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설고 다정한

도시, 사람, 시간

by 심그미

어느 날 공무원 업무포털에 그런 자유로운 게시물이 올라왔다. 우리 시의 주무관이 우리 시(市)에 관한 글을 써서 에세이집을 출간했다는 소식.


가끔 누군가가 책을 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막연히 부러웠다. 나는 쓸 것도 없으면서 늘 쓰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책의 서문을 모 박사님이 썼다는 대목에서는 본격적으로 부러웠다. 나는 바로 그 박사님이 지역성에 관해 쓴 책을 읽고 있었다. 지방공무원이 본인이 사는 지방에 관하여 쓴 글이, 지역성을 다루는 연구자의 서문과 함께 출간되다니. 마치 장인이 만든 가죽 제품을 장인이 만든 포장지로 감쌌다는 말 같다. 얼마나 생생한 글일까 궁금했지만 바로 책을 사지는 않았다. 책을 읽지 않는 생활은 오래되었고 읽을 책은 많이 쌓여있으므로. 그러나 북토크를 알리는 게시물을 두 번째 클릭하면서 결국 신청 문자를 보냈다. 스마트폰으로 책을 주문하면서 양면적인 생각이 들었다. 아이고야, 일을 쳤구나. 북토크 신청이라니, 안 해본 짓을. 하지만 손가락 몇 번이면 되는, 이 쉬운 일을.


책은 얇았지만 내 독서 근력이 워낙 약한 탓에 읽는 데 며칠 걸렸다. 북토크 당일 점심시간에도 빵집에서 샌드위치와 커피를 두고 책을 읽었다. 작가님은 교수님이 아니지만, 책을 끝까지 읽고 북토크에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이 과제 제출 직전의 긴장감처럼 다가왔다. 퇴근 후 공복인 채로 북토크에 참석하면 배에서 실례가 되는 소리라도 나올까 봐, 혹은 허기로 인한 말실수라도 할까 봐 분식집에 들러 떡볶이에 김밥을 야무지게 먹고 부랴부랴 발걸음을 재촉했다. 가는 길 내내 제법 설렜다. 약속장소인 '바베트의 만찬' 앞에 다다를 때는 꽤 긴장했다. 사람들이 시작도 하기 전에 도란도란 대화하며 분위기가 좋으면 어떡하지, 혹은 다들 시작만을 기다리며 멀뚱멀뚱 어색하고 고요하게 앉아만 있으면 어떡하지. 나는 분위기가 좋을 때 어색하게 고요할 것 같고, 어색하고 고요할 때 실없는 소리를 할 것 같은데.


다행히 서점 안은 적당한 대화와 적당한 산만함으로 채워져 있었다. 나는 음료를 주문한 뒤 얌전히 앉는 데 성공했다. 다른 이들의 대화를 엿듣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멀뚱멀뚱하다 보니 작가님과 조금 말을 섞기도 하고, 음료가 나와 목을 축이기도 했다. 작가님이 북토크 시작 직전에, 다들 저녁을 챙기고 오셨느냐고, 본인은 그럴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먹자고 준비했다며 빵을 권했다. 아이고, 두둑이 준비한 나의 포만감이 미안해졌다.


대화를 시작하자 손에 땀이 날 정도로 축축했던 내 긴장감은 곧 사라졌다. 여기 참석해 만들어진 우리는 자기소개부터 짧지 않았다. 꽤나 열린 마음으로 대화에 뛰어든 사람들이 이 책을 계기로 자신의 이야기를 두런두런 나눈다는 사실 속에 내가 있었다. 책에 대한 이야기도, 책에서 주제로 삼은 대전에 대한 이야기도, 작가님 개인의 여정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이야기도, 그리고 이 북토크의 숨은 주제인가 싶을 정도로 자주 회자되는, '바베트의 만찬'이라는 서점에 대한 애정 고백도. 다 재미있는 이야기였다. 책 읽기를 좋아하는 사람, 책보다 작가님과의 인연이 계기가 되어 참석한 사람, 그냥 이 서점을 좋아해서 여기에 열리는 행사에 참석한 사람 등 몇 명 안 모인 것 같았는데 주고받는 이야기가 다양하고 풍부했다. 나는 이 도시를 얼마나 납작하게 바라보았던가. 나는 이 도시에서 내 삶을 얼마나 납작하게 꾸려왔던가. 이렇게 한 개인이 이 도시에 관한 입체적인 삶을 살며 글을 쓸 수 있고, 이 글 앞에 모인 이 도시의 사람들이 이렇게 입체적인 대화를 만날 수가 있는데. 나는 점점 신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독서가 그 책을 지은이와의 조우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책을 읽는 내내 느꼈다. 이 사람은 나와 다른 사람이구나. 공무원이 된 후 결혼했는데 축의금을 사양하다니. 난 공무원이 되기 전에 결혼한 사실을 아까워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이 사람은 정말 나와는 다르다. 책을 사러 가서 책방 사장님과 한 시간이 넘도록 대화할 수 있다니. 우연히 흥이 붙어서가 아니라 매번이라니. 그냥 새로운 사람이다. 나와 달리 어디를 가든 그곳에서 만난 사람과 사람 대 사람이 되는 방법을 아는 사람. 결혼을 자기부정이나 자기전복을 도모해서가 아니라 자기긍정과 확장, 융합으로 해내는 사람. 공간과 관계 맺어 장소를 이루어내는 사람. 삶을 장소로 만들어내는 사람.

그리고 그의 북토크 시간 역시 낯설고 산만하면서 다정하고 흥겨웠다. 이렇게 투명한 마음으로 내 이야기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너무 오랜만에 겪었다.


'낯설고 다정한 나의 도시'

과연 대전만이 그러한 곳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아닐 테다. 이 도시를 낯설고 다정하게 만든 건 작가님 자신이 낯설게 할 줄 알며 다정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았다면 북토크의 시간도 낯설고 다정하게 흘러가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이 사람은 나와 다르구나, 싶었지만 그로 인해 위화감을 느끼지 않았다. 오히려 이토록 다른 사람을 이 사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이것이 독서의 소중한 이유가 된다는 사실에, 조금 감격했다. 나는 책 한 권 읽었다고 그를 마구 사랑하려는 게 아니다. 그 책의 무게만큼, 그만큼 그에게, 그의 도시에게 다정해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작가님이 책에 소개한 정림동의 제과점이 있다. 나는 조만간 그곳에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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