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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빗소리 May 19. 2019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하듯

오늘 교회 청장년 가족 모임이 있었다. 오늘 새롭게 청장년에 들어오신 부부가 있어서 아내분 옆에 앉게 되었다. 낯을 많이 가리는 성격이라 쑥스러웠지만, 다들 친근하게 대화하는 속에서 어색하게 계신 것이 자꾸만 마음에 걸려 옆에서 중간중간 말을 걸게 되었다. 처음에는 최대한 비슷한 관심사를 찾아 말을 걸었는데, 대화하다 보니 나와 가치관이 비슷한 점이 너무 많으셔서 깜짝 놀랐다. 이야기가 물 흐르듯 시작되었고, 점점 서로 많은 것을 털어놓게 되었다.


유기농, 환경 보호, 자연주의, 발도르프 교육. 내가 삶을 살 때 중요시 여기는 것을 그분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얘기하다 보니 정말 좋은 정보들이 오고 갔다. 안 그래도 요즘 뭘 그렇게까지 신경 써서 먹이냐며 남편에게 한소리를 들을 때가 많아 점점 회의감도 들고, 지쳐가던 중이었다. 유기농이고 뭐고, 최대한 자연과 가까이하고, 뛰어놀게 하는 교육이고 뭐고 그냥 다 내려놓고 살자 생각도 했다. 그러나 몸은 편할지라도 내 성격에 분명 또 다른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어할 것을 안다. 고민이 많았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 만남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내 생각에 힘을 받고, 이제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쭉 밀고 나가자는 소신도 점점 다지게 되었다.


자가면역질환인 아토피를 앓고 있다 보니 먹을거리에 관심이 많다. 식생활 책을 챙겨서 많이 보는 편이다. 식생활 책을 보며 내가 먹는 모든 것에 대해서 불편하게 바라봐야 하는 것은 말 그대로 불편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알고 모르고는 천지 차이라 생각한다. 적어도 내가 식재료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가지고 있으면, 여러 번 먹을 안 좋은 먹거리를 좀 덜 먹게 되고, 좋은 먹거리를 더 찾아 먹게 된다 생각한다. 무엇보다 바디 버든에 관한 여러 책을 읽으니 내 몸에 쌓이는 각종 화학물질이 무서워서라도 유기농을 점점 찾게 된다.


내 몸은 굉장히 예민한 바로미터이다. 나는 조금만 화학물질이 들어간 음식을 먹어도 속이 불편하고, 피부가 안 좋아진다. 물론 몸에 안 좋은 것들이 들어간 정말 맛있는 음식을 모두 피하기는 어렵다. 그럴 때는 조금 먹고 불편해지는 것을 감내하는 편이다. 때론 내가 예민한 몸이라는 것이 너무 좌절될 때도 있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내 몸에 감사하며 살고 있다. 안 좋은 것에 예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먹거리를 찾게 되고, 인생 전체의 건강을 생각한다면 이런 면이 꽤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기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몸이 있어야 건강한 삶이 가능한 것이란 소신을 가지고 있다. 아기 이유식 때부터 그 소신을 가지고 좋은 식재료로 건강한 방법을 통해 요리했다. 요리는 어렵다. 집안일 중에 가장 고난도 일이다. 요리에 딸려오는 설거지는 더 힘들다. 요리로 인해 진이 다 빠진 뒤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차피 20년 동안 요리를 해줘야 한다면 이왕이면 최대한 빨리 노련해져야 한다 생각한다. 요리하는 자체가 어렵게 느껴지지 않을 때까지 열심히 노력해서 나중에는 술술술 요리를 하고 싶다는 꿈이 있다.


어제 읽은 요리 에세이에 이런 내용이 나왔다. 요리를 정해진 메뉴, 정해진 공식으로 만들려 하다 보면 평가가 뒤따르게 마련이고 요리에 대해서 즐길 수 없다고. 이 내용을 읽고 정신이 확 들었다. 재료를 앞에 두고 나의 상상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요리 과정을 즐기면서 요리했던 적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정해진 과정에 초점을 맞추어 요리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늘 노심초사하며 요리해와서 그리 지쳤었나 보다. 이 문장을 읽고, 오늘은 내 창의력을 발휘하여 요리해봤는데, 조금은 편안하게 요리를 할 수 있었다.


직접 요리를 해 먹는 일은 환경에도 이롭다. 포장 용기를 최대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유기농 재료로 요리를 해 먹는 일은 더 이롭다. 유기농 업체를 모두 믿을 수 없다며, 불신의 눈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많다. 물론 나 또한 유기농 업체를 완전히 믿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이렇게 이 땅에 유기농 농업을 지으려는 시도는 참 훌륭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내 돈이 내가 옳다 생각하는 일들에 투자되어야 한다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유기농 재료를 사는 것 자체가 그 사업에 투자를 하는 것이고, 유기농업이 자꾸만 발달해야 내 아이가 살 미래에도, 환경에도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


오늘 그분과 나누었던 대화의 또 다른 주제였던 발도르프 교육 또한 비슷한 맥락이다. 유기농이 아기의 몸을 이롭게 하듯, 발도르프 교육은 아기의 마음에 이롭다 생각한다. 어릴 때 최대한 자연과 친해지고, 많이 놀고, 이왕이면 직접 만든 장난감이나 나무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게 좋다고 믿는다. 매체를 보여주지 않고, 기계음을 멀리하고 선생님이 직접 노래를 불러준다는 것도 좋았다. 먹거리도 유기농, 무농약 먹거리를 주며, 인스턴트 간식을 주지 않는다 한다. 시골이라 그런 교육 기관을 찾기 어렵다 생각했는데, 오늘 이렇게 우연히 알게 된 것이 하나님 은혜 같다. 아이가 최대한 많이 놀며, 자연스럽게 커가길 바랬는데, 그런 내 마음에 부합하는 곳인 것 같아 기대가 되었다.


소신대로 살아가기가 참 힘든 세상이다.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세상, 최고만 존중하는 세상에서 느릿느릿 나만의 리듬을 찾고, 내 고유성을 스스로 존중하며 살아가기란 게 얼마나 어려운지. 내가 남에게 피해 주는 일도 없는데, 조금이라도 나와 다른 사람이 있으면 공격하기 바쁘다.


힘든 세상이라도 소신을 가지고 살고 싶다. 나만 옳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도 옳고, 너도 옳고, 모두 옳다. 각자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사는 것이다. 오늘의 만남은 그런 내 소신에 힘을 주었고, 외로움을 덜게 해주었다. 성경에는 철이 철을 날카롭게 한다는 말이 나온다. 친구가 친구의 삶을 더 훌륭히 만들어준다는 의미이다. 좋은 만남을 통해 살아갈 힘을 다시금 얻을 수 있어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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