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한다는 흔한 말

by 당신의 상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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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많이 하면 꼭 실수를 하게 되어있다. 그래서 신부님, 스님들 모두 묵언 수행을 하시고 또 옛날 선비들도 말씀을 아끼셨던 것이 아닐까. 꼭 드라마 속에서는 말 많은 푼수 캐릭터가 치명적인 비밀을 누설해서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영화나 소설 속에서도 말을 많이 해서 화를 부른 캐릭터가 가장 먼저 죽곤 한다.


여기, 실수 걱정 없이 말없는 사내가 한 명 있다. 한국인이라면 단박에 알아차릴 전형적인 경상도 스타일의 그 남자. 혹시 실수라도 할까 조심하는 것일까? 과묵한 입매는 꾹 다물어져 궁금증을 유발한다. 말쑥한 차림새, 우뚝하게 큰 키, 잰 걸음걸이가 똑 닮은 또 다른 사내가 있다. 말없는 사내의 아들이다. 사내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 그리고 사내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사람이 바로 이 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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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한다는 말은 너무나 흔해서 광고, 노래 가사에 숱하게 등장하고 심지어는 얼굴도 모르는 전화상담원은 “사랑합니다. 고객님.”으로 인사를 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이 사내들에게는 그 말이 흔한 법이 없다. 그런데 그 말이 사내들에게서 크게 들리는 것 같은 이유는 왜일까. 아버지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 누워 하늘을 함께 바라보았다. 같은 곳을 바라본다는 것은 곧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과 같아서, 소년의 마음을 채워주었다. 그 소년이 자라서 말썽을 부릴 때에도 사내는 세상에 대신 맞서 주었다. 여전히 입은 꾹 다물고 있었지만 소년은 사랑한다는 말을 들은 바나 다름이 없었다. 성인이 된 아들을 군대에 보내고 훈련소에서 말없이 안아줄 때 등을 토닥이는 손길에, 대학을 보내며 잘 다녀오너라 말하는 눈빛에 이미 담겨있는 말은 “사랑한다.” 임을 아들은 알았다.






“성아.” 하고 부르는 그 목소리에, 십 분이 채 넘지 않는 전화 통화 속 밥은 먹고 다니느냔 물음이, 대구에서 서울까지 직접 차를 몰고 단숨에 올라오는 그 발걸음도 모두 사랑한다는 흔한 말이 녹아있다. 어쩌면 말보다 더 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세상 그 어느 곳에 있어도 닿을 것이다. 그러니 말은 꼭 그렇게 중요하지도 않은 것이 된다. 말이 한정 짓지도 못할 만큼 커다란 사랑이 사내에게서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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