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실성'은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성향과 관련된 성격 요소입니다. 해당 성향이 강한 사람은 목표지향적이며, 성취를 위해 성실히 노력합니다. 더불어 일상 속 다양한 유혹들에 잘 넘어가지 않고 충동을 통제합니다. '성실성'을 구성하는 요인에는 '자신감', '계획성', '책임감', '성취욕', '자제력' 그리고 '신중함'이 있습니다.
이 테스트에서 설명하는 '성실성'에 관한 설명은, 그 자체로 나에게 어마어마한 깨달음을 주었다. 그렇구나. 장기적 목표를 달성하려면 노력해야 하고, 그 노력하는 성향이 성실성으로 이어지는 거구나. 나는 매번 노력하지 않는 나 자신에게, 실천하지 않는 나 자신을 미워하고, 책망하고, 낮추는 데에 힘을 써왔다. 그러나 이 토막글이 아무렇지 않게 설명하는 성실성의 정의 덕분에 나의 자기 인식은 태도를 조금 바꿀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실천하지 못하고, 노력하지 못하고 정말 부족한 인간이다. 나는 게으르고, 무기력하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닐 수도 있다. 저혈압인지 당뇨 전조증상인지 뭔지, 아무튼 수시로 졸리고 힘이 안 난다. 나는 남편보다 민첩하지 못하고, 어머님만큼 섬세하지 못하다. 나는 몸이 느리고, 정신력이 나약하고, 느리고 나약해서 뭘 해도 부족하다.'
나는 나를 구구절절 싫어했다.
그런데 어쩌다 마주친 성격테스트가 나에게 향하는 나의 언어를 바꿔버렸다.
똑같은 나를 더 간단하게 바꿔 말할 수 있다.
나는 성실성이 부족하다! 나는 조금 불성실한 사람이다!
단지 그뿐이다!
이걸 하나의 발견이라고 부른다면, 우리 남편은 코웃음을 칠 것이다.
"뭐, 여보 같은 학생에 관해 생기부를 쓴다면 간단하게 불성실하다고 쓰면 되겠네. 글자 수를 늘리려면 여보처럼 쓰면 되고."
아마도 그렇게 말할 것 같다.
뭐, 누군가는 '불성실'이란 단어를 더 불쾌하게 여길지도. 나의 경우, 나라는 사람의 부정적인 면을 짧고 간단하게 말할 수 있게 되자, 이제껏 계속되던 자책과 자기 비하가 훨씬 줄었다. 나 자신을 대하는 태도에 오래도록 껴 있던 우울과 불안을 한 켜 걷어낸 느낌이다. 그리고 조금 다른 동기부여를 할 수 있게 됐다.
불성실하다는 단점은 성실해지려는 노력을 통해 나아질 수 있다! 이게 나에게 엄청난 희망을 주었다. 요즘 나오는 질 좋은 고농축 세제처럼, 이 한 방울의 희망은 희석해서 써도 나를 더 나은 삶으로 이끌어줄 것이다.
심지어 테스트 결과를 두고두고 읽는 것도 나에겐 도움이 되었다. 마치 건강검진 결과서를 읽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늘 정상이라고만 나오는 결과지를 읽으며 '내가 이런데도 정상이야? 아직도 정상이야?'라는 의구심을 가질 무렵 '간결절이 있군요. 내년에 더 자세한 검사를 받으세요.'라는 안내가 등장하자, '그럼 그렇지, 이렇게 수상한 내 몸이 어딘가는 이상이 있을 것 같았어!'라고 확인하는 것과 같은 시원함이었다.
어느 심리학 연구원이 최대한 담백하게 써 내려갔을 설명글에 나는 질척이며 빠져들었다. 내가 갖추고 싶던 성실이란 덕목을 무엇으로 구성하는지,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어떤 틀에 따라 진단하고 나니 영원한 난제처럼 보이던 나라는 문제가 이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얻은 것 같다.
그걸 읽으면서 나는 나에게 나를 들켰다. 그걸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자신감'은 평소 느끼는 유능감 정도를 뜻합니다.
나는 나를 유능하다고도 생각하고, 그다지 유능하지 않다고도 생각한다. 오락가락한다.
-'계획성'은 일을 계획에 맞춰 꼼꼼히 처리하려는 경향을 의미합니다.
나는 꼼꼼한 것을 좋아하지만 계획에 맞추지는 못한다.
-'책임감'은 자신에게 맡겨진 의무를 중시하는 정도를 뜻합니다.
나의 책임감은 적당히 높다.
