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맘카페의 고민글과 댓글을 열심히 읽어본다. 보아하니 아이가 미취학아동일 때 이혼율이 매우 높고, 그 위기를 지나면 불륜과 돈 문제가 아닌 한 이혼까지 가야 할 정도로 큰 문제가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어린아이를 키우는 동안 부부 사이에 여러 가지 일들이 일어난다는 말일 테지.
나야말로 그 고비를 지나는가 보다. 요즘은 집에 일찍 가고 싶지 않다. 그럼에도 퇴근하면 곧장 집에 간다. 집에 간들 나를 맞아주는 딸아이와 인사를 하고 나면 달리 다른 식구와 나눌 말이 없다. 기껏해야 '밥 먹어라', '잘 먹겠다', '누가 응가를 했다' 따위의 짧고, 꼭 필요한 말들, 뿐이다. 일터에서 만나는 사람들보다 못한 대화. 집은 가정의 경영이라는 업무의 장. 나는 모모 아파트 몇 동 몇 호라는 무대에서 역할극을 하고 있을 뿐인 듯하다.
이런 것이 삶과 결혼생활의 진실인가? 아이를 재우려 일찍 누웠다 깜박 함께 잠에 들고, 늦은 밤에 깨어나 미처 지우지 못한 화장을 지우며 생각한다. 이런 게 결혼생활인가? 남편이 끼니를 준비하고 아이들을 씻기는 수고를 열심히 했고, 대신 아이들이 잠들면 방문을 닫고 게임을 한다. 나는 남편이 차려준 저녁을 먹고 편안한 대신 아이들이 씻는 동안 설거지를 한다. 초저녁에 풋잠을 자다 깬 몸으로 어질러진 거실을 치운다. 꽤나 철저한 분업인가. 이 정도면 괜찮은 건가. 누가 뭐랄 것 없이 스스로 필요한 일을 하고, 남은 시간에 나머지 일을 마무리하는, 제법 조화로운 협업인가.
때때로 밤에 각자 다른 공간에서 각기 다른 활동-그는 주로 게임을 하고, 나는 산발적으로 독서나 글쓰기나 뜨개질을 하고 자주 유튜브를 본다-을 한다. 각자 자기가 좋아하는 영역 속을 유영하며 보내는 시간. 그러므로 작고 소중한 자유의 시간. 우리는 만나지 않는다. 어쩌다가 작은 집에서 잠시 마주칠 때면, 짧은 인사에도 점점 온기가 없어져 간다.
한때 그의 게임하는 시간을 방해해 가면서 그 옆에서 끝없이 떠들고 싶어 하던 때가 있었다.
그러면 더 많이 서로 이해를 주고받을 수 있는 줄로 알았다. 그래야 한다고도 생각했던 것 같다.
결혼생활은 부부라고 결의한 두 사람의 동업이다. 우리는 이 가정을 함께 창업했고, 창업한 가정을 계속 경영해 나갈 책임이 있다. 이 가정에서 태동하고 성장하는 생명을 지원할 책임이 있다. 우리는 책임을 함께 하는 사이다.
사랑이 마르고 욕정이 없는 자리가 되어 있다 하더라도 책임이 무한하다.
돈과 섹스의 교환 없이 이 책임만을 함께 주고받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의리가 생긴다는 건가. 서로의 영혼을 돌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책임지는 일은 끊임없다. 퇴사가 없는 책임.
그래서 20년, 30년 후에 서로를 짠하게 돌아본다는 걸까.
30년 후, 나의 모습을 그려볼 때, 그의 옆에서 손을 잡고 마주 보며 웃고 있을까?
30년 후, 그의 모습은, 나를 바라보며 웃을까?
우리는 부모로서 유효한 만큼 부부로서도 유효한가?
나 혼자 하는 생각일 수도 있다. 우뚝 버티는 남편에게는 어떤 위기도 없고, 오로지 나만 이 무대에 괴리감을 느끼고 있다고. 역할극은 없으며, 내가 의심하는 삶의 진실과 실제는 사실 숨어있는 게 아니고 바로 여기에 있는 게 맞을 지도. 나의 의심과 불안이 문제라고 불릴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오로지 내 마음에 달린 것으로, 내가 새로 마음먹으면 전부 괜찮아지는 것. 그럴지도 모른다.
이루고 싶은 삶의 모습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앞으로 이룰 가능성이 점점 줄어든다는 것이 막연하게 느껴질 때 불안을 느낀다.
이제껏 이뤄온 삶이 어쩌면 나보다 남에 잠식되어 있었고, 오늘도 그러했다는 생각이 드는 날에는 권태롭고 우울해진다.
주체적이지 않은 나에 우울하고, 순간에 더 만족스러운 판단을 하지 못했던 나를 떠올리며 우울하다. 그때그때 더 싸우지 않은 나, 더 다투지 않는 우리.
이해를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인식하는 대신, 오가는 말 사이에서 시비 걸지 않는 선에서 중도의 지점을 찾아본다. 그것이 화해라고 얼버무리고, 그다음 날을 산다. 아이들 앞에서 태연한 얼굴로. 아이를 보고 웃는 것이 너무나 쉽고 당연한 것과 달리, 부부가 서로를 보고 웃는 것이 갈수록 낯설고 어색해진다.
어떤 대화를 해도, 그게 더 나은 이해에 도달하지 못하고 차고 냉정하게 합의점을 찾았을 뿐일 때가 있다. 그게 더 나은 관계로의 진전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지면 권태나 우울은 모두 죽는다. 그런 감정이 사라진 깨끗한 자리에, 상대에게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고 상대방을 궁금해하지도 않는 죽은 마음이 남는다.
내 자리는 깨끗한 걸까. 마음은 죽었을까. 혹은 책임 사이에서 마음이 누워서 쉬고 있을까? 나는 너무 많이 들여다보는 나 자신을 싫어하기에, 잘 들여다보지 않는 남편을 좋아했었다. 그러나 이제 들여다보지 않는 듯한 그는 나와 너무 다른 종류라는 것을 알겠다. 나는 들여다보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다.
내 마음은 지금 뭘 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