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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Dec 13. 2019

나의 자존감

저는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었습니다. 권위적인 부모님 밑에서 장점보다는 단점에 초점을 맞추며 살았기에 스스로의 부족한 면을 먼저 보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시험에서 1개를 틀리면, 그 1개 틀린 것만 생각하느라 맞춘 나머지 24개의 문제에 대한 감사를 모르고 살았습니다. 실수를 하면 안타깝고 속상해서 그 마음이 한참을 갔고, 작은 일에도 쉽게 우울해졌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사랑을 많이 주신 부모님이었지만, 실수를 용납하지 않으셨기에 저에게 단점의 두꺼운 뿔테를 씌우기도 하셨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고서도 스스로의 단점을 고치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부모님의 문제가 아니라 제 문제였습니다. 살아가면서 당연히 맞닥뜨리는 수많은 실수 속에서 어른이 된 저는 여전히 자주 힘들어하고, 우울해했습니다. 


이렇게 낮은 자존감과 우울감을 가진 내가 자녀를 낳아 잘 기를 수 있을까? 저는 아이를 낳기 전 이런 생각을 참 자주 했습니다. 아이를 낳지 말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아이를 밝고 자존감이 높은 아이로 키우기에는 엄마로서의 자질이 많이 부족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주 느끼는 우울감도 문제였습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집에 아이와 단둘이 보내야 하는 일이 많을 텐데, 고인 물 같은 그 시간들을 나는 잘 견뎌낼 수 있을까. 참 두려웠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는 임신을 하였고, 아이를 낳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은 날 밤, 저는 깊은 새벽까지 잠들지 못했습니다. 한 생명이 내 손 위에 놓여 있다는 것이 전율이 일도록 무섭고 떨렸습니다. 내 손 위의 이 생명을 나는 잘 지켜낼 수 있을 것인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되물었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아이를 키우는 시간은 쉽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수면 시간과 안아주지 않으면 자꾸만 우는 아이를 안느라 아픈 손목으로 인해 몸이 지쳐가다 보니 마음도 우울해졌습니다. 아기가 신생아 때는 참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시간의 무게가 너무나 힘겨웠고, 다시는 내 인생이 돌아오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내 속에는 그런 두려움을 이겨낼 힘이 있다는 사실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그저 눈앞에 펼쳐진 낭떠러지 같은 하루하루만 보였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저는 그 시간을 그저 우울해하며 흘려보내지만은 않았는데 말입니다. 


저는 하루하루 정성을 다하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정성스럽게 먹이고, 최선을 다해 사랑을 표현하며 조금씩 내 삶의 무너진 벽돌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부족한 엄마였지만, 저에게는 무엇이든 정성을 다하는 좋은 습관이 있었습니다. 그 정성이 아이와 나를 살리고 있는 줄 그때는 미처 몰랐습니다. 


정성을 다했던 하루가 모이다 보니 내 마음에 무언가 조금씩 살이 차오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비록 눈에 보이는 것은 없을지라도 제 스스로에게 뿌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는 온 힘을 다해 아이를 위해 하루의 시간을 쪼개며 살아가고 있었고, 아이는 그런 엄마의 정성스러운 태도를 지켜보았습니다. 그저 그것만으로도 제 마음이 참 배불렀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을 지켜보는 내 아이. 하루의 끝이 다가오면 그 두 가지를 꼭 쥐고 오늘 하루도 잘 이겨냈다는 성취감으로 잠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아이가 밝게 웃고 있었습니다. 저도 그런 아이를 보며 깔깔거리는 큰 소리를 내며 웃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걱정과 달리 아이는 엄마의 힘듦이 아니라 엄마가 힘듦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자랐던 것입니다. 저는 비록 힘들었지만, 그 힘듦을 잘 이겨내고 싶었고, 그렇게 잘 이겨나가고 싶어 하는 제 태도를 아이가 좋게 봐주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는 엄마보다 훨씬 밝고, 사랑스러운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니 육아 전보다 육아 후의 자존감이 훨씬 높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힘든 시간을 성실하게 이겨온 제 모습이 좋습니다. 작은 하나라도 정성을 다해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지 않은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이전의 저보다 나아진 제 모습이 사랑스럽습니다.


저는 제 아이가 자존감이 높은 아이인지는 대화해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가 건강하게 지내온 그 시간을 바라보며 큰 아이는 무언가 좋은 자양분을 받고서 자라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생각만으로도 지난 2년의 시간을 돌아보면 힘들었지만 참 좋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엄마가 되어 갈까요? 잘 모르지만, 어떤 엄마가 되기보다는 본연의 내가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자라나길 바랍니다. 몸과 마음이 건강한 엄마라면 이미 충분히 좋은 엄마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하루도 정성스럽게 살아가고 싶습니다. 설사 아이에게 실수하더라도 오늘보다는 좀 더 빨리 사과하고, 좀 더 깊이 반성하며 살아가면서 말입니다. 저는 그렇게 더 건강한 엄마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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