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발달을 두고
12월 21일 오전 9시.
내가 저장해 둔 알림이었다. 눈여겨본 정신과 병원. 남은 올해는 진료예약이 찼고, 새해 진료 예약은 이때부터 전화로만 받기 시작한다고 했다. 대학병원에서 소아정신과를 오래 맡은 분이 차린 병원이라 개원한 지는 얼마 안 되었어도 이미 유명세를 얻은 모양이다. 대학병원의 소아정신과는 꼭 매스컴에 등장하는 유명 의사가 아니라고 해도 2년 정도는 대기해야 한다. 그런데 그곳에서 진료하던 이가 개인병원을 차렸으니 오죽할까. 그러니 나도 전화 경쟁에 뛰어들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전날까지만 해도 예약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아침이 되어 마음은 또 오락가락했다.
아니, 오락가락할 마음이 없이 그냥 싸그리 까먹었다. 오전 10시, 아이들의 콧물 때문에 진료를 보러 일반 소아과에 가는데, 주말 오전 소아과는 늘 북새통을 이루기 때문에 예약을 하고도 대기순서가 밀리고 밀려 하염없이 기다려야 했다. 카페에 앉아 기다리는 동안 내 뇌는 잠시 쉬었다. 말이 쉬는 거지 어린애 키우는 부모들은 쉬어도 오감 중 하나가 반드시 아이의 행동을 향해 있으므로 푹 쉬는 것이 아니다! 정말이지 애 키우는 사람의 글을 읽을 때 쉰다는 말을 사전적이고 정상적인 휴식의 의미로 받아들이지 않기를 바란다. 혹시 당신이 어린아이를 키우는 사람이고, 지금 푹 쉬는 중이라고 생각하고 있더라도, 당신의 일부는 지금 아이를 위해 깨어 있고, 작동하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당신의 성별이 무엇이든 당신의 일부는 언제나 아이를 위해주고 있다. 각설하고,
아이들의 중이염 진료 때문에 정신과 진료 예약을 까먹었다. 내 일상에 일어난 일은 그게 다다.
물론 까먹었다고 해서 전화를 할 수 없었던 건 아니다. 예약은 지금이라도 전화를 걸면 할 수 있다. 비록 그게 새해 초 진료가 아닌 다가올 여름, 가을, 겨울의 진료라고 하더라도 상관없을 것이다. 다만
아이를 정말 소아정신과에 데려갈 것인가, 아닌가.
아직까지도 그것이 문제다.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 보라는 권유는, 소아과에서 이미 몇 번 받았다.
만 24개월이 되어 진행한 영유아발달검사. 문진표를 작성하는데 식습관은 그렇다 치고 언어와 신체능력 발달 관련 질문에는 우리 집에서 햇님이를 두고는 꿈도 못 꿔본 이야기들이 있었다.
아이가 두 단어를 연결한 문장을 만들 수 있고, '나, 너' 같은 대명사를 이해하느냐고? 기저귀를 가져오라는 심부름을 할 수 있느냐고? 가위를 사용할 수 있느냐고? 두 발을 한꺼번에 들어 뛸 수 있냐고?
우리 첫째 해님이는 두 돌이 되어서도 옹알이와 '엄마'밖에 하지 못했다. '엄마' 역시 넓은 범위의 옹알이었다. 나를 부르기 위해 '엄마'라고, 의미를 담은 발화를 한 적은 없었다. 옹알이 중에 '엄마, 엄맘맘마' 외에 다른 발음을 하는 일도 드물었다. 그런 내용을 말하니, 소아과 주치의는 엄마의 관찰이 중요하다는 당부를 하고, 자세한 검사를 꼭 받으라고 안내해 주셨다.
백일이 되어도 눈을 잘 마주치지 않고, 호명반응이 약해 몇 번이고 이름을 부르던 일이 생각났다. 최소 다섯 번은 불러야 고개를 슬쩍 돌리다 말고 자기 놀이에 다시 집중하던 해님이. 눈을 마주치려 하면 허공을 바라보던 해님이.
"아무 이상 없어. 내가 보기엔 해님이는, 그저 성격이 '시크'한 거야."
남편은 태연했고, 걱정하지 않았다. 그 단단한 태도 뒤로 내 두려움은 숨었다. 그럼에도 언어지연은 너무나 분명한 것이라 발달검사를 받으러 대학병원에 갔다.
"전형적인 느린 아이 패턴을 보이네요. 일단 언어치료 잘 받고, 어리니까 1년 후는 좀 그렇고 6개월 후에 봅시다."
