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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새 May 03. 2024

[14화] 위시

디즈니 박물관의 헌정 영화

여러분은 밤하늘을 보고 소원을 빌어본 적이 있나요? 저 하늘에 빛나는 별에 중요한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게 해 달라 빌고, 좋은 사람과 행복하게 살게 해 달라 빌고, 또 나의 꿈을 이루고 내 가족, 내 소중한 사람들이 잘 되기를 빌어 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 <위시> (2023)는 꿈이 사라진 도시 로사스에서 별에 소원을 비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꿈과 희망이 사라진 로사스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요?



<위시 시놉시스>

하늘에서 내려온 마법의 별과 함께, 사악한 매그니피코 왕에게 빼앗긴 소원들을 되찾으려는 용감한 소녀 아샤의 이야기. 진심 어린 소원과 용기만 있다면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아는 만큼 보이는 디즈니


<위시>의 줄거리를 짚고 넘어가기 전에, 먼저 디즈니 창사 100주년 기념작으로서의 <위시>에 대해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이 작품에는 디즈니가 그동안 만들었던 수많은 영화를 한데 녹여냈습니다. 100주년 기념 단편 영화인 <원스 어폰 어 스튜디오>에는 디즈니를 빛낸 캐릭터들을 한자리에 모았다면, 이 작품에서는 디즈니가 밟아온 발자취를 마음껏 기념했습니다. 영화 본편에서 발견한 요소와 <위시>의 특별 영상 '위시에 숨겨진 비밀'에서 소개한 오마주를 일부 발췌해 보았습니다.                    


<위시>에서 볼 수 있는 디즈니 오마주 (<위시>에서 등장한 디즈니 오마주 / 그 오마주의 원작)

○ 책장을 열며 시작하고, 책장을 닫으며 끝냄. / <잠자는 숲속의 공주> (1959)의 첫/마지막 장면

○ 아샤의 일곱 친구들 /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1937)의 일곱 난쟁이

○ 가보의 대사, "Life is so Unfair.(삶은 참 불공평해.)" / <라이온 킹> (1994) 스카의 대사, "Life is not Fair."

○ 만 18세가 얼마 남지 않은 아샤 / <쿠스코쿠스코!> (2000)의 주인공 쿠스코의 나이

○ 극중 주제와 상반되는 첫 곡, 'Welcome to Rosas' / 극중 주제와 상반되는 <엔칸토마법의 세계> (2021)의 첫 곡 'The Family Madrigal'

○ 런타임 30분 쯤에 시작한 메인 주제가 'This Wish' / 런타임 30분 쯤에 끝난 <겨울왕국> (2013)의 메인 주제가 'Let it Go'

○ 숲에서 움직이는 꽃, 닭들의 군무 / <환타지아시리즈에서 자주 본 영상

○ 숲에서 발 구르는 토끼 / <밤비> (1942)의 텀퍼

○ 아샤를 돕는 왕가의 백마 / 라푼젤을 돕는 <라푼젤> (2011)의 막시무스

○ 소원구 속에서 날아다니는 초록 옷의 소년 /<피터 팬> (1953)의 피터 팬

○ 말썽꾸러기 아이들을 위한 완벽한 보모 / <메리 포핀스> (1964)의 메리 포핀스

○ 폭죽으로 만든 미키 마우스 / 디즈니의 상징, 미키 마우스 (1928~)

○ 사비노가 우쿨렐레로 연주하는 노래 / 디즈니의 시그널 송, <피노키오> (1940)의 OST 'When You Wish Upon a Star'

○ 로사스 국민들이 매그니피코 왕에게 맡긴 1,923개의 소원 /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의 창립 연도 1923

○ 숲 속 다람쥐가 버섯을 연주할 때 사용한 드럼 스틱 / <겨울왕국> (2011)의 올라프의 팔

○ 아샤가 받은 로브와 지팡이 / <신데렐라> (1950)의 요정 대모의 착장

○ 발렌티노의 대사, "모든 포유동물이 평등한 유토피아." / <주토피아> (2016)의 배경, 주토피아

○ 매그니피코 왕의 이름, 금지된 마법서의 용 문양 / <잠자는 숲속의 공주> (1959)의 말레피센트


하나의 영화에 이렇게 많은 디즈니 오마주를 끼워 넣고, 디즈니랜드의 캐릭터 그리팅과 나이트 쇼로 이 작품을 홍보했던 것을 보면, 디즈니는 <위시>가 디즈니의 100번째 생일의 피날레를 장식해 주길 바랐을 것입니다. 이 작품이 흥행하지 못하는 바람에 디즈니의 소원은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디즈니가 이 작품에 공들인 노력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왕도를 걷는 주인공 아샤반전 있는 빌런 매그니피코 왕


<위시>를 이끄는 두 인물은 꿈 많은 소녀 아샤와 모든 소원을 대신 들어주는 매그니피코 왕입니다. 정석적인 디즈니 애니메이션 주인공인 아샤와 자신의 욕망 때문에 돌변해버리는 악당 매그니피코 왕. 상반되는 두 사람이 대립하면서 위시의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이번 시간엔 <위시>의 두 주인공 아샤와 매그니피코 왕을 간단히 분석하고, 이들의 상반된 특성에 대해 이야기해보았습니다.


