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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규 Jan 11. 2024

편의점과 술

“아 죽겠다.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셨다.”

“술 작작 마셔라. 우리 집안은 술로 망했다.”     



가끔 술과 관련된 대화가 오갈 때, 나는 유행어처럼 하는 말이 있다. 

“우리 집안은 술로 망했다” 그렇다. 우리 집안은 술로 망했다. 아버지 쪽 형제들이 술 때문에 많은 문제를 일으켰다. 큰아빠는 심각한 알코올중독자였다.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가 견디기 힘들어 큰엄마와 그의 자식들은 그를 일찍이 버리고 제 갈길을 갔다. 와이프와 자식들이 떠나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큰아빠는 알코올중독 병원에도 입원했고, 우리 집에 몇 달 머물기도 했다. 내가 초등학교 때였던 거 같은데, 큰아빠가 무서워 집안에 칼과 가위를 죄다 숨겨놨던 기억이 난다. 당시 우리 엄마가 많이 고생을 했다. 결국 큰아빠는 그 좋아하는 술과 함께 생을 마감했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큰아빠가 돌아가시었는지 몰랐다. 아마도 안 좋게 돌아가셨는지 엄마와 아빠는 내게 큰아빠의 죽음에 대해 얘기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내가 고2 때 작은 아빠가 돌아가셨다. 그 망할 놈의 술을 먹고 비틀비틀거리다 계단에서 떨어져 돌아가셨다. 그때가 12월 23일이었다. 크리스마스이브 전날이라 날짜까지 생생하게 기억난다. 당시 고3이었던 사촌형은 죽은 아빠 때문에 슬퍼하기보다는 크리스마스이브에 놀지도 못하고 장례식장을 지켜야 했던 사촌동생을 오히려 걱정했다. 살아생전 얼마나 술 때문에 속을 썩였길래....     



다음은 문제의 우리 아빠. 다행히(?) 술 때문에 죽지는 않았지만 그놈의 술 때문에 엄마와 의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싸웠다. 그날도 술 때문에 엄마와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는데, 그날따라 내 안에서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샘솟았나 보다. 집에 있는 술병이란 술병은 모조리 망치로 깨부순 기억이 난다.      

술 때문에 집안을 풍비박살 낸 아버지의 형제들이 싫었고, 지금보다 어렸을 때, 나는 내 아버지도 싫었다. 나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겠다 다짐했건만 아버지와 똑같이 방 안에서 몰래 술을 먹고 있는 나 자신도 싫었다.      


이런저런 이유 때문인지 나는 편의점에서 술을 사가는 사람에게 괜스레 적대적인 태도를 보인다. 왠지 술을 사가는 모습에서 내 아버지의 모습과 그의 형제들이 보여서일까? 괜히 틱틱 거리는 말투로 그들을 대하곤 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편의점이 회사건물 안에 있어서인지 술로 크게 진상을 부리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몇몇 사람의 행동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는 티브이에서만 봤던 텀블러에 소주를 넣어 가는 직장인을 봤다. 심지어 얼음컵에 소주를 붓고 오렌지주스를 살짝 섞어 가는 사람도 있었다. 한 번은 어떤 아저씨가 소주를 한병 집어 들더니 종이컵을 달라고 했다. 종이컵을 건네었더니 카운터 앞에 서서 종이컵에 소주를 두 번 붓더니 원샷을 한 채 병을 나에게 주고 홀연히 떠났다. 화장실에서 몰래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고, 점심시간에 물병에 소주를 채워 구내식당에서 마시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하루 세 번씩 2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사러 온 아저씨는 실시간으로 사람이 어떻게 망가져 가는지 내게 보여주기도 했다. 그런 사람들을 보며 ‘주류회사는 절대 망하지는 않겠구나’ 생각했다. 코로나로 거리 두기가 한창일 무렵, 편의점에 주류 판매량은 오히려 늘었다고 하니 대한민국 사람들이 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 수 있다.      



술을 좋아하고, 술을 판매하고 있지만 술이 싫다. 다행이라고 해야 될까? 술로 인해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고, 지금은 술을 입에 안 댄 지 1년 정도 됐다. 자식이 태어나고 나는 절대 술 마시는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에서 술과 관련된 악연은 끊고 싶었다.     

먹고사는 게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렇다고 한잔 술이 그 힘듦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오히려 더 괴롭힐 것이다. 그럼에도 술이 한잔 생각난다면 일반적인 방식으로 마셨으면 좋겠다. 좋은 안주, 좋은 사람, 좋은 분위기에서 마신다면 즐겁게 마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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