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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wa Feb 22. 2024

<작은일터 이야기>-동료이야기 2

말없는 동료와의 말없는 화해



그날 이후 다카노상과는 같이 있기가 좀 불편해졌다. 내가 출근했을때 다른 사람이 있으면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어느날 가게의 바닥과 벽면교체공사를 한다고 했는데, 출근해보니 주방의 짐이 몽땅 홀에 나와 있었다.

나는 처음겪는 일이라 첨엔 어리둥절했지만 이래뵈도 주부다.

일의 순서를 대충 알것같아서 얼른 정리를 시작했다.

부지런히 하다보니 다카노상이 왔다.

내가 먼저 언제나처럼 "오하이요 고자이마스"라고 인사를 했다. 나는 매너있는 사람이니까 . .

'. . 오하이요. . . .고. 마스. .

들릴듯 말듯한 대충인사를 받았다.


어두운 회색점퍼에 회색 캡모자, 검정 배낭 , 차라리 유니폼으로 갈아입으면 그게 더  화사하다.

수염 안깎은 날은 하얀 마스크다.

그런 날은 표정이 잘 안보인다.

다카노상은 천천히 스캔하듯 가게안을 둘러보며  사무실로 들어갔다.

나는 가게 오픈시간에 맞추려고 부지런히 홀과 주방을 오가며 짐을 옮겼다.


다카노상도 홀에 나와서 주방짐을 들고 들어갔다.

좀 하다 보니 요령이 생겼다.

내가 홀에서 카운터에 주방 용품들을 올려놓기 시작했다.  다양한 그릇들과 후라이팬과 조리도구,물품들  전부.

그러자 자연스럽게 주방 안쪽에서 다카노상이 그걸 가지고 가서 정리하기 시작했다.

홀에 나오지 않고 바로바로 올려놓고 가져가니 꽤 속도가 붙었다.  생각보다 금방 마무리가 되었다.

마지막에 박스까지 전부 접어서 카운터에 올려놓으니 다카노상이 정리하고 간단히 일이 끝났다.


협업이 잘되어 수월하게 일을 끝내니 기분이 좋았다.

일을 하고나니 목이 마르기에 가게의 음료기에서 시원한 현미차를 뽑았다.

(손님들이 이용하는 정수기같은 기계다 - 물과 현미차가 제공된다)

순간 다카노상한테 줄까 말까 망설였다. 아직 어색한 사이다. 쎄하면 얼마나 민망할까.

그래도 난 주부이고 어른이니깐,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 있다!


에라 모르겠다. 차를 뽑아서 다카노상 앞에 놓고 '차 드세요' 라고 했다.


순간 다카노상이 보여준 그 복잡 미묘한 표정은 참 짧고도 강렬했다.


뭐라고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렵지만  놀람, 당황함, 쑥스러움, 황당, 헛웃음, 엉뚱한 사람이네, 마셔야 하나 말아야 하나 등을 압축한 것같은 표정이 한 순간에 지나갔다.


나는  웃음을 참을수 없어서 등을 돌렸다.

'과연. . 역시 풍부한 표정이다'

마스크속에서 입술에 힘을 꾹주고  혼자 웃었다.

다시 돌아 보니 다카노상은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고컵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평상시처럼 다시 돌아왔다.

내가 잘한거 같다.


그후로는 다카노상은 주로 시프트가 오후에 배정되어서 자주 보지는 못했는데

어느날인가 정말 오랜만에 오전에 나온 날이 있었다.

그날 다카노상은 분명히 엄청 기분좋은 일이 있었을 것이다.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적이 없는

중간 이상의 높은 톤에, 심지어는 콧소리까지 넣은 목소리로


" 아리가또 고자이마~~~스"

라고 손님에게 인사를 해서 나를 놀래켰으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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