-'성취욕'은 목표를 높이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해 집중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의외였다. 나의 성취욕 점수는 꽤 높다. 나는 내가 오래전에 자신감을 잃은 만큼 성취욕도 거의 죽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제력'은 눈앞의 과제에 집중하는 정도를 의미합니다.
나는 자제력 점수가 턱없이 낮다. 하고자 한 일이 있어도 다른 일에 주의를 빼앗기고, 그래서 원래 하고자 한 일을 실제로 시작하기까지 오래 걸리기도 한다. 화장실 청소를 시작하기 전에 변기에 앉아서 페이커의 근황을 보느라고 시간을 흘려보낼 때도 있다.
-'신중함'은 행동하기 전 얼마만큼 생각하는지를 의미합니다.
문서를 만들어야 할 때 나는 너무나 신중하다. 3일 정도는 머릿속에서 고민하고, 다음 3일 정도는 자료를 검색하고, 어찌어찌 문서를 만들면 팀장님에게 보여드리기 전에 또 하루 정도는 파일을 묵혀 둔다. 이게 내 신중함이다! 신중함이 성실함을 구성하다니 그런 생각은 미처 못 해봤다.
결과지를 읽을수록 나는 웃기는 인간이었다. 성취욕 81점, 자제력 19점. 이건 정말 누운 채로 위대해지고 싶어 하는 인간 그 자체가 아닌가. 하지만 그게 바로 나 맞지 않은가! 할 말이 없다. 내가 얼마나 우스운 사람인지를 저렇게 평범하고 단정한 말들로 표현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안녕하세요, 저는 심그미입니다. 저는 누워있고 싶지만, 동시에 돈이 아주 많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숨만 쉬어도 기특하다고 칭찬받는 삶을 살고 싶어요."
이렇게 말하면 한심해 보이겠지만,
"안녕하세요, 저는 심그미입니다. 저는 꽤 유능하고, 책임감과 성취욕이 높으며, 매사에 신중한 편입니다. 그러나 계획을 세워 실천하는 면이 부족하고, 때때로 집중력이 떨어질 때가 있어 주변의 도움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기소개서 심사 정도는 얼추 통과할 수 있을 것 같다. 뭐랄까, 좀 쓸만한 사회인처럼 보이잖아.
미루는 습관을 고치기 위한 행동 쪼개기,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변명... 내게는 통하지 않았던 시답잖은 해결책을 이론적으로만 상기하며 몸부림치는 것을 그만뒀다. 그리고 '마음에 안 드는 내 행동 바꾸기'라는 목표를 버리고 '성실한 사람이 되자'라고 다짐하니 마음이 한결 좋아졌다. 부정적인 나를 자꾸 버리고 싶어 하는 부정적인 태도보다, 아름다운 덕목 하나를 내 것으로 얻자는 생각이 훨씬 밝고 좋다. 그때부터는 싫은 마음 없이 나의 성실함과 불성실함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때때로 사람들에게 성격 검사를 소개한다. 대화의 소재가 떨어졌을 때 꺼내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점수가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구경해 보면 정말이지 천차만별이다. 나에게 가장 높은 점수는 우울과 불안인데, 남편에게 가장 높은 점수는 명랑함이고, 우울은 아예 점수가 존재하지도 않는다. 친한 동료들도 전부 제각각이다.
정말 정말 심심할 때, 혹은 지금 까다로운 보고서를 만들기 전 잠시 딴생각을 하고 싶을 때, 카카오톡 어플의 '더보기>같이가치>마음날씨' 메뉴에서 성격 테스트를 해 보라. 권위 있는 검사도 아니고, 오래 걸리지도 않지만, 생각보다 나 자신에 관한 많은 단어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말입니다, 내가 애 둘을 기르는 워킹맘인데, 내가 성실하지 않다고 하면 도대체 어떤 사람을 성실하다고 할 수 있는가? 내가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힘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침마다 아이들 먹이고 씻기고 입히는 일이란 게, 하려면 누구나 할 수는 있어도 그렇게 마냥 할 만한 일은 또 아니란 말이지. 아니 근데 달리 생각을 해 보면, 내가 해내고 싶다고 마음먹은 일들을 제 때에 끝낸 적이 별로 없단 말이야. 첫째가 돌 될 무렵에 겨울맞이 준비를 한답시고 아기 모자용 털실을 사놓았는데, 아이가 세 돌이 지난 여태까지도 털실은 그대로 털실이지 모자가 되지는 못했잖아? 그럼 그 털실이 여전히 털실인 것은 누구 탓이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진짜 막 아주 불성실한 건 또 아니지 않나? 아, 억울하면 검사를 다시 해 보면 되잖아! 그래서 결과가 달라지면.... (어쩌고저쩌고).... (중략).....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