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참치 덮밥

한 그릇의 이야기 - 01

by 빛새

모든 일과가 끝난 목요일 저녁, 나는 이모께서 아침에 가져다주신 파를 손질하기 위해 부엌에 들어갔다. 냉동 파를 만들어 놓으면 나중에 요긴하게 쓸 수 있어서, 달이 중천에 떠 있는 한밤중에 파를 썰었다. 텃밭에서 갓 수확한 파를 씻고, 파 수염도 제거하고, 송송 자르면 손질은 끝. 한 상자가 넘는 어린 파를 투박하게 썰어 큰 지퍼백에 차곡차곡 담았다. 눈은 매웠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마지막 파 한 단을 손질하는데 갑자기 '서걱'하는 소리가 들렸다. 파가 썰리는 가벼운 소리가 아니라 다른 물체가 썰리는 둔탁한 소리였다. 알고 보니 부엌칼이 엄지손가락을 베면서 난 소리였다. 살면서 처음 느껴보는 따끔한 느낌이 내 손에서 느껴졌다. 출혈은 많이 나지 않았지만, 상처가 덧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칼에 베인 손가락을 치료하러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 파상풍 주사를 맞고, 상처 부위에 드레싱을 받고 나니 흥분되던 마음이 진정되었다. 큰 부상이 아님에 안도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급한 불이 꺼지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미리 써 놓은 원고도 없고, 미리 찍어놓은 사진도 없는데, 다음 주에 브런치에 올릴 글은 어떻게 써야 하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고민이 이어지려는 찰나, 내 머릿속엔 이 노래가 떠올랐다.


고추참치 고추참치
참치 참치 고추참치


'손을 다쳐서 요리를 못 하니까 고추참치를 따서 밥을 비벼 먹은 걸 쓰는 게 어떨까?'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글을 쓰기 위해 요리도 하고 집밥도 만들어 먹는 거지, 요리하기 위해 글을 쓰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으로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글에 집중하고 싶어서 밥을 만드는 과정을 줄였다.


밥을 데우고, 고추참치를 따고, 김을 썰어 넣고, 참기름을 뿌리면 요리 끝. 평소에는 두 시간 가까이 걸리는 요리 시간이 단 2분으로 줄어들었다. 밥상 사진과 메뉴 사진도 찍어 올린 후에 고추참치를 맛있게 비벼 먹었다. 30분 만에 하나의 글감이 만들어졌다.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이 딱 맞아떨어졌다. 뜬금없이 손을 다치는 바람에 돈도 많이 쓰고 손가락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했지만, 그 덕분에 글 한 편을 가볍게 준비할 수 있었다. 갑자기 찾아온 어려움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PBSE9022.jpg 첫 번째 그릇 - 고추참치 덮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