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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an 04. 2024

어른이 된다는 것

어른: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몇 달 전 근무자를 급하게 구했다. 목요일, 금요일 이틀간 오후 7시부터 11시까지 4시간 일하는 조건이었다. 62세 중년 여성분이 지원을 했다. 체구가 작고 가냘픈 분이었다. 긴 머리카락에 흰머리가 눈에 띌 정도로 듬성듬성 많았다. 목소리도 소곤소곤 들릴락 말락 작았다. 첫인상이 썩 좋지는 않았다. 

'과연 이 분이 일을 하실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력서를 보니 편의점에서 3년 반 정도 일을 하셨다. 편의점을 운영할 생각을 가지고 계셨는데, 코로나가 장기화되면서 잠시 보류 중이라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해보니 나랑 성향도 비슷한 거 같고, 편의점 일을 오래 해서 그런지 업무에 대해 잘 알고 계셨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첫인상과는 다르게 꼼꼼하게 잘하실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부터 같이 해보자고 얘기했다.



 그분은 꼼꼼하게 일을 잘하셨다. 특별히 교육할 것도 없었다. 연륜과 경력자에 짬바(?)가 일하는 곳곳에서 묻어났다. 그분은 편의점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도 본인이 운영을 해보려고 했기 때문에 그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에게 본인이 상가에 점포를 하나 가지고 있고 그곳에서 월세를 받고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분과 대화를 하면 할수록 부동산에 관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부동산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데...) 


그리고 대화를 하면 할수록 왠지 모르게 '우리 편의점에 오래 있을 사람이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내 촉이 그렇게 좋은지 나는 모르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일한 지 3주째 되는 날 본인이 들어야 될 교육이 있어서 다다음 주부터는 목요일만  나올 수 있다고 일종의 통보를 했다. 일단 알겠다고 대답했다.



어떻게 할까 고민을 했다. 금요일만 사람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고, 주 5일 동안 너무 많은 근무자가 있어도 관리하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았다. 내 상황을 얘기드리고, 근무자를 다시 구하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주에, 갑자기 교육이 취소돼서 본인이 원래대로 목, 금 다 하겠다고 얘기했다.

사람 일하는 게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쉬운 일인가... 나는 몇 날 며칠을 고민했는데.. 당장 사람을 구할 수 없어 나는 그렇게 하라고 했다. 아니 오히려 감사하다고 잘 부탁한다고 했다.(어떤 자영업을 막론하고 요즘엔 직원이 갑 중에 갑이다)


 

근무를 다시 시작했지만 마음 한구석에 계속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인지 그분이 오시면 나도 모르게 뭔가 마음이 불편했다. 근무교대를 할 때면 퇴근한다는 기쁨보다는 왠지 모를 불안감이 계속 내 머릿속을 휘저었다. 



역시나 내 느낌은 맞았다. 불안감으로 한 달 정도를 보내고 있을 무렵, 띠리링 장문의 문자가 한통 날아왔다. 본인이 며칠 전부터 허리가 계속 아팠는데 낫지를 않아 더 이상 일을 못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출근 이틀을 남겨놓고 보내온 문자였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예상이 현실이 되니 화가 났다.  

"나보다 인생 경험도 많은 분이 왜 그럴까?" 

"살아온 세월이 길다고 다 똑같은 어른은 아니구나"

"아파서 그러니 이해는 한다만 그래도 전화라도 한통 해주면 좋았을 텐데.. 문자로 일방적인 통보라 기분이 좋지는 않네"

"아르바이트는 이렇게 쉽게 퇴사의사를 보내도 되나?"



아프다는데 내가 뭐라 하겠는가? 아프다니 왠지 전화는 한통 드려야 될 것 같았다. 

"몸 관리 잘하시고, 건강하세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좀처럼 화가 가시질 않았다. 



우리는 매달 10일에 급여를 정산하는데 며칠 전 급여 정산 날이었다. 노동법상 1년 계약 시, 3개월간은 수습 기간으로 간주하여 급여의 90%를 지급할 수 있게 돼있다. 나는 그 10%를 제하고 주는 건 싫어서 그냥 다 준다. 그리고 근무자 실수로 인해 우리 점포에 금전적 손해가 있어도 나는 절대 급여에서 제하고 주지 않는다. 그 또한 내가 당연히 감수해야 할 몫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급여 정산에 내 감정을 듬뿍 실었다. 근로계약서에 명시한 대로 모두 이행했다. 급여의 90%만 지급했고, 근무자 실수로 인해 발생한 금전적 손실도 제하고 정산했다. 


 

그리고 어제 한 통의 문자를 받았다.


"xxx이에요. 급여 확인했어요 감사합니다"

 "근무하는 동안 감사했고, 미안했어요."

"앞으로 하시는 일 승승장구하길 바라요"



커피 쿠폰과 함께 내게 이런 메시지를 보내왔다. 



메시지를 보는 순간 얼굴이 화끈거리며, 나 자신이 부끄럽고 창피했다.

"내가 이렇게 그릇이 작은 사람인가?" 



그리곤 문득 "어른"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나는 내 위치에 어울리는 행동을 한 "어른"의 모습이었을까?



조금 더 직급에 걸맞은 대인배에 모습을 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xx 씨 급여는 정산해서 보내드렸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생 많으셨고, 감사했습니다.

건강 빨리 회복하길 바랄게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네었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조금 더 성숙한 어른의 모습에 한발짝 가까워지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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