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대 중반의 어느 날, 나는 외가 친척들과 함께 횟집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설날과 추석이 아닌 어느 평일에 다 같이 모여서 할아버지와 할머니, 우리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한 방에 모여서 신선한 회와 매운탕을 함께 나누어 먹었다.
아직 회 맛을 모르는 철부지였던 나는 매운탕에 만 밥에 심심한 밑반찬만 퍼먹었다. 맛있는 회와 해산물이 쫙 펼쳐져 있는데, 먹을 수 없으니, 모형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림의 떡이 쫙 깔린 밥상에서 먹을 만한 게 없나 두리번거리다가, 문득 할아버지가 드시던 장어구이가 눈에 띄었다. 연로하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위해 집안 어른들이 주문하신 특식이라서 섣불리 달라고 하긴 어려웠다. 하지만 이걸 안 먹으면 후회할 것 같아 큰맘 먹고 한 점 달라고 부탁드렸다.
"할아버지."
"왜?"
"장어구이 한 점 먹어도 될까요?"
"그래. 맛있게 먹어라."
무례할 수도 있는 손자의 부탁을 흔쾌히 허락해 주신 외할아버지께 감사를 표하고 귀한 장어 꼬리를 한 점 받아먹었다. 달고 짭조름한 장어구이였지만, 손자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으니 더더욱 맛있었다. 평범하게 흘러갈 수도 있었던 어느 저녁 식사 자리가 특별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젠 다시 만날 수 없지만, 잘 차려진 장어구이를 보면 그때 그 순간이 다시 생각난다. 할아버지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