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가 되면 주기적으로 그 녀석(?)이 찾아온다. 카운터에 서서 바코드를 찍고 있을 때, 고무장갑을 끼고 설거지를 하고 있을 때, 손님이 지나간 자리를 걸레로 닦고 있을 때. 그 녀석이 불쑥 찾아와 내 머릿속을 어지럽혀 놓고 간다. 그 녀석에 정체를 한 단어로 정의할 수는 없다. 그냥 내 안에 잠재돼 있는 불안, 분노, 짜증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이번 주도 열심히 해보자!’라고 마음을 먹고 열심히 하다가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그 녀석 때문에 가끔 우울해진다.
‘편의점 언제까지 해야 되지?’ ‘이 안에서 내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 ‘편의점 해서 먹고살 수 있을까?’
주로 이런 생각들이 내 마음을 힘들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미래에 대한 불안함을 가지고 있고, 때론 우울해지기도 하고, 어떤 상황에 대해 분노와 짜증이 나기도 한다. 나는 이런 마음이 들 때마다 타인과 비교를 통해 마음에 안정을 찾으려 했다. 카운터에 서서 바코드를 찍으며 ‘아 언제까지 이걸 하고 있어야 되나’라는 마음이 들 때, 안전모를 쓰고 온몸에 먼지를 뒤집어쓴 현장 근로자를 보며
‘그래.. 이렇게 추운 날(혹은 더운 날) 먼지 풀풀 날리는 위험한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도 있는데 그에 비하면 나는 편하게 일하는 거지’
아니면, ‘일찍부터 나오셔서 일하시는 이모님도 있는데, 그래도 젊은 나이에 사장 소리 들어가며 일할 수 있는 걸 감사하게 생각하자’
이렇게 비교를 통해 마음을 안정시켰다
“남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지 마라” -법륜스님-
나는 다른 사람의 비교를 통해 내 마음에 안정과 행복을 찾으려 했다. 그리고 나와 비교되는 대상은 나보다 상황이 안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법륜스님의 말씀을 듣고 '내가 굉장히 오만한 사람이었구나'라는 걸 느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 그 누구도 본인만에 잣대로 상대방을 평가해서는 안 된다. 나는 비교 대상을 나보다 낮은 사람으로 여기고, 내 생각으로 그들을 평가했다. 그리고 내가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라 착각하며 그 안에서 나를 행복한 사람으로 치부하고자 했다. 이게 얼마나 어리석은, 오만한 생각인가..
이 세상은 모든 것이 상대적이다. 누군가 돈을 많이 벌게 되면, 누군가는 그만큼 돈을 적게 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있으면 누군가는 그 권력에 통제받게 된다. 내가 누군가 보다 처한 상황이 낫다고 생각된다면, 반면 그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나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 사람들과 비교를 통해 위안받고 행복을 찾는 것은 그들의 힘듦 위에 내 행복을 쌓는 것과 같다. 그러니 그들의 힘듦에 빗대어 위로받으려 하면 안 된다.
어묵 조리기에 잔뜩 묻어 있는 기름때를 철 수세미로 벅벅 닦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났다.
‘그럼 왜 타인과 비교해서 내 마음의 안정과 행복을 찾으면 안 될까? 그것이 그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니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 것도 아닌데 말이야’
그 이유는 내 마음의 해결책을 자꾸 외부에서 찾게 되기 때문이다. 내가 불안하고 우울한 것은 나 스스로가 만들어낸 감정이다. 요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 볼 수 있는데, 결국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감정도 비교 대상을 통해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지 진짜 원인은 비교 대상이 아니다. 자꾸 감정의 해결책을 외부에서 찾으려 한다면,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 스스로가 정한 불행한 사람들을 계속 만들어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죽을 때까지 그들과 비교를 통해야만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머털도사’는 머리카락이 없으면 도술을 부리지 못한다. 도술을 부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뽑다 보니 어느 순간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고 말았다. 머리카락이 다 빠져버리자 머털도사는 도술을 부릴 수가 없게 된다. 머털 토사는 스승의 도움으로 머리카락 없이 본인 스스로의 능력으로 도술 부리는 법을 깨우친다. 그리고 비로소 머털도사는 진짜 도사가 된다.
타인의 불행 위에 내 행복을 쌓지 마라.
내 행복을 타인과 비교해서 찾지 마라.
내 안에서 찾고, 얻는 행복이야말로 진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