라졌다?


9년 전, 앤디의 여동생 몰리의 램프 도자기였던 보 핍은 새 주인의 곁으로 떠났습니다. 우디는 그가 가길 바라지 않았지만, 그는 자신의 운명을 덤덤하게 받아들였습니다. 9년 후, 보니의 가족 여행에 따라간 우디는 우연히 온 유원지에서 보 핍을 다시 만났습니다. 야생에서 살아남은 그는 우아하고 도도한 귀족 여인이 아니라 부러진 팔을 붙이고 드레스 대신 손수건을 허리에 동여맨 전사가 되어 있었습니다.


극중 시간으로는 9년, 영화 개봉 시기로는 무려 20년 만에 다시 만난 보 핍은 정말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토이 스토리 2>까지만 하더라도 분량은 별로 없지만 청순가련한 귀부인이었던 그는, <토이 스토리 4>에서는 거친 야생에서 살아남은 전사가 되었습니다. 앤디의 집에 있는 시절에는 우디, 버즈, 포테이토 부부 등 개성 넘치는 캐릭터에게 밀려 주목받지 못했지만, 골동품점과 유원지에서는 극을 이끄는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다시 만난 보 핍이 환골탈태한 것처럼, 9년 만에 다시 만난 <토이 스토리 4> 역시 기존의 틀을 깨부수었습니다.


앤디의 집을 떠날 때만 하더라도 청순가련했던 그녀가...


역대 <토이 스토리> 시리즈는 장난감을 갖고 노는 장면으로 시작했습니다. 1편에선 어린 앤디가 자신의 장난감으로 강도를 무찌르는 보안관 놀이를 했고, <토이 스토리 2>는 앤디의 장난감들이 버즈가 저그 대왕을 무찌르는 비디오 게임을 하는 장면을 실었고, <토이 스토리 3>는 마을의 보물을 약탈하는 악당에 맞서는 보안관과 우주 전사 놀이를 영화처럼 각색했습니다. 2편의 오프닝이 1/3편과 살짝 결이 다르긴 하지만, 큰 틀에서는 어느 정도 비슷했습니다. 하지만 4편의 첫 장면은 시리즈 전통의 역할 놀이 대신 현실에서 우디와 보 핍이 이별하는 모습을 담았습니다. 상상의 나래가 아니라 냉정한 현실로 문을 연 <토이 스토리>는 참으로 낯설었습니다.


모든 걸 다 때려 부수는 강인한 전사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토이 스토리 4>의 도전은 이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역대 토이 스토리 시리즈에서는 장난감을 장난감처럼 대할 수 없게 만드는 빌런이 등장했지만, 이 영화의 빌런 개비 개비는 도리어 장난감처럼 살아가길 원했습니다. 다른 빌런들은 장난감의 외형(1편의 시드) 혹은 정신(2편의 스팅키, 3편의 라쏘 베어)을 훼손하는 캐릭터였다면, 개비 개비는 평범한 장난감처럼 살고 싶었지만, 불량품이라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리즈의 엔딩은 <You've Got a Friend in Me>의 원곡이나 리믹스곡을 사용했지만, <토이 스토리 4>의 엔딩곡은 전혀 다른 노래였습니다. 물론 이 영화의 마무리가 기존 시리즈와 결이 달랐기 때문에 이 노래를 활용할 수 없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늘 듣던 노래를 듣지 못하니 조금은 아쉬웠습니다.


알고 보면 마음 아픈 빌런, 개비 개비


강산이 두 번 바뀔 정도로 이어진 프랜차이즈였기 때문에, 네 번째 작품 정도 되면 새로운 변화를 줄 필요는 있었습니다. '주인 몰래 움직이는 장난감의 모험'이라는 신선한 소재도 네 번이나 사용하면 지루해지기 마련입니다. 영화 속 새로운 시도가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는 없지만, 전통에 매여 있지 않고 변화를 주면서 시리즈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 건 나쁘지 않았습니다.


쓰레기인가장난감인가?


