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세 번째 끼니 - 3
한식의 세계화를 얘기할 때마다 김치, 불고기와 함께 비빔밥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한국인과 외국인이 다 함께 매콤달달한 고추장에 갖은 채소와 반숙 달걀을 비벼서 먹는 장면은 예능프로그램이나 한국 홍보물에 자주 나왔다.
하지만 이런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비빔밥은 생각보다 얼마 없었다. 한국에 온 외국인들이 갖은 채소를 비벼 먹는 K-비건 푸드인 산채비빔밥, 고소하고 기름진 고기를 곁들인 육회비빔밥, 맵고 뜨겁고 바삭한 돌솥비빔밥을 먹는 장면을 본 적 있었지만, 상큼하고 아삭한 열무 비빔밥에 도전하는 모습을 본 적은 없었다. 한국 안내 프로그램에 열무 비빔밥이 나오지 않았다는 건 이 음식이 사람들의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는 의미인데,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다.
열무 비빔밥의 밑바탕이 되는 열무김치는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배추김치는 어느 정도 맵긴 하지만 냄새와 맛이 평이하므로 김치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반면 열무김치는 톡 쏘는 향과 맵고 신 맛이 너무 명확하므로 취향을 탄다. 원재료 자체가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좋아하지만, 싫어하는 사람은 싫어하는지라, 이걸로 만든 열무 비빔밥을 부담 없이 얘기할 순 없었을 것이다.
또한 열무로 만든 음식은 여름 음식이라는 고정관념이 깊게 박혀 있다. 아삭하고 청량한 열무김치의 맛 때문에 여름만 되면 열무 음식 판촉 행사와 열무 관련 콘텐츠가 쏟아져 나온다. 사실 열무 관련 광고들이 열무말이국수, 열무 비빔국수, 열무 된장무침 등의 여름 음식들과 함께 나오다 보니, 열무김치만 있으면 언제나 만들 수 있는 열무 비빔밥에도 계절성을 함께 붙여버렸다. 호불호도 갈리는데, 여름에만 먹을 수 있다고 인식되는 비빔밥이 쉽게 생각나긴 어려웠을 것이다.
사실 나도 열무김치의 톡 쏘는 맛과 향 때문에 열무 비빔밥을 외면했었다. 하지만 이번 글을 준비하면서 직접 만들어 먹어보니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 덕에 내 머릿속에 열무 비빔밥이 선명하게 각인되었다.
그나저나 남은 열무김치는 어떻게 처리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