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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Jun 22. 2019

완벽한 아침

완벽이란 말에 대해 다시 정의해보던 아침

오늘도 6시 30분에 기상하여 밥을 달라하는 호두에게 밥을 지어 줬다. 행복해하며 발바닥을 내 허벅지에 마구 비비고 오물대는 녀석이 귀엽다.  배가 불러 행복한 녀석이 뒹굴대고, 그때부터 내 식사도 시작된다. 오이지에 멸치볶음 밖에 없는 아침 식사지만, 직장 다니느라 바쁘신 엄마께서 딸을 위해 무리해가며 만들어 보내신 음식이라 그저 감사히 먹는다.


오늘은 아기와 내 아침 식사가 끝나자마자 설거지를 한다. 게을러서 쇠똥구리가 쇠똥을 굴리듯 집안일을 모으고 모아 더이상 미룰 수 없을 때 몰아서 하며 매우 힘들어 하는 편이다. 스스로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잘 안고쳐졌는데, 아기를 위해서는 체력 안배를 해야 해서 고쳐야겠단 생각이 들어 노력하고 있다.


설거지를 하는데, 라디오에서 캐논 파헬벨 음악이 나온다. 내가 참 좋아하는 곡이다. 호두는 뒹굴러 다니다가 엄마 가방에서 어제 먹다 남긴 떡뻥 통을 발견하고, 몰래 먹고 있다. 건강한 몸으로 내 힘을 써서 집안일을 하고,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며, 아기는 뒹굴뒹굴 굴러 다닌다. 순간 '아, 완전히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정말 별 것 아닌 아침, 그저 그 날이 그날인 것 같은 똑같은 아침이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우리 가족 모두가 건강해서 각자의 일을 하고 있고, 내 집이 있으니 내가 돌봐야 할 집안일이 있고, 좋아하는 음악이 있다. 특별히 슬픈 일도, 특별히 기쁜 일도 없다는 것은 그만큼 모든 것이 착착 원만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증거이다.


누구 한 명만 아파도, 집안에 작은 근심만 생겨도 나는 캐논 파헬벨을 들으며 콧노래를 흥얼거릴 수 없었을 것이다. 내삶을 이끄는 톱니바퀴는 그렇게 정교하게 맞물려 가고 있다. 지금도.


아, 물론 걱정이 없다는 의미는 아니다. 집안에 고질적인, 혹은 가족 내에 고질적인 문제는 늘 있다. 내 슬픔의 큰 원인인 호두의 아토피도 여름이 되어 좀 더 심해져서 마음이 아프다. 이런 저런 걱정은 잔존해있지만, 그 무엇도 내 콧노래를 막지는 못한다. 걱정보다 지금의 감사함이 주는 행복이 훨씬 크다.


육아와 집안일은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 육아는 살면서 내가 해본 수많은 일중 가장 힘든 일 같다. 직장에서 정말 이보다 더 바쁠 순 없다 싶을 정도로 많은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적도 꽤 있는데, 그보다 육아가 더 힘들게 느껴진다. 적어도 직장은 차 마시고, 식사할 시간, 화장실 편하게 갈 시간은 조금이라도 주어졌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은 평온하다. 호두와 함께 있으면 그 모든 시간이 넉넉하게 왈츠 같이 흘러가는 것 같다. 내가 가장 힘들어 하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고, 그저 가만히 있어도 에너지가 새어 나가는 것만 같은 바깥의 생활을 안해도 되고, 매일 매일 다양하게 펼쳐지는 아기의 성장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진귀한 경험이다.


고강도로 힘들지만, 고농축으로 진귀한 이 시간을 대체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너무 힘들고, 너무 행복하다. 그래도 하루 끝에는 힘듦보다 행복이 더 부각되게 마무리된다는 것이 신비하다.


완벽하게 행복한 아침. 슬픈 날은 슬퍼서 힘들고, 특별히 기쁜 날은 이 행복이 곧 새처럼 날아갈까봐 불안해하며 조금은 불완전하게 행복할텐데, 잃을 것도 얻을 것도 없는 평범한 날의 행복은 완벽하다.


나의 마음이야 어떻든 상관 없다는듯 매일 매일 그저 먹을게 있고 놀게 있어서 행복한 우리집 꼬꼬마가 내게 준 가르침이지 않을까. 내일도 아기 스승의 가르침을 붙들고 함께 완벽히 행복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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