‘평범하게 살던 주인공이 이 세계에 해가 되지 않는 소망을 품었지만, 주변의 환경, 악당의 반대 때문에 고난을 겪고,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그 어려움을 헤쳐 나간다.’ <위시>의 주인공 아샤가 진정한 주인공으로 성장하는 과정은 수많은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습니다. 2시간 안에 모든 서사를 끝내야 하므로, <위시>는 평범한 애니메이션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서사 구조를 따라갔습니다.


<위시>가 디즈니 100년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했기 때문에, 이 작품의 주인공 아샤 또한 전통적인 주인공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시리즈 내내 자신의 정체성을 두고 갈등하고 고민하는 <겨울왕국> 시리즈의 엘사, 아버지로서, 아들로서의 역할을 함께 고민했던 <스트레인지 월드>의 예거 클레이드, 영화 내내 핍박받다가 마지막에 주인공의 자리를 되찾는 <주먹왕 랄프>의 바넬로피 본 슈위츠 등 최근 개봉한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인공들은 자기만의 서사를 갖고 있습니다. 개성 넘치는 캐릭터가 아니라 흔히 볼 수 있는 정석적인 성장형 캐릭터로 만들어진 아샤는 주인공의 서사보다 극의 서사에 집중하는 클래식 디즈니의 흔적이었습니다.


로사스 왕국의 성군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자신의 욕심을 억누르고 있었던 매그니피코 왕. 자신의 이상을 가득 담은 화려하고 멋진 왕국을 만들고 싶었지만, 그 이상이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에 부질없는 욕심쟁이 왕으로 남아버렸습니다. 처음부터 절대 악으로 등장한 게 아니라 시간과 환경에 따라 점차 타락했기 때문에, 매그니피코 왕은 아샤에 비해 입체적으로 그려졌습니다.


왕도를 걸었지만 평범했던 아샤.


래식 디즈니에서 나온 것 같은 아샤와 달리 매그니피코 왕은 현대 디즈니에 조금 더 어울리는 악당이었습니다. 초장부터 대놓고 악의 기운을 풀풀 풍기던 <101마리의 달마시안 개>의 크루엘라 드 빌, <잠자는 숲속의 공주>의 말레피센트와 달리, 그는 표면적으로 자신의 신념에 따라 국민에게 선정을 베풀었습니다. 왕국의 국민이 자신에게 소원을 맡기기만 하면 자신이 내야 할 세금과 임대료는 면제받고, 또 낮은 확률로 자신의 소원이 이뤄지기도 했습니다. 생활에 밀접한 고정비가 면제되는 것만 해도 대단한 혜택 아닌가요? 하지만 그의 정책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국민을 예속시키기 위한 일종의 함정이었습니다.


선역으로 보이던 인물이 자신의 본색을 드러내 악행을 저지르는 <겨울왕국>의 한스처럼, 매그니피코 왕도 자신의 오만함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악당이 되고 말았습니다. '서사를 따라가는 주인공에 맞서는 악당은 자신의 이야기를 마음껏 펼친다.'는 명제는 클래식 디즈니에서도 자주 볼 수 있지만, 선역에서 악역으로 전환하는 턴힐을 시키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습니다. (<모아나>의 테 카처럼 악역에서 선역이 된 경우-턴페이스-도 있습니다.)


성군처럼 보였으나, 권력에 취해 폭군이 된 매그니피코 왕.


두 주인공의 전반적인 인물 분석은 여기서 마무리하고, <위시>에 담긴 이야기들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유토피아의 탈을 쓴 디스토피아


마법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마법사 매그니피코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땅 로사스에 새 왕국을 세웁니다. 로사스에선 누구나 와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살 수 있지만, 열여덟 살이 되면 자신의 가장 소중한 소원을 왕에게 맡겨야 합니다. 매그니피토 왕은 그 소원을 자신의 집무실에 고이 보관한 뒤, 매달 열리는 소원 성취식에서 그중 가장 간절한 소원 한두 개를 이루어 줍니다. 소원이 이루어질 가능성은 매우 낮지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기 힘으로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려들었습니다.