유치원 예비 소집에 다녀온 보니는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해 교실에 널브러진 포크 숟가락과 미술도구로 애착 장난감 포키를 만들었습니다. 보니의 예비 소집에 몰래 따라온 우디는 포키를 새로운 장난감으로 소개하지만, 장난감이 아니라 쓰레기로 생각했던 포키는 쓰레기통만 보이면 언제 어디서나 달려갔습니다. 보니 가족과 장난감들은 유치원 입학 기념 여행을 떠났지만,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이 온 포키는 한밤중에 렌터카를 떠났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포키를 찾은 우디. 우디는 그에게 자신의 전 주인 앤디와 현 주인 보니 이야기를 날이 밝을 때까지 들려주었습니다.


<토이 스토리 4>는 오래된 시리즈에 새로운 변화를 주었지만, 장난감의 근원을 묻는 시리즈의 전통은 그대로 간직했습니다. <토이 스토리>에 등장한 장난감들은 '현실적인 장난감 vs 이상적인 장난감', '장난감인가? 전시품인가?', '주인 없는 장난감은 행복한가?' 등 평범한 인간이 생각해 볼 수 없는 장난감만의 고민을 그 나름대로 깊이 풀어 주었습니다. 영화를 관통하는 질문들은 인간 사회에서 있을 법한 고민을 장난감의 현실에 빗대 표현했기 때문에, 어른 관객과 아이 관객 모두 영화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유치원에서 만든 보니의 새 친구 포키.

<토이 스토리 4> 전반부에 드러난 문제의식은 '쓰레기인가? 장난감인가?'입니다. 텍스트만 보면 2편의 질문과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나온 문장입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모든 장난감은 공장에서 만들어진 기성품이었다. 2편의 빌런 스팅키조차도 정교한 공정을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인기 없는 장난감이라 박물관에 전시되길 원했지만, 그래도 그는 장난감의 본 목적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제시했던 <토이 스토리 2>의 스팅키 피트. 하지만 그는 장난감의 정체성은 갖고 있었습다.

하지만 이 작품의 포키는 차가운 기계 대신 따스한 사람이 만든 장난감이었습니다. 포키의 겉모습은 갖고 다니기 좋은 애착인형이지만, 플라스틱 포카락과 각종 수예 도구 같이 장난감이 아닌 물건들을 이리저리 조합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장난감으로서의 정체성은 아예 없다고 봐도 됩니다. 박스에서 갓 나온 1편의 버즈 라이트이어가 자신의 초기 설정에 너무 심취해서 현실을 잠시 잊어버렸다는 걸 생각하면, 공장에서 태어난 장난감은 자신의 역할과 본질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포키는 주인이 필요해서 만들어진 장난감이지만, 일회용 식기와 공예품을 억지로 묶었기 때문에 장난감이라는 새 역할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습니다.

포키에게 자신의 모든 경험을 알려준 우디.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모두 겪으며 장난감으로서의 흥망성쇠을 모두 맛본 백전노장 우디는 장난감으로서 갓 태어난 포키에게 최고의 도우미가 되었습니다. 전혀 다른 삶을 살다 원치 않게 장난감이 되어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모르는 포키는 처음에는 자신의 처지를 부정했지만, 우디의 이야기를 경청하면서 자신에게 부여된 새로운 역할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포키가 수십 년 동안 주인을 찾지 못한 골동품점의 개비 개비에게 우디의 이야기를 온종일 들려준 걸 보면, 이제 어엿한 보니의 장난감이 되었습니다.

개비 개비에게 우디의 이야기를 들려준 포키. 포키 덕분에 그는 골동품점 주인 손녀 오로라와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꿈을 키웠습다.

처음 가는 유치원에 적응하지 못했던 보니처럼, 포키 역시 처음 마주한 장난감 세계에서 자신의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습니다. 포키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다른 친구들에 비해 볼품없어 보이지만,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보니와 그걸 가르쳐 준 우디 덕분에 보니의 최애 장난감으로 거듭날 수 있었습니다. 외면이 어떻고 출신이 어떻든 간에, 주인의 사랑을 깨달은 포키는 새로운 세계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포키가 보니 곁으로 돌아가고, 개비 개비가 유원지에서 주인을 만나면서 <토이 스토리 4>가 평이하게 마무리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우디너 진심이야?


