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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무김치

열세 번째 끼니 - 4

by 빛새

'그나저나 남은 열무김치는 어떻게 처리하지?'


이달 초, 나는 이번 식탁을 차리기 위해 열무김치를 샀고, 사 놓은 열무김치로 열무 비빔밥을 맛있게 해 먹었다. 좋은 일 뒤에는 어려운 일이 찾아온다고, 맛있는 한 끼를 차려 먹은 후엔 남은 열무김치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했다. 왜냐면 난 열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열무김치가 싫었던 건 열무의 향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향긋하고 톡 쏘는 열무 특유의 냄새를 좋아하겠지만, 나는 그게 불쾌하게 여겨졌다. 어릴 때엔 배추김치와 깍두기만 있으면 되는데 왜 이런 풀때기로 김치를 만들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열무를 계속 피했다.


계속 도망치다 보면 언젠가 막다른 골목이 온다고, 열무김치를 직면해야 했던 순간이 왔다. 이번 달엔 어떤 음식으로 글을 써야 할까 고민했지만, 만들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내 외면하던 친구에게 손을 내밀었으면 친해지려는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겠는가. 평소 같았으면 이런 음식이 생기면 주저하지 않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버렸을 텐데 말이다. 도망치기보단 도전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기 때문이었다.


열무에 익숙해지기 위해 하루에 한 번씩 냉장고에서 열무김치를 꺼내 먹었다. 어떤 날은 한 번도 손이 가지 않았고, 또 어떤 날은 계속 먹기도 했다. 가끔 열무김치 통을 냉장고에 재워두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루에 한 번은 얘를 만나려고 노력했다.


떨어져 있던 기간이 너무 길어서였을까, 열무김치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인간관계에서도 어떤 이에게 용기를 내어 마음을 열었지만 쉽게 친해지지 않는 경우처럼, 열무김치와 나도 이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 같았다. 올여름 동안 열무김치와 함께하면서, 어색한 동행이 계속 이어질지, 둘도 없는 절친이 될지 알아가야겠다.


여름방학 숙제가 생겨버렸다.


열세 번째 끼니 - 열무비빔밥, 닭국, 열무김치, 아이스 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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