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들리에가 된 종이책
촛불이 단순한 빛의 원천에서 벗어나 샹들리에와 같은 화려한 장식품으로 진화했듯, 현대의 출판 역시 정보 전달이라는 본연의 기능성을 넘어 상징적인 가치를 지닌 매체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촛불의 진화, 기능에서 상징으로
전기가 발명되기 전까지 촛불은 어둠을 밝히는 가장 중요한 기능성 도구였습니다. 하지만 1879년 12월 31일 에디슨이 백열등을 공개하면서 촛불은 점점 빛을 제공하는 주요 역할을 상실하게 되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촛불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따뜻함', '낭만', '특별한 분위기', '축하', '고백'을 상징하는 오브제로 새롭게 태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상징적 가치는 촛불을 더욱 아름답고 다양하고 화려하게 만들었습니다. 촛불을 방사형 구조물에 올려 천장 조명기구로 쓰던 것이 보다 오브제 성격이 강한 현대의 샹들리에로 변모한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촛불이 메인이었던 샹들리에는 어둠을 밝히는 도구로 남기보다 공간의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부와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장식품이 되었죠.
현대의 출판
촛불의 역사는 현대의 종이책 출판이 겪고 있는 변화와 매우 유사합니다. 인터넷의 발전과 함께 영상시대가 열렸고 유튜브, OTT, 전자책, AI까지 등장하면서 종이책의 '정보 전달'이라는 기능적 역할은 크게 비교당하고 있습니다. 빠르고 저렴하며 방대한 정보를 담고 즉시 검색할 수 있는 디지털 매체에 비하면 종이책은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은 사라지기는커녕, 새로운 상징적 가치를 부여받으며 그 위상을 재정립하고 있습니다. 매년 열기를 더해가는 서울국제도서전과 다양한 북페어만 보아도 이제 종이책은 단순히 내용을 읽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종이책이 주는 의미를 몇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 소유와 상징성
나만의 책으로 가득 찬 책장을 꿈꾸게 되는 이유는 본능적 소유욕과 망각의 특성을 지닌 인간의 니즈(needs) 때문이기도 합니다. 종이책을 통해 좋아하는 것과 상징적인 것, 아끼는 것과 표현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과 이루고 싶은 것을 간접적으로 소유할 수 있습니다. 특히 전자기기와 인터넷이 발달된 우리나라에서 전자기기 접근이 좋은 전자책의 활성화가 오히려 더디고 구독의 형식으로 향유되는 것도 소유욕을 충족시켜주지 못한 이유가 큽니다.
그리고 어떤 책을 소유하고 있느냐가 보여주는 상징성도 있습니다. 특정 작가의 한정판이나 특별판을 소유하는 행위가 개인의 취향과 지성을 드러내는 상징이 되기도 합니다. 누군가의 책장을 들여다보는 유튜브 콘텐츠들도 그 사람의 특징을 나타내는 상징물로써 그 사람이 소유한 책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 물리적 경험과 집중이라는 행복
종이의 질감, 인쇄된 냄새, 책장을 넘기는 소리와 같은 아날로그적인 감각은 디지털 매체에서는 얻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편안한 의자에 앉아 책을 펴 들고 몰입할 때 집중에서 오는 행복감과 책을 다 읽은 후의 성취감과 훌륭히 탄생한 문장의 발견에서 따라오는 여운은 다시 책을 집어 들기에 충분합니다.
* 공간의 오브제
아름다운 표지와 디자인을 가진 책들은 그 자체로 인테리어 소품이 되어 서재나 거실을 꾸미는 역할을 합니다. 마음이라는 공간도 마찬가지입니다. 텅 비고 헛헛했던 삶의 공간들을 좋은 책과 문장들로 멋지고 아름답게 채워나갈 수 있습니다.
*작가의 탄생 그리고 만남
판매부수와는 별개로 지금같이 출판하기 좋은 때도 없습니다. 1인 출판, 독립출판, POD출판, 출판플랫폼, 전자책 등 출판의 종류와 방법도 다양하고 찾아보면 근래에 들어 상당히 디테일한 많은 부분이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습니다. 이같이 독서보다 오히려 출판이 대중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에서 출판을 통해 책의 형태로 실물화 된 자신을 만나고 작가로 불리는 경험은 꽤 특별합니다. 작품과 작가의 탄생, 작가들의 성장과 개성 넘치는 작가들의 등장 그리고 그들과 이어지는 실제의 만남은 작가와 독자 모두에게 큰 의미를 줍니다.
종이책 출판의 새로운 가치
촛불이 기능성의 빛을 잃어갈 때 낭만과 아름다움이라는 새로운 가치를 찾아냈듯, 종이책 역시 정보전달의 접근성과 기능성을 잃어갈 때 소유, 감각, 미학, 경험, 자아실현이라는 새로운 상징적 가치들을 발견했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출판사들에게 종이책을 '읽는 것'을 넘어 '소유하고, 느끼고, 즐기는' 경험을 제공하는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던져줍니다. 마치 촛불이 샹들리에 안에서 빛을 넘어선 아름다움을 뽐내듯, 현대의 종이책은 지식이라는 본질을 넘어선 예술적, 상징적, 경험적 가치로 독자들에게 다가가야 할 것입니다.
늘 흔들리는 촛불처럼 여겨지는 출판업계에 수없이 많은 밤길을 지나오면서도 그 불을 꺼트리지 않고 지켜오신 작가님들과 출판업계 전문가 한분 한분께 촛불같이 뜨거운 마음으로 감사를 표현합니다.
서점과 도서관에 불이 꺼지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라는 '촛불'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