'느린 아이'라. 그건 발달지연이나 발달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유하게 통칭하는 말이 아닌가. 나는 그 말이 무서웠다. 남편은 무서워하지 않았다. 그 단어를 처음 듣는 것 같았고, 무슨 뜻인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았다.
몇 달 후, 소아과 주치의는 아이가 치료를 잘 받는지 물었다. 나는 해님이의 상태와, 대학병원에서 겪은 일을 설명했다. 언어발달은 1년 정도 지연된 것으로 평가받았고, 소아정신과와 소아신경과의 협진을 받으라는 조언을 들었던 점. 대학병원의 소아정신과는 2년 정도 예약이 밀려 있고, 소아신경과 교수는 안식년을 앞두고 있어 검사에 열정이 없었던 점.
주치의는 애매함과 친절함이 뒤섞인 표정으로 다시 한번 당부했다.
엄마가 자세히 관찰하고, 필요하면 더 검사를 받아보라고.
의사가 왜 그렇게 의뭉스러운 표현을 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이것저것 물어보니 소아정신과의원을 추천해 주었다.
남편과 시어머니는 해님이를 믿었다. 굳건한 믿음이었다.
"나랑 놀다가, 글자 '하'를 가리키면서 '하마'라고 하더라니까. 난 해님이 걱정을 전혀 안 했어. 8개월인가, 그때, 내가 화장실에 가니 '하미'라고 나를 불렀거든. 그래서 말이 늦을 거라고는 생각도 안 했지."
내가 회사에 다니는 동안 아이의 영아기를 지켜 준 시어머니는 의사의 말에 좌절하려 하는 내 앞에서 해님이의 가능성을 열심히 증언하셨다.
해님이의 언어발달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남편과 시어머니의 믿음에 역행하는 의심이었다. 그래서 아이의 언어치료를 위해 정보를 찾고, 치료를 시작하고, 돈을 쓰기로 했을 때에도, 그 결정에 이르는 모든 과정은 동의받지 못하는 외로움 속이었다. 거기에 더 나아가 소아정신과까지 알아보려고 하는 건 나 역시 외롭고 힘들다. 대기가 필요한 진료라는 건 촉급을 다투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렇다면 그 오랜 대기를 지나는 동안 차차 나아질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판단을 보류하는 대신 조금 예민해졌다. 아이는 편식이 심하고, 또래 아이들보다 작고, 다른 아이들보다 말도 못 한다. 놀이를 혼자 한다고 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이에 대하여 조금 아쉬운 듯 말씀하시면 온 신경이 곤두서고, 내 마음대로 아이를 지도하지 못하게 하는 시어머니와 남편을 미워했다. 나는 남만 미워하지 않았다. 남을 미워하는 만큼 나를 미워했다. 나는 자기 혐오와 자아비판에는 특출나니까, 느리게 발달하는 아이는 때때로 양육에 소홀한 나에게 돌아온 성적표 같기도 했다. 해님이는 그런 면에서 불쌍한 아이였다. 엄마 품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 아이. 할머니와 아빠에게 정서적 애착을 형성했으나, 매일 밤이면 할머니와 떨어져 아빠라는 반쪽 애착에서 안정을 얻었을 아이. 그러므로 아침과 밤이 불안했을지도 모를, 아주 어리고 여렸던 아이. 아빠가 화장실만 가도 세상이 떠나가라 울던 아이. 엄마의 포옹으로는 불안을 떨칠 수 없던 아이. 엄마의 애정이 믿을 만하지 않았던 아이. 놀며 싱긋 웃다가도 엄마랑 눈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우던 아이.
한편으로는 느리게 자라는 아이를 남편네 집안의 양육 방식이 틀렸다는 신호라고도 생각했다. 물론 어머님이, 남편이, 선의로 그랬겠지만, 엄마로서 내가 판단하는 사사건건이 두 사람의 제재를 받으니, 때로는 아버님의 만류도 함께했으니. 아이의 느린 발달은 어머님과 남편 방식이 틀렸다는 반증 아니냐고 묻고 싶을 때도 있었다. 돌이 지나도록, 하지 말아야 할 행동에 대고 눈썹 한 번 굳히지를 않으니. 나는 아이가 충분히 알 만한 시기에 충분히 알려주지 않는다는 것이 못 견디게 싫었다. 아이는 자라고 있고, 알 수 있는데, 아직 때가 아니라는 말로 내 행동이 제재를 받을 때마다, 인식의 감옥에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내 아이가 배울 수 있는데, 왜 아직 아니라고 하는 거지? 그건 내 아이에 대한 일종의 불신은 아닌가?