언제나 활기찬 섬나라 로사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겉보기엔 생기가 넘치는 외딴 섬 로사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암울하기 그지없습니다. 로사스 국민들은 주거, 식료품, 의복, 문화생활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비용은 면제받지만, 가장 소중한 자신의 꿈을 왕에게 바쳐야 하기 때문에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입니다. 그 사실을 잘 알았던 매그니피토 왕은 꿈을 잃어버린 상실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에게 맡긴 꿈을 잊어버리게 하는 마법을 걸지만, 그의 마법은 당장의 상처를 봉합하는 미봉책일 뿐이었습니다. 소원 성취식에서 자신의 소원을 바친 두 남녀가 갑자기 생기를 잃어버린 건, 아샤의 친구 사이먼이 열여덟 살이 되어 소원을 바친 뒤 매사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고 잠만 자는 건, 삶의 목적을 잃어버리고 방황했기 때문이었습니다.


'Welcome To Rosas', 어서 오세요. 꿈과 희망이 없는 로사스에.


<위시>의 배경 로사스를 소개하는 노래 'Welcome To Rosas'에선 슬픔과 불안이 없고 매일매일 새로운 것만 가득한 곳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꿈과 희망이 없고 그저 시간만 태우는 허무함만 가득차 있었습니다. 매그니피코 왕이 로사스 백성의 거의 모든 욕구를 채워주었지만, 가장 중요한 꿈과 희망 그리고 자아 실현의 가능성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이었습니다. 몇몇 사람은 잃어버린 꿈을 대신할 새로운 소원을 찾긴 했지만, 대다수의 국민은 자신의 미래를 그리지 못한 채 현재의 삶에 안주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도망친 자에게 낙원은 없듯이, 자신의 운명을 왕에게 맡긴 겁쟁이들의 유토피아는 이내 폭군의 횡포를 온몸으로 받아내는 디스토피아로 변해버렸습니다.


유능하고 선한 독재자는 존재할 수 있을까?


마법 때문에 소중한 가족을 잃은 마법사 매그니피코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머나먼 땅 로사스에 새 왕국을 세웁니다. 로사스 국민의 소원을 비밀 저장소에 보관한 매그니피코 왕은 매달 소원 성취식을 열어 수많은 소원 중 자신이 엄선한 한두 개의 소원을 들어 주었습니다. 매그니피코 왕은 소원을 맡긴 백성들을 자신의 영지에서 먹여주고 입혀주고 재워주면서 자신의 왕권을 공고히 다졌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견습생 후보자 아샤를 만났고, 면접 직후 열린 소원 성취식에서 자신의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날 밤, 저장소에 보관한 국민의 소원이 밝은 빛을 내며 하늘에서 떨어진 별빛에 일제히 반응했습니다. 간밤에 일어난 소동이 아샤 때문에 일어난 걸 깨달은 매그니피코 왕은, 그를 제거하기로 마음먹고 서재에 잠들어 있던 금단의 마법서를 펼쳤습니다.


참 잘생기고 능력도 좋은데, 거기에 취해버렸어..!


상실의 아픔을 겪었던 매그니피코 왕. 소중한 사람을 더 이상 잃기 싫어서 오랫동안 수련한 뒤, 외딴섬 로사스에서 자신만의 나라를 세웠습니다. 영화에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극적인 상상력을 덧붙여 보면, 매그니피코는 처음엔 부인 아마야와 자신을 따르는 몇몇 백성들과 함께 초심을 유지한 채 잘 살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로사스의 국왕이 마법을 부려 자신의 힘으로 이루기 어려운 소원을 들어준다는 소문이 여기저기 퍼지자 각지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로사스로 찾아온 수많은 백성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게 되자 그는 사람들의 인기와 지지에 심취해 점점 오만방자하게 변해버렸습니다. 로사스 건국 초기의 매그니피코 왕에 대한 정보는 자세히 나오지 않았지만, 매그니피코 왕이 처음부터 자신의 흑심을 드러냈다면 로사스엔 사람들은커녕 풀 한 포기조차 남지 않았을 것입니다.


매그니피코의 본심이 드러난 노래 'This Is The Thanks I Get?!'


매그니피코 왕이 변한 건 그가 백성들의 소원을 얘기하는 장면에서 자세히 드러납니다. 견습생 면접을 보는 아샤에게 비밀 저장소를 보여준 초반부에서는 '백성들의 소원', '나에게 맡긴 소원'이라고 정확히 표현합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보관소에 담긴 소원들이 별빛에 울리는 장면에서는 '내 소원들이 반응하고 있어.'라고 얘기했습니다. 자신을 믿고 따르는 백성들이 맡긴 소원을 자기 것인 양 얘기하는 것을 보면, 자신에게 반기를 드는 아샤가 없었더라도 폭군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습니다.


