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상을 꾹꾹 짰는데, 그 즙에 권태가 나왔다.
월요일.
아침 식사부터 등원까지 하루의 1차 전투다. 다른 표현이 필요 없다. 두 아이에게 각자의 밥그릇을 주고, 먹게 한다. 매일 똑같은 실랑이. 자리에 앉아라, 네 손으로 떠먹어라.
물을 틀고, 씻긴다. 아이들이 손에 물을 맞으며 즐거워하는 동안, 나는 비벼야 할 곳을 비벼 준다. 칫솔로 이를 비비고, 비누와 물로 얼굴과 몸을 비비고. 수건으로 물기를 비비고. 로션으로 몸을 비벼 준다. 기저귀와 옷을 꿰어 입힌다. 웨건에 태우고 길을 나선다.
무사히 첫째를 등원시키고, 둘째와 집에서 평소처럼 뒹굴었다. 등원하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TV를 켜고, 내가 보고 싶은 걸 틀고, 음료를 마시고, 둘째가 돌아다니게 두고, 가끔 둘째의 행동에 말을 얹으며.
아이가 잠들면 한동안 껴안고 있다가 내려두고 설거지를 한다.
어머님께 연락이 왔다. 이번 주에 운동을 시작한다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느냐고. 아차, 주말에는 회원등록을 하고 올 생각이었는데, 외출하고 가족끼리 돌아다니며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느라 까먹었다. 미리 알려드린 대로 어머님은 그걸 기억하고 계셨고. 둘째를 봐주시려면 내 일정을 아셔야 하는데. 아직 상담도 가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더니 상담 가는 길에도 아이를 맡기려거든 편히 연락하라고 하셨다.
상담은 오후 6시로 잡혔다. 어머님께 부탁할 필요 없겠다. 저녁 준비 해 두고, 남편에게 아이들을 보고 있으라고 해야지.
화요일.
운동 첫날이다. 도구 없는 필라테스인데, 강사님이 수업을 시작하며 '나마스테'라고 인사했다. 목요일 오전에는 이 분이 요가 수업을 진행한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오랜만에 운동 수업을 들으니 재미있었다. 단순한 흥미가 생겨난 것을 넘어서, 지시에 따라 몸을 움직이는 과정 하나마다 몸에 생기가 새로이 돌고 마음에 희열이 차는 것이 느껴졌다. 마치고 나오는 길이 무척 가볍고 산뜻하고 좋았다. 육아 스트레스가 풀리네. 운동으로 정신적 도피가 가능하구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수업을 함께 들었던 사람이 나와 같은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그녀가 내게 먼저 말을 걸어 우리는 대화하게 되었다. 이러저러한 사람이라고 한다. 연락처를 교환했다. 이렇게 별안간 새로운 사람을 사귀기도 하는구나.
아기를 데리러 어머님댁에 갔다. 점심으로 상추비빔밥을 먹었다. 상큼하고 좋았다. 남편에게 사진으로 자랑했다.
-엥. 풀밖에 없잖아.
그에게는 먹히지 않는 자랑이었다.
어머님께 운동 첫날부터 친구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그래, 너무 빨리 친해지는 건 조심해야 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깊이 빠져들 필요 없어."
아, '깊이.'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들면 그만큼 깊은 골이 남는다.
수요일.
두 아이 모두 콧물이 심하다. 병원에 가야겠다.
채팅으로 예약시간을 정하고 보니 남편의 병원 일정과 겹쳤다. 남편이 자신의 일정을 조정했다.
어머님께서 첫째를 위해 개복숭아와 설탕을 조금 남겨두셨다. 지난번에 어린이집에서 매실청 담그기를 하던 날에 아이가 아파서 등원하지 못했다. 매실청 담그기를 못한 대신 집에서 개복숭아 효소 담그기를 해보자고 기회를 마련하신 것이다. 오늘 하원 후 할머니댁에서 하기로 했다.
둘째 점심 먹이기, 집 정리하기, 어머님이 둘째를 미리 데려가시면, 첫째는 하원 후 할머니댁에서 개복숭아 담그기, 우리 모두 시간 맞추어 병원에 가기. 오후가 바쁘다, 바빠.
막상 어머님댁에 도착한 후, 아이는 개복숭아나 설탕은 보여주는 대로 소리를 지르며 거절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놀이를 하겠다고 한다.
그래라.
어머님이 아쉬워하신다.
"병원 다녀오고 저녁 준비 하려면 힘들지 않겠니? 오징어가 있어 두루치기 해줄까 하는데."
나는 진료 후 병원 근처 식당을 찾아가 밥을 먹고 그 동네 근처를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다.
병원까지 가서 남편과 상의한 끝에,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약국에서 파는 아기용 간식을 최대한 쓸듯이 사서, 병원 가까운 곳에 아기의자 있는 식당을 갔다. 오랜만에 숯불에 갈비를 구워 먹었다. 첫째는 통제가 잘 안 되어 유튜브를 보여 주며 앉혀 놓고, 둘째는 아기 의자에서 벗어나려 할 때마다 먹을 것을 주어 달랬다. 그렇게 해 가면서 고기를 많이도 먹었다. 이 식사는 남편이 샀다.
아들이 좋아하는 버스를 타고, 집에 왔다.
"내 병원은 생각지 않고 병원 예약을 잡았지."
남편이 서운했나 보다.