우디는 옛 친구 보 핍과 함께 골동품점에서 포키를 구출했습니다. 포키를 붙잡았던 외로운 장난감 개비 개비도 유원지에서 자신의 진짜 주인을 찾으면서 해피 엔딩을 맞았습니다. 모든 여정이 끝난 뒤, 우디는 보 핍과 그의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간 함께했던 동료들 곁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이 남았던 우디는 보니의 장난감들에게 돌아가길 망설였고, 오랜 동료의 마음을 읽은 버즈는 마음 가는 대로 하길 바란다며 그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보니의 곁을 떠나 주인 없는 장난감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한 우디는 옛 동료들과 석별의 정을 나누고 유원지에 남았습니다.


석별의 정을 나누는 (구) 앤디의 장난감들


아 이 얼마나 충격적인 마무리인가요. '장난감은 장난감다워야 한다.'라는 메시지에 그 누구보다 충실했던 우디가 이런 선택을 한다니, 정말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인과 함께하는 장난감의 역할을 한평생 다했던 그가 주인 없는 장난감의 삶을 선택한 장면은 이 시리즈를 오랫동안 봐 왔던 팬들의 뒤통수를 딱 때렸습니다.


안녕, 나의 오랜 파트너.


초기 설정에 심취한 버즈에게 장난감의 현실을 알려준 것도, 만인의 전시품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장난감이 되길 선택한 것도, 그 누구보다 주인의 사랑을 더 소중하게 생각한 것도 우디였습니다. 1편부터 4편의 전반부까지 줄곧 이런 태도를 견지했던 우디가 갑자기 자기 주인을 떠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고 하니 뒷골이 딱 당기지 않을까요? 바로 전만 하더라도 주인에게 사랑받는 장난감의 이야기를 하던 인물이 정반대의 삶을 다짐하니 어안이 벙벙했습니다.

자기 대신 더 사랑해줄 장난감이 생겼기 때문에, 미련없이 떠난 것 아닐까?


우디의 마음이 바뀐 복선을 굳이 찾아보자면, 잊을만하면 등장하는 '내 안의 목소리를 존중하라.'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버즈가 위기를 맞이할 때마다 가슴에 달린 버튼을 눌러 나온 목소리를 따르는 장면으로 희화화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갓 유치원에 들어간 어린 보니가 힘들어하는 모습이 신경 쓰였던 우디는, 그가 매우 아끼는 포키를 지키기 위해 날밤을 새웠습니다. 영화 속에 크게 드러나진 않지만, 본인보다 더 큰 사랑을 받는 포키에게 장난감으로서 자신의 모든 경험과 애정을 물려준 우디는, 미련 없이 보니를 떠나 자신의 길을 찾으러 갔다고도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새 주인 보니가 자기 대신 포키와 제시를 더 찾으니, 더 이상 자신의 자리는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었죠.



그렇다고 하더라도 <토이 스토리> 시리즈를 이끌었던 우디를 이런 식으로 떠나보내는 건 너무나 아쉽습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가 오래되고 익숙했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건 인정하지만,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었던 우디의 캐릭터성을 깨뜨리면서까지 바뀔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토이 스토리> 시리즈의 팬이라면 이런 우디의 행보도 존중해야 하지만, 모든 영화를 다 봐왔다면 마음 한편에 씁쓸함이 남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충격적인 결말을 남긴 <토이 스토리 4>를 끝으로 <토이 스토리> 본편을 모두 살펴보았습니다. 시리즈의 마지막 10분은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장난감의 한계와 특성을 잘 살려낸 명작이었습니다. 이 영화의 후속작 <토이 스토리 5>가 2026년에 우리 곁을 다시 찾아옵니다. 보니 곁을 떠난 우디는 어떻게 다시 등장할 지, 그리고 어떤 새로운 장난감 이야기가 우리를 찾아올 지 기대가 됩니다. <토이 스토리 5>가 프랜차이즈의 명예로운 퇴장을 종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동행을 응원하는 작품으로 나오길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의 환상극장은 여기까지입니다. 환상적인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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