결말부의 매그니피코 왕. 자신의 힘에 취해 총기 대신 광기가 서렸습니다.


유능하고 선한 독재자가 현실 세계에서 찾아보기 정말 어렵듯이, 절대 왕권을 지닌 <위시>의 매그니피코 왕이 재임 기간 내내 유능하고 선한 통치자가 되는 건 매우 힘들었을 것입니다. 로사스의 모든 경제활동은 매그니피코 왕의 마법에 밑바탕을 두기 때문에 자신보다 유능한 사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게다가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들이 로사스에 찾아왔기 때문에 매그니피코에게 도움이 될만한 인물이 찾아올 가능성은 더 낮았을 것입니다. 절대 군주에게 함부로 조언할 수도 없었던 데다가 이 나라엔 그에게 조언할 만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자아도취에 빠진 왕은 타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총기를 간직한 순수한 소녀가 독재자를 무너뜨리다


열일곱 살 소녀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의 견습생 후보가 되었습니다. 매그니피코 왕이 자신의 비밀 보관소를 열어준 덕분에 아샤는 로사스 국민의 모든 소원을 한눈에 볼 수 있었고, 그는 그곳에서 100살이 되어서도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비노 할아버지의 소원을 찾았습니다. 아샤는 곧바로 왕에게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왕은 이를 거절했습니다. 왕이 이뤄주길 거부한 소원은 비밀 보관소 안에 평생 방치된다는 걸 깨달은 아샤는 가족들에게 그 사실을 얘기하지만, 가족들은 그의 마음을 헤아려주지 못했습니다. 복잡한 마음을 다잡기 위해 돌아가신 아버지와 함께했던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불렀고, 그 노래가 끝나자, 하늘에서 별이 내려와 그의 곁에 머물렀습니다.


<위시>의 주인공 아샤는 가족을 배려하고 친구들의 신임을 얻는 배려심 넘치고 유능한 소녀입니다. 100살이 되어서도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기다리는 사비노 할아버지를 위로하고, 친한 친구로부터 다른 사람을 너무 배려하는 게 단점이라고 얘기를 듣는 걸 보면, 아샤는 똑 부러지고 올곧은 심성을 지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심성 덕분에 그는 왕에게 견습생 면접에서 떨어질 각오로 오랫동안 이루어지지 못한 할아버지의 소원을 들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함께 있지만 서로 다른 두 사람.


위선적인 왕 매그니피코는 당돌하고 올바른 아샤가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로사스 백성을 위하는 척하면서 이들을 착취하고 있는 자신과 달리, 아샤는 그의 가족과 로사스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또 아샤가 들어주길 바라는 소원은 자신이 부귀영화를 누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지극히 이타적이면서 자신의 통치 체제를 뒤흔드는 위험한 소원이었습니다. 꿈과 희망을 빼앗아서 로사스 국민을 지배하고 있었는데, 꿈과 희망을 주고 싶다는 사람이 나타나니, 매그니피코 왕은 아샤를 눈엣가시처럼 여길 수밖에 없었습니다.


밤하늘의 별에게 소원을 빌자, 그의 마음을 들어줄 별이 내려왔다.

마법으로부터 소중한 사람을 지키고 싶다는 다짐을 저버린 매그니피코와 달리, 아샤는 사랑하는 가족들과 친구들, 로사스를 지키겠다는 마음을 끝까지 지켰습니다. 왕의 견습생 자리를 얻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신념을 꺾고 매그니피코 왕의 뜻에 따를 수 있었지만, 높은 지위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소원을 더 소중하게 여겼기 때문에 그의 마음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억울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하는 노래 'This Wish'가 끝나자 하늘에서 자신을 도울 별이 내려온 건, 하늘도 그의 마음을 갸륵하게 여긴 것이 아닐까요. 별의 격려를 받은 아샤는 매그니피코 왕에 맞설 용기를 얻었습니다.