해님이와 나 사이의 애착이 불안정한데도 나는 때때로 얼굴을 굳히고, 때로 성난 표정으로, 단호한 목소리로, 혹은 목소리를 높여서, 아기에게 반응했다. 나는 마음을 다해 다정할 때도 있었지만, 아니다 싶을 때는 아니라고 분명한 신호를 주려고 노력했다. 사실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해님이는 나의 성난 표정이, 단호한 목소리가, 소리를 지르는 것이, 싫거나 두려울 정도로, 그걸 피하기 위해 잘못된 행동을 생각하고 고민할 정도로,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
해님이가 나를 사랑하려면 내가 해님이에게 사랑을 충분히 쏟아줬어야 했다.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 점이 마음에 걸려서, 해님이를 향한 판단을 할 때는 늘 자신이 없었다.
"하지 말랬지. 엄마가 하지 말랬지." 쓰-읍. 으름장을 놓는 낮고 분명한 음성. 내가 아이에게 내는 것과 비슷한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그 낯선 아이 엄마는 어느 날의 나와 똑같은 모습으로 버스 안에 서 있었다. 몸에 두른 아기띠에 마냥 조그맣지는 않은 아이가 안겨 있었다. 그녀가 노려보는 쪽에는 큰애가 좌석에 앉아, 손에 닿을 듯 말듯한 버스 정차 버튼을 누를 듯 말 듯하며 엄마를 약 올리고 있었다. 그 분위기를 안다. 문제 삼을 만한 아이의 행동, 그 아이를 다루는 엄마. 승객들은 아닌 척하면서 아이와 엄마를 못마땅해하고, 시선의 공격을 받는 아이 엄마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아이를 지도하는 데에 열중하려 하겠지. 그날은 그 공기를 깨고 싶어져 말을 걸었다. '몇 살이에요?'
아이 둘을 안고 끌고 외출하는 일이 고되고, 버스 안의 냉랭한 시선 사이로 나와 대화한 것이 숨통이 트였는지, 그녀는 내게 아이에 대해 스스럼없이 말해 주었다. 아이는 나의 해님이보다 두어 살 많았고, ADHD 진단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 말라는 말에 아랑곳 않고 정차 버튼을 누르려 드는 게 문제행동인데, 어떤 경우에는 안 하고 얌전하지만 오늘은 무엇이 불안한지 자꾸 저런다고 했다. '이런 행동도 문제행동이라고 불러요? 그렇구나.'나는 전문가가 아니지만 불현듯 그 아이가 문제행동을 하는 거라는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아이는 엄마가 으름장을 놓아 가며 강한 감정을 담은 표현을 하는 걸 재미있어하는 듯했다. 정차 버튼을 정말로 누를 생각은 없으면서도, 누르고 싶은 듯, 누를 듯 팔을 뻗으며 엄마가 반응하는 걸 좋아하고 있는 듯했다.
'아이가 심심해서 그런가 봐요...'
'맞아요. 그런 것도 있을 거예요.'
그들과 헤어져 버스에서 내린 후 생각했다. 아무리 진단받은 아이라 해도 모든 행동이 의도 없는 것은 아니고, 모든 행동이 문제일 리 없다. 어떤 말로 아이를 진단한다는 행위가 아이의 행동에 대한 해석을, 아이를 보는 시선을 오히려 부정적인 방향으로 고정시키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무엇무엇한 것은 아닐까, 아이가 무엇무엇한 것은 아닐까. 나를 의심하고, 아이를 의심하고. 정보를 의심하고.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병원에도 가지 않았고, 아이를 향한 의심을 지우지도 못했다. 아무나 만나면 만나는 대로 호소하곤 했다.
우리 아이가 이러하고, 저러하여, 나는 걱정이라고.
자세히 들어준 사람들은 저마다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그렇게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괜찮다고 말하면 나도 그만하는 것이 좋을 텐데.
정차 버튼을 누르고 싶어 하던 그 아이를 똑같은 버스에서 다시 만났다. 저 아이도, 어쩌면.
'오늘은 장난 안 치네요.'
말을 걸었다. 둘째를 어딘가에 맡겼는지 홀가분한 몸으로 아이를 챙기여 애 엄마가 조금 밝게 대답했다.
'네, 오늘은 얌전해요.'
다시 살펴봐도 눈빛이 또렷한 아이였다. 문제행동이라니, 그저 조금 산만한 종류인 것에 불과한 것 아닐까.
'힘내, 너 문제아 아니야. 잘할 수 있어.'
나는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해 주고 돌아섰다.
그 말이야말로, 내가 내 아이에게 해 주어야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해님이, 너는 잘할 수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