"아까 낮에도 톡으로 미안하다 했잖아요. 그래도 내가 사과는 제때 잘하지 않아?"
"그렇긴 해."
"여보는 미안할 일에도 미안하다, 말을 않더라."
"난, 그런 말 잘 안 하지."
당당한 그의 자기주장.
미안한 날엔 미안하다고, 고마운 날엔 고맙다고, 수고한 날엔 수고했다고, 인사를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건데.
목요일.
운동 두 번째 날. 화요일에 통성명한 언니와 같이 듣기로 했다. 첫째 등원 후 둘째를 어머님께 맡기고 갔더니, 언니가 먼저 와서 내 자리와 매트를 미리 준비해 주셨다. 이날 운동도 보람찼다.
언니가 작은 종이가방에 사탕과 아기자기한 잡동사니를 넣어 나에게 주었다. 이렇게 받아도 되나, 싶은 생각인데 집에 과일이 많다며 나눠주겠다고 했다. 따라가서 얼떨결에 집 구경도 하고 수박과 복숭아를 얻어 왔다. 초면(?)에 이렇게 받기만 해도 되나 싶다. 시댁에서 농사지은 감자를 나눠드릴까 싶어 혹시 감자 좋아하시느냐고 물었다. 이미 많다고 바로 거절하신다.
운동 마치고 나면 10시 30분.
씻고 나서 어머님댁에 둘째를 보러 건너가면 자연스럽게 점심을 거기서 먹는다. 수박을 가지고 갔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첫째 하원시간이 되도록 어머님댁에 머물렀다. 출발하려는데, 어머님과 내 대화 사이에 정보 공백이 있다.
".. 하원하고, 여기로 올까요?"
"그래. 어제 오징어 칼집까지 다 내어 놓았어. 빨리 먹어야 하지 않겠니. 그렇지?"
오징어. 오징어를 식재료로 구입하고, 우리를 먹일 양까지 넉넉히 수량을 정하고, 기회가 되어 오징어 두루치기를 만들리라 계획하기까지 전적으로 어머님만의 생각과 의사결정이 아닌가. 어머님께서 칼집 낸 오징어를 우리 식구가 책임지고 먹어야 할 의무 같은 것은 없지 않은가. 경사진 길을 내려갔다가, 언덕을 따라 올라가 어린이집에 닿고, 아이를 데리고 언덕을 내려오고, 경사진 길을 또 오르면서 오징어는 대관절 무엇인가 생각해 본다.
남편이 예정에 없이 야근하게 되었다고 한다. 부장님의 자녀가 수술을 했는데, 병원에서 다른 것을 발견했다고 해 부장님 속이 속이 아닌 상황이라, 남편이 야근을 대신해 드리겠다고 제안하니, 부장님이 거절치 않으셨다고 한다. 남편이 그렇게 말한 게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이가 생떼를 부린다. 너나 나나 기분이 좋지 않으니 서로 조심하자, 고 윽박질렀다. 어머님은 내가 남편의 야근에 마음이 많이 상한 줄로 아신다. 어머님께서 오해하시게 내버려 두었다. 솔직해서 좋을 것 없고, 나는 사실 남편을 이해하고 있고, 남편은 내가 기분이 상했다 한들 왜 그러한지 짐작할 테니.
어머님이 아이들과 놀아주시는 동안, 나는 책을 읽었다.
그런 독서가 보람찬 것인지 잘 모르겠다.
오징어가 많이 남아, 어머님께서 싸 주셨다.
금요일.
화요일과 금요일은 첫째가 언어치료받으러 센터에 가는 날이다. 하원하고 한 시간 남짓을 카페에서 보내다, 센터에 가는 것이 우리 일과다. 그런 날은 어머님께서 세시부터 둘째를 봐주신다.
"저녁 먹으러 오지 않을래? 아범하고 상의해서 연락 주렴."
우리 집에도 먹을 게 있긴 한데.
아범에게 메시지를 보낸다. 처음 쓴 대로 안 보내고 고쳐 보낸다.
-어머님께서 저녁 먹으러 오라셔요.
-그래요? 알겠어요.
어머님댁에서 저녁을 먹는다. 오늘따라 나는 내가 왜 여기서 밥을 먹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먹는다. 먹고 나서 거실에 앉아 쉬었다. 남편이 스마트폰을 손에서 내려놓지 않다가 아버님께 한 소리 들었다.
"할아버지는 우리 태윤이, 하윤이가 있으면 전화기를 아예 안 꺼내지요. 그렇지요?"
남편이 잘못한 것이 맞다.
"날씨가 더워서 냉장고에 넣은 음식도 조심해야 해. 어제 가져간 오징어도, 오래되면 먹지 말고 버리렴."
"네."
어머님의 말씀이 옳다.
옳은 말로 채워지는 대화. 곧고, 옳은 이야기.
감사한 어머니. 잘 자라는 아이들. 가만히 있지 못하는 아이들.
모두 챙겨서 집으로 간다. 집에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한다. 청소, 정리, 씻기, 정리하기.
매일 바쁘게 굴러가는 하루. 남은 바쁜 일들. 해도 해도 결국 끝마치지 못할 것들.
이 밤 따라 그것들이 부쩍 지겹다. 문득 감정의 문이 열리고, 권태로움이 열린 문으로 쏟아진다. 지겹다. 어디로 가든 이 지겨움이 끝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