아샤의 간절한 외침, 'This Wish'


꿈은 직접 이루는 거야


매그니피코 왕의 폭주를 막고 소원을 해방하려 했던 아샤와 여섯 친구의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습니다. 아샤와 로사스의 모든 백성은 매그니피코의 속박 마법에 묶여 옴짝달싹하지 못했고, 아샤와 함께했던 별이 매그니피코 왕의 지팡이에 갇혀 버리는 걸 눈으로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슬픔에 빠진 아샤는 빛을 잃은 소원구 곁에서 노래를 불렀고, 여섯 친구와 아마샤 왕비, 그리고 모든 백성이 그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 마음으로 다 같이 노래를 부르자, 이들을 묶고 있던 왕의 마법이 무력해졌고, 지팡이에 담겨 있던 소원과 별이 모조리 빠져나왔습니다. 눈 깜짝할 새 힘을 잃은 지팡이가 새 동력원으로 삼기 위해 매그니피코 왕을 흡수하자, 로사스를 감쌌던 어두운 기운이 물러갔습니다.


아샤가 매그니피코 왕을 유인한 뒤, 그의 여섯 친구가 매그니피코의 비밀 저장소의 천장을 열어 모든 소원을 해방하려 했지만, 이들의 작전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매그니피코는 아샤를 처단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한밤중에 로사스 국민을 모두 소집했습니다. 왕에게 도전하는 반역자의 비참한 최후를 보여줌으로써. 자신의 왕권을 더욱 굳히기 위함이었습니다. 아샤를 도와주던 별도 금단의 지팡이 안에 들어가 버려서 아샤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과거의 도망자들은 더 이상 자신의 운명을 그에게 맡기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묶인 아샤를 보고 마음이 바뀌다니, 로사스 백성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


로사스 국민은 왜 매그니피코 대신 아샤의 말을 믿었을까요? 이들의 심경 변화를 극 중에서 자세히 그리지 않았기 때문에 다 알 수는 없지만, 아마 위기 상황에 대응하는 매그니피코 왕의 모습이 매우 미덥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밤하늘에 비치는 별빛 때문에 모두가 다 행복했는데 왕 혼자 불안해서 모든 백성을 소집하지 않나, 소집한 이유를 얼렁뚱땅 이야기하고 그 원인을 백성들에게 찾질 않나, 소원 성취식을 열어 자기 용병을 만드는 등, 백성들 처지에서는 왕의 행동 하나하나가 의문스러웠을 것입니다. 일면식도 없는 어린 소녀가 오락가락하는 왕에게 꺾이지 않고 자기 뜻을 이루려 노력하니, 백성들은 매그니피코 왕보다 아샤를 더 믿었을 것입니다.


절망의 노래가 각성의 노래로, 'This Wish (Reprise)'.


이들의 마음이 변한 원인이 무엇이건 간에, 로사스 국민도 아샤와 친구들처럼 '자신의 꿈은 자신이 이루어 가는 것이다.'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모든 게 끝났다고 생각하는 아샤의 노래가 매그니피코 왕을 성토하는 각성의 노래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왕이 자신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을 걸 깨달았기에 더 이상 왕의 보호를 받지 않겠다고 나설 수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결심 덕분에 로사스에서 매그니피코 왕의 역할은 사라져 버렸고, 효용 가치가 떨어진 왕이 금단의 지팡이에 들어가 버리는 극적인 결말로 마무리될 수 있었습니다.




디즈니 100주년 기념작 <위시>는 그간 걸어온 디즈니의 발자취를 집대성한 작품이었습니다. 작품 곳곳에 수많은 오마주가 숨어 있었고, 클래식 디즈니에서 만날 수 있었던 전형적인 주인공과 현대 디즈니에서 쉽게 접하는 입체적인 악당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었습니다. 100년간 쌓아 놓은 수많은 오마주와 전형적인 서사 구조를 활용했기 때문에 처음 보는 영화지만 예전에 어디선가 본 것처럼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위시>는 디즈니의 한 세기를 기념하는 헌정 작품으로서는 손색이 없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프랜차이즈로서는 조금 아쉬웠습니다. 과거의 오마주에 너무 빠진 나머지 이 작품만의 특색은 별로 드러나지 않았고, 주인공/빌런/주제가/조연 등 이 영화만의 확실한 강점이 없었기 때문에 디즈니 팬뿐만 아니라 일반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오지 못 했습니다. ‘디즈니 기념관에 상영할 헌정 영화를 영화관에 개봉했기 때문에, 디즈니 팬들은 만족했지만, 일반 관객들이 외면했던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즈니 팬들은 앞으로 몇 년간 기존 디즈니 프랜차이즈의 후속작(<모아나 2>, <주토피아 2>, <겨울왕국 3> 등)을 감상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시>가 새로운 매력 없이 디즈니의 기존 작품을 답습하기만 한 게 안타까웠습니다. 디즈니가 다음 신규 프랜차이즈를 자신만의 정체성이 확고한 재밌는 작품으로 만들길 기대합니다.


오늘의 환상극장은 여기까지입니다. 환상적인 한 주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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