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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an 02. 2024

주객전도(主客顚倒):사장과 알바생이 바뀌다

나랑 3년을 함께한 우리 알바생 윤숙 씨. 

우리 편의점을 이용하는 고객들은 나를 알바생이라 생각하고, 우리 윤숙 씨를 사장님으로 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내가 워낙 나이에 걸맞지 않게 동안(?) 외모를 하고 있는 데다, 옷차림도 캐주얼하게 입고 있다 보니 나를 사장으로 생각하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지금은 시간이 흘러 우리 관계가 들통(?) 나서 어떤 사이인지 알고 있다만, 처음에는 대부분 윤숙 씨를 사장님으로, 나를 알바생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다. 가끔 내가 알바생인줄 알고 무례하게 대했다가 명찰을 보고 갑자기 태도를 바꾸는 사람의 처세술을 배우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 관계를 반대로 해석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둘의 행동 차이 때문이다. 창피한 얘기지만 사장인 나는 사장답게 행동하지 못하고, 알바생인 그녀는 사장처럼 행동한다. 여기서 '사장처럼 행동한다'라는 의미는 긍정적인 의미이다. 나는 내성적인 성격 탓에 손님들에게 소극적으로 행동한다. 인사도 크게 하지 않고, 잘 웃지도 않고, 손님들과 잘 어울리지를 못한다.  


반면 그녀는 굉장히 활발한 성격에 에너지가 넘친다. 목소리도 커서 인사도 시원시원하게 하고, 손님들과 농담도 잘 주고받는다. 내가 있을 때 손님들 반응과 윤숙 씨가 있을 때 손님 반응이 180도로 바뀐다. '저 양반이 저렇게 잘 웃고 말도 잘했나?' 싶을 정도로 그녀 앞에선 모든 손님들이 무장해제다. 내가 손님이었어도 그녀를 사장으로 생각하지 나를 사장으로 생각하진 않을 것 같다. 윤숙 씨의 활발한 성격 때문에 윤숙 씨 팬들이 생겨 매출도 올랐다. 그녀의 에너지 넘치는 성격이 너무 부러워서 따라 해 보려고 여러 번 시도해 봤는데, 나는 잘 안되더라.... (이놈의 소극적인 성격...)

 우리 윤숙 씨는 내게 은인 같은 존재이다. 2020년 내가 결혼을 준비할 때 그녀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혼식조차 제대로 치르지 못했을 것이고, 2021년 겨울, 갑자기 맹장이 터졌을 때 그녀가 없었다면... 그 뒤는 생각하고 싶지도 않다. 그녀와 함께 일하는 동안 크고 작은 일에서 내가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녀가 없었다면 이 편의점을 어떻게 운영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녀가 편의점에 미친 영향력이 너무 크다.

 윤숙 씨는 항상 본인 근무시간보다 한 시간에서 삼십 분가량을 일찍 왔다. 왜 일찍 왔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항상 "집에 있기 답답해서 일찍 왔다" 혹은 "그냥 좀 일찍 왔다"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나중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그녀의 속 사정을 들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가 근무시간보다 일찍 온 이유는 "젊은 사람이 편의점에 하루 종일 있으면 얼마나 답답할까?라는 생각을 했고, 조금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라는 의미로 일찍 왔다고 했다. 세상에 이런 알바가 어디에 있을까? 

일찍 온 시간만큼 시급을 더 드리려 해도 그녀는 한사코 거부를 했다. 

 또 그녀는 편의점에 필요한 비품들을 직접 사 왔다. 예를 들어 박스테이프가 필요하거나 매직펜이 필요하거나, 행주가 필요하거나 하면 나에게 얘기하지 않고 본인 사비로 직접 사 왔다. 나는 너무 미안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얘기를 하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거 얼마나 한다고 이런 거까지 얘기하냐며" 본인 사비로 비품들을 사 왔다. 


한 번은 큰 박스를 가지고 온 적이 있었다. 박스 안에는 핸드청소기가 들어있었다. 담배 진열장 안에 날벌레 시체들이 많다며 청소한다고 직접 청소기를 사 온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재활용품 수거함도 직접 사 왔고, 수거함에 씌워 놓을 비닐도 직접 사 왔다. 이쯤 되면 사람들이 "너는 편의점에서 뭐 하고 있냐?"라고 물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누가 사장이고 누가 알바인지.. 그녀를 보고 있자면 나 자신이 너무 부끄럽다.

 윤숙 씨는 항상 에너지가 넘쳤고 밝았다. 윤숙 씨는 내게 서비스업이 자신에게 잘 맞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야 본인 적성에 맞는 일을 찾은 거 마냥 항상 즐겁고 신나게 일했다. 그녀의 행동이 전혀 가식처럼 느껴지지 않았고, 진심처럼 느껴졌다. 그런 그녀를 손님들은 너무 좋아했다. 심지어 어린아이들까지도 그녀를 좋아했다. 내가 있을 때와는 손님들의 표정, 말투, 행동이 너무 다르다. 그런 점이 서운하면서 '왜 내 성격은 소극적일까'하는 자책감 아닌 자책감도 든다. 윤숙 씨를 보면서 나 자신을 많이 반성했고, 더 노력하자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타고난 성격 탓인지 그녀처럼 하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일해도 괜찮구나... 아니 이렇게 일해야 되는구나...

일할 때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하라 얘기한다. "주인이 아닌데 어떻게 주인의식을 가져요?"라고 나는 반문할 거다.


그런데 윤숙 씨를 보며, 한 번쯤은 내가 주인이다 생각하고 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본인 점포였다면 얼마나 잘 됐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저 정도는 해야 성과가 나